[비즈니스포스트] 대한항공의 마일리지 개편안이 뜨거운 감자가 됐다.

개편안이 아니라 '개악안'이라는 소비자 불만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까지 '고객을 생각하지 않는 개편'이라며 대항항공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대한항공 마일리지 개편안에 비판 여론 '봇물', 조원태 보완책 내놓을까

▲ 대한항공 마일리지 개편안을 놓고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까지 직접 나서 비판하고 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사진)으로서 강한 압박을 받는 셈인데 보완책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정부의 압박에 대응하고 소비자 불만을 수습하기 위해 마일리지 개편안과 관련한 보완책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16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이 4월부터 시행을 예고한 마일리지 개편안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진 이유는 장거리 노선의 마일리지 공제율 때문이다.

현재 평수기에 북미와 유럽, 중동, 대양주 등으로 향하는 항공기를 프레스티지석으로 왕복 이용하면 12만5천 마일리지를 공제한다.

하지만 4월1일부터는 더 많은 마일리지를 써야만 이 노선을 이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인천~미국 로스앤젤레스(LA) 노선을 프레스티지석으로 이용하면 앞으로 왕복 16만 마일리지를 써야만 한다. 인천~미국 뉴욕 노선 프레스티지석은 18만 마일리지나 차감된다.

현재 마일리지 공제율과 비교하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마일리지를 최대 44%나 더 부담해야 하는 셈이다.

일등석으로 비교하면 마일리지 차감 폭이 더 커진다. 평수기 인천~뉴욕 왕복 노선을 보면 현재는 16만 마일리지를 차감하면 되지만 4월1일부터는 27만 마일리지를 써야 한다.

대한항공이 내놓은 새로운 마일리지 정책이 소비자들에게 강한 비판을 받는 까닭이다.

물론 단거리 노선을 보면 공제율이 꼭 높아지는 것만은 아니다.

인천~일본 삿포로 노선을 일반석으로 왕복 이용하면 현재 3만 마일을 차감하지만 4월1일부터는 2만2500마일을 차감한다. 현재 4만 마일을 차감하는 평수기 인천~베트남 하노이 노선 왕복권은 3만5천 마일로 조정된다.

중거리 노선에 속하는 중동이나 오세아니아 노선도 마일리지 차감이 소폭 줄어든다.

현재 인천~아랍에미리트 두바이 노선, 인천~호주 브리즈번 노선을 평수기에 일반석으로 왕복 이용하면 7만 마일리지를 차감해야 하지만 4월1일부터는 6만5천 마일리지만 필요하다.

문제는 마일리지를 더 많이 내야 하는 노선의 마일리지 공제율 상승폭이 매우 큰 반면 마일리지를 적게 차감한다고 홍보하는 노선의 마일리지 공제율 감소폭은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이다.

소비자들의 마일리지 소비 성향을 감안했을 때 이왕 사용할 때 장거리 노선을 선택하려는 경향이 강하지만 개편안이 시행되면 이런 선택권을 강제로 박탈당하는 꼴이 된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같은 마일리지로 갈 수 있는 노선이 사실상 단거리밖에 남지 않기 때문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마일리지로 항공권을 구매하는 소비자 가운데 장거리 노선의 비중은 4분의 1가량밖에 되지 않는다"며 "소비자 선택 비중이 높은 단거리 노선 위주로 혜택을 늘려 소비자 효용이 높아질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대한항공이 새 마일리지 정책을 마련한 것은 사업구조의 특성을 반영해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대한항공이 지난해 4분기 여객사업에서 벌어들인 매출을 노선별로 살펴보면 미주노선의 매출 비중이 41%로 가장 높았다. 유럽노선의 매출 비중도 15%였다. 전체 노선에서 미주와 유럽의 매출 비중이 절반 이상이라는 얘기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4분기 미주·유럽노선이 대한항공 여객사업에서 차지하는 매출 비중도 50%에 육박했다.

미주노선과 유럽노선 등 장거리 노선이 대한항공에 절대적 수익원 역할을 하는 만큼 이 노선에서 마일리지를 사용하려는 고객을 줄이는 것이 대한항공에 유리한 셈이다.

특히 장거리 노선의 단가가 높은 만큼 고객에게 현금으로 티켓을 판매하는 것이 대한항공 입장에서는 더욱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대한항공이 공제율을 낮췄다고 소개하는 단거리 노선은 애초 대한항공의 주력 노선이 아니기도 하다. 지난해 4분기 기준으로 일본 노선의 매출 비중은 5%였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에도 7% 수준을 보였다.

동남아시아 노선의 경우 전체 매출의 25%를 차지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긴 하지만 여전히 장거리 노선과 비교하면 주력 노선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애초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대한항공이 마일리지 개편안을 회사에 유리한 쪽으로 조정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대한항공이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소비자 불만이 들끓던 상황에서 주무 부처 장관까지 직접 나섰다는 것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15일 오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번 대한항공 마일리지 개편안은 고객들이 애써 쌓은 마일리지의 가치를 대폭 삭감하겠다는 것이다"고 꼬집었다.

원 장관은 "(대한항공이) 역대급 실적을 내고도 고객은 뒷전인 것 같다"며 "항공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이번 개편안에 동의하기 어렵다. 국민 눈높이에서 필요한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사실상 원 장관이 가진 권한을 최대한 이용해 대한항공의 입장 변화를 유도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조원태 회장으로서는 개편안을 그대로 추진하는 데 경고등이 켜진 셈이다. 주무부처 장관의 지적에도 현재 개편안을 고수했을 때 짊어져야 하는 부담은 상당할 수밖에 없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원 장관의 발언과 관련해 마일리지 개편안을 보완할 것인지 묻는 질문에 "마일리지로 사용할 수 있는 좌석의 비중을 현재 5% 수준에서 더욱 늘리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답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