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단 3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삼성SDI가 2019년 매출 10조 원을 넘어선 뒤 2022년 20조 원 고지에 오르기까지 걸린 시간이 그랬다. 

매출 수십, 수백억 원 하는 벤처기업도 3년 만에 외형이 2배로 커지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그 어려운 일을 굴지의 대기업이 해낸 것이다.
 
[데스크리포트 2월] 배터리 전쟁, 삼성SDI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최윤호 삼성SDI 대표이사 사장(사진)이 2022년을 '2030 글로벌 배터리 톱 티어' 기업으로 가는 출발점으로 삼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 2022년 결산실적이 최근 발표되기 전까지만 해도 K배터리 3사 가운데 삼성SDI를 향한 세간의 관심은 그리 높지 않았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이 지난 2년 동안 앞다퉈 미국을 중심으로 천문학적 증설 투자를 펼칠 때 삼성SDI는 "저래도 되나"라는 말이 시장에서 나올 정도로 생산능력 확대 속도가 느렸다.

삼성SDI는 2022년 5월에야 스텔란티스와 미국 배터리 합작법인 설립 계약을 맺었다. 그마저도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이 미국 일대에 증설하는 규모와 비교하면 10~20% 선에 불과하다.

LG에너지솔루션의 누적 수주 규모는 2022년 말 기준 385조 원에 이른다. SK온의 1월 말 기준 누적 수주액은 290조 원이다. 

논의 중인 것까지 포함하면 두 회사의 누적 수주는 각각 400조 원, 300조 원을 넘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은 앞으로 20년 치 정도 일거리를 이미 확보해 둔 셈이다. 

삼성SDI는 누적 수주 규모를 따로 발표하지 않는다. 배터리 업계에선 삼성SDI가 SK온의 절반 정도 수준의 누적 수주를 쌓아 두었을 것으로 바라본다. 

가뜩이나 자국 전기차 시장이 큰 중국 배터리업체에 최근 K배터리 3사가 사용량 점유율에서 크게 밀리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중국이 진출하지 못하는 미국에 투자가 더딘 삼성SDI를 향한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막상 2022년 성적표를 열어보니 이야기가 달랐다.

삼성SDI는 매출 20조 원가량으로 K배터리 맏형 LG에너지솔루션보다 5조 원 이상 작았다. 하지만 영업이익은 1조8080억 원으로 LG에너지솔루션보다 6천억 가까이 많았다. SK온은 8조 원이 안 되는 매출에 1조 원 가까이 영업손실을 봤다.

최윤호 삼성SDI 대표이사 사장이 강조한 '수익성 위주의 질적 성장전략'이 제대로 통한 것으로 읽힌다. 

최 사장은 고부가가치 제품 '젠5' 판매 확대를 통해 임기 첫해부터 외형 성장과 수익성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삼성SDI의 매출이 10조 원에서 20조 원으로 커지는 3년 가운데 최 사장의 임기 첫해인 2022년에만 7조 원 가까이 매출이 늘었다. 

최 사장은 삼성그룹 내 손꼽히는 재무 전문가로서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 것으로 풀이된다.

배터리업계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면 삼성SDI는 LG에너지솔루션이나 SK온과 달리 테슬라와 현대자동차그룹에는 납품하지 않는다. 

세계 전기차 시장 1등 업체와 국내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자동차 회사에 배터리를 납품해서는 제대로 된 단가를 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최 사장은 생산 능력 확충은 더디게 하면서도 배터리 3사 가운데 연구개발에는 가장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삼성SDI는 2017년부터 꾸준히 연구개발을 늘리면서 매출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을 평균 6% 이상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의 4% 안팎과 비교하면 높은 수준이다.

이런 덕분에 삼성SDI는 주요 배터리업체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로 차세대 제품으로 불리는 전고체배터리 개발에 다가가고 있다. 

삼성SDI는 최근 콘퍼런스콜에서 올해 상반기 업계 최초로 전고체 배터리 파일럿 생산라인을 지어 하반기 시제품 생산에 나선다는 방침을 내놨다.

삼성SDI에서는 현재 삼원계 배터리가 아니라 전고체 배터리에서 진짜 승부가 날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최 사장은 올해부터 스텔란티스 외에 GM, BMW 등과 합작 배터리 공장 설립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는 최 사장이 내건 '2030년 글로벌 톱티어'라는 비전을 본격화하는 첫 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껏 시장은 K배터리 3사 가운데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에 주목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삼성SDI의 행보를 유심히 지켜봐야 할 필요가 있다. 

삼성SDI가 2016년 매출 5조 원대에서 2019년 10조 원대로 올라서는 데 3년이 걸렸다. 그 뒤 2022년 20조 원 고지에 오르는 데 3년이 걸렸다. 앞으로 3년 뒤 2025년 삼성SDI의 매출은 과연 얼마까지 늘어날까. 박창욱 산업부장·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