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월3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국내 금융산업 주요 인사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금융위 업무보고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대통령실> |
[비즈니스포스트] “은행은 민영화된 기업이지만 그 자체가 또 하나의 공공재라고 생각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1월30일 청와대에서 열린 금융위원회의 신년 업무보고 마무리 발언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금융당국은
윤석열정부 들어 은행의 공공성을 앞세워 지배구조를 비롯해 금리수준, 사회공헌활동 비용 등 은행권을 향한 전방위적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동시에 상반기 안으로 은행의 신사업 진출을 뼈대로 하는 금산분리 완화 방안을 발표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두 정책 기조의 방향성이 다소 상충하는 느낌을 받는다.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은행의 공공재적 성격과 수익성을 중시하는 산업적 측면이 동시에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금융권에서 정부가 금산분리 완화라는 ‘당근’을 들고 지배구조 개편, 공정한 시장경제를 위한 사법권 강화 등의 ‘채찍’을 휘두르며 금융권을 길들이고 있는 푸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의 말을 빌리자면 ‘국방보다 더 중요한’ 은행산업을 시장의 논리에만 맡길 수 없는 만큼 정부가 서민경제를 위해 금융권을 향한 전반적 장악력을 높이는 데는 일정 부분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은행을 중심으로 하는 금산분리 완화를 추진하는 것은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금융산업은 규제와 싸움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금융의 역사를 보면 세계 주요 금융위기 이후에는 언제나 금융산업을 향한 강한 규제가 시행됐고 이후 업계의 불만이 나오면 또 다시 규제를 풀어 위기가 찾아오는 역사가 반복됐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금산분리 완화 논의의 핵심은 은행의 신사업 진출을 허용해주자는 것인데 이 역시 마찬가지다.
은행의 신사업 진출은 ‘은행의 탐욕’을 자극해 은행권에 본업 이외의 불필요한 경쟁을 야기하고 이는 결국 은행의 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특정 사업에만 은행의 자원이 몰리며 사회 전반의 효율성을 떨어트릴 가능성도 있다.
알뜰폰사업만 보더라도 KB국민은행의 진출로 사업성이 확인되자 토스, 신협 등 여러 금융사가 뛰어들고 있다. 하지만 아직 시장에 완전히 정책했다는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은행의 배달앱 사업에는 다들 소극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금산분리 완화로 은행의 신사업 진출이 허용되더라도 실제 사업을 진행하는 실무자 입장에서는 성과를 내기 위해 결국 수익성이 어느 정도 담보된 특정 사업에만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
궁극적으로는 은행이 알뜰폰과 배달앱 사업 등을 통해 수익성을 높이는 일이 정부가 원하는 금융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지도 의문이다.
최근 만난 국내 대형 증권사 대표는 은행원의 가장 중요한 자질로 ‘성실’과 ‘정직’을 꼽았다.
은행은 기본적으로 금융소비자가 맡긴 돈을 지키는 역할을 하는 곳으로, 돈을 잘 굴리는 사람이 아닌 거짓말 안 하고 돈을 안 떼먹고 안 떼먹히는 사람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금산분리 완화를 통해 은행이 신사업을 시작하게 되면 은행의 제1덕목은 안정성이 아닌 사업성이 우선하는 방향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
금융위가 위험총량을 정해 놓고 일부 사업만 대상으로 은행의 신사업 진출을 허용하는 등 최대한의 안전장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하지만 시민사회에서는 이를 놓고도 계속해서 불신의 목소리가 나온다.
처음 빗장이 풀리는 것이 어렵지 일단 한 번 문이 열리면 중장기적으로 은행의 신사업 범위와 규모가 지속해서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은행의 공공성을 강조한 윤 대통령의 마무리 발언은 다시 한 번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윤 대통령은 과거 외환위기 당시 은행을 살리는 데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됐던 사례를 들며 이렇게 말했다.
“민간은행이 파산을 하는 상황이 되면 그걸 그냥 둘 수가 없다. 국민의 세금으로 막대한 공적자금을 조성해 또 막아야 한다. 산업은행만 국민 세금과 재정으로 막는 것이 아니다. 민간은행도 손실 나고 문제가 생기면 결국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은행이 완전 사기업하고 분명히 구별되는 공공재라는 점은 우리 모두 공유해야 한다.”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