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국가 핵심기술 빼돌린 일당 6명 적발, 승진 탈락에 앙심 품어

▲ 대전지검 특허범죄조사부는 26일 반도체 국가 핵심기술을 빼돌린 일당 6명을 적발했다고 밝혔다.<특허청>

[비즈니스포스트] 승진에서 탈락하자 이에 앙심을 품고 반도체 기술을 중국에 빼돌린 ㄱ(55)씨 등 일당 6명이 적발됐다.

대전지검 특허범죄조사부(부장검사 정지은)는 26일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주범인 ㄱ씨 등 반도체 분야 기업 전현직 직원 3명을 구속기소하고 다른 3명은 불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이번 수사는 특허청 기술디자인특별사법경찰(기술경찰)과 공조로 이뤄졌다. 특허청에 따르면 2018년 임원 승진에서 탈락한 ㄱ씨는 2019년 6월 중국의 반도체 회사인 D사와 웨이퍼 연마제 제조사업 동업을 약정했다. 

그 뒤 ㄱ씨는 2019년 8월부터 2020년 1월까지 자신이 다니던 A사의 웨이퍼 연마제 및 웨이퍼 연마 패드 관련 보안자료를 휴대전화로 촬영해 중국업체로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ㄴ(52)씨는 C사의 웨이퍼 연마제 실험데이터 등 기술 자료를 활용해서 중국 내 웨이퍼 연마제 사업계획 발표 자료를 만들고 이를 중국업체 직원들에게 제공한 혐의로 기소됐다.

ㄷ(42)씨 역시 지난 2020년 4월부터 약 10개월 동안 B사의 웨이퍼 연마 공정 관련 보안자료를 휴대전화로 촬영해 유출한 것으로 조사됐다.

ㄱ씨는 ㄴ씨에게 자신이 유출한 자료를 숨겨달라 부탁하는 등 증거 은닉을 시도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피의자들이 유출하려 했던 반도체 기술은 '웨이퍼 연마 공정'과 ‘웨이퍼 연마제’, ‘웨이퍼 연마 패드’다.

웨이퍼 연마 공정은 웨이퍼 위에 쌓인 박막들을 화학적 작용과 물리적 작용을 통해서 평탄화 또는 제거하는 공정이다. 웨이퍼 연마제란 기계적 연마 역할을 하는 연마입자와 화학적 연마 역할을 하는 화학적 첨가제가 혼합된 용액이다. 웨이퍼 연마 패드는 웨이퍼와 접촉한 뒤 고속으로 회전하여 연마 기능을 수행하는 장치를 말한다.

웨이퍼 제조는 반도체 분야에서 ‘8대 공정’이라고 불릴 만큼 중요한 공정이다.

특히 웨이퍼 연마는 집적회로의 정밀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중요한 기술로 꼽힌다. 웨이퍼 연마 공정은 가치가 높아 해외로 유출되면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민경제 발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산업기술보호법상 ‘국가 핵심기술’, '첨단기술’로 지정됐다.

검찰은 국내 반도체 3개 업체에서 웨이퍼 연마 관련 기술이 해외로 유출됐으며 특히 ㄴ씨가 다녔던 C사는 웨이퍼 연마제 관련 기술개발 연구비로 약 420억 원을 투자했기 때문에 직접적인 손해도 발생했다고 밝혔다. 

웨이퍼 연마제 시장 규모가 해외와 국내 시장을 합해 1년에 2조7500억 원 상당이며 웨이퍼 연마 패드 시장 규모도 1조5800억 원에 달하는 것을 고려해볼 때 기술 유출에 따른 추가 피해는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피해를 입은 업체 3곳은 현재 국내 유가증권시장 또는 코스닥시장 상장사로 이들의 시가총액의 합계는 66조원에 이른다.

이번 수사 과정에서는 특허청과 검찰, 국정원의 협력이 매우 중요했다.

국정원 산업기밀보호센터가 중국에서 첩보를 받아 검찰과 특허청 기술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과 기술경찰은 피의자들이 중국에서 귀국한 뒤 바로 압수수색을 집행해 증거를 분석했다.

수사가 마무리되자 특허청 기술경찰은 피의자 중 3명을 구속 송치해 검찰로 넘겼다. 기술경찰이 피의자를 구속 송치한 것은 2019년 3월 영업비밀 분야 수사를 넘겨받은 이후 처음이다.

검찰 관계자는 “국정원 첩보로 수사를 착수한 때부터 검찰과 특허청이 긴밀히 협조해 중국에 체류 중이었던 혐의자들이 귀국한 직후 압수수색 영장을 신속히 집행했다”며 “이후 면밀한 증거 분석을 통해 추가 공범과 피해를 밝혀내 주범들을 구속기소 했고 앞으로도 유관 기관과 긴밀한 협력을 바탕으로 국가 핵심 경쟁력인 산업기술을 탈취하는 영업비밀 및 산업기술 침해 범죄에 엄정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특허청은 국제 기술범죄에 대한 대응을 강화하기 위해 국내 기관뿐만 아니라 미국 국토안보수사국(HSI)과도 공조체계를 마련할 계획을 세웠다. 김홍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