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반도체법안 ‘한국과 협력’ 강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러브콜 받나

▲ 유럽연합이 현지 반도체공장 건설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유럽판 반도체 지원법 법제화 절차에 속도를 내고 있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도 러브콜을 보낼지 주목된다. 

[비즈니스포스트] 유럽 의회 의원들이 반도체 자급체제 구축을 목표로 하는 ‘유럽판 반도체 지원법’ 발의안을 채택하며 법제화를 위한 절차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해당 법안에 한국과 유럽연합 사이 협력을 강화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만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기업이 현지 공장 건설과 관련해 유리한 제안을 받을 가능성도 떠오른다.

26일 유럽의회 홈페이지에 따르면 산업연구에너지위원회(ITRE) 소속 의원들은 전체 참석자 68명 가운데 67명의 압도적 찬성을 통해 유럽 반도체 지원법 발의안을 채택했다.

지난해부터 논의해 오던 반도체 관련 법안의 내용을 일부 수정해 본격적으로 법제화 절차에 들어간 것이다.

유럽 반도체 지원법은 미국 바이든 정부에서 시행하는 반도체 지원법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발의된 법안이다. 유럽 내 반도체 공급망을 확보해 자급체제를 갖추는 내용을 뼈대로 한다.

유럽의회는 “최근 발생한 반도체 공급부족 사태는 유럽이 해외에 의존을 낮춰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며 “반도체 기술 혁신과 생산 능력을 키우는 데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현지시각으로 24일 열린 회의에서 유럽의회 의원들은 주요 반도체기업의 현지 투자를 유도해 안정적 공급체계를 확보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를 위해 한국과 대만, 일본 및 미국과 협력을 강화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내용도 중점적으로 논의됐다.

미국과 일본은 세계 상위 반도체 장비기업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국가에 해당하는 만큼 유럽연합이 반도체 공급망을 안정화하기 위해 반드시 협력을 추진해야 하는 대상이다.

대만 TSMC는 세계 파운드리 1위 업체로 첨단 시스템반도체 생산에 핵심 역할을 담당하는데 최근 독일에 반도체공장을 설립하는 방안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유럽연합이 반도체 지원법 추진 과정에서 한국과 협력의 중요성도 강조한 것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기업을 염두에 둔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이 전 세계 반도체 장비나 소재 등 분야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이 비교적 크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국 유럽에서 한국 반도체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유럽 반도체법안 ‘한국과 협력’ 강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러브콜 받나

▲ 미국 인텔이 독일에 신설하는 반도체 생산공장 예상 조감도.

유럽판 반도체 지원법은 미국의 반도체 지원법과 마찬가지로 현지에 생산공장을 설립하는 반도체기업에 대규모 보조금과 세제혜택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내용이 담길 공산이 크다.

다만 이런 법안이 실제로 효과를 거두려면 주요 반도체기업들이 인센티브를 노려 유럽 국가에 적극적으로 공장 투자를 검토해야만 한다.

결국 유럽연합이 반도체 지원법을 법제화하는 과정에서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공장 건설을 유치하기 위해 ‘러브콜’을 보낼 가능성도 높아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유럽연합은 미국 정부의 반도체 지원법이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있는 데 심각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자칫하면 글로벌 반도체기업의 투자 기회를 대부분 미국에 빼앗길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 내 공장 건설에 집중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TSMC 등 기업의 시선을 끌기 위해 더욱 강력한 지원 정책을 앞세워 투자를 유도하려 할 수밖에 없다.

유럽연합은 성명을 통해 “반도체는 유럽의 디지털 및 친환경 전환에 핵심”이라며 “미국과 같은 경제적 능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지만 현재 상황의 심각성을 충분히 반영하는 수준에서 예산이 책정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법안의 세부 내용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과정에서 반도체기업들에 충분한 투자 지원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만약 삼성전자와 같은 기업이 유럽 반도체 지원법을 계기로 투자를 추진한다면 비용 부담에 대한 우려를 상당 부분 덜고 시장 점유율을 확대할 기회를 얻을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은 세계 자동차산업의 요충지에 해당하는 만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아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동차용 반도체 분야에서 고객사 기반을 확대할 계기를 마련하게 될 수도 있다.

TSMC와 인텔이 이미 유럽에 대규모 반도체공장 설립 절차에 속도를 내는 만큼 삼성전자가 파운드리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이들을 따라 투자를 결정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럽 반도체 지원법은 앞으로 의회의 여러 절차를 거쳐 확정된다. 해당 법안이 산업연구에너지위원회에서 이미 만장일치에 가까운 찬성표를 얻은 만큼 논의가 순조롭게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