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 여우 같은 리더의 중요성  
▲ 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WEF) 회장.

“미래는 언제나 늘 빨리 다가올 뿐 아니라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찾아온다(The Future always comes too fast and in the wrong order).”

87세를 일기로 최근 세상을 떠난 세계적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이렇게 말했다.

4차 산업혁명은 최근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최대의 이슈다. 세계 각국의 정재계 지도자들은 6월27일 중국 톈진에서 열린 하계 다보스포럼에서도 4차 산업혁명이 낳을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변화와 대응을 놓고 머리를 맞댔다.

국내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전 상임공동대표는 6월22일 국회 교섭단체 첫 연설에 나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국회의 역할을 강조하기도 했다.

토플러의 말을 살짝 비틀어보면 4차 산업혁명이야말로 빨리 다가오거나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찾아올’ 미래가 아니라 ‘이미 와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정작 4차 산업혁명이 무엇인지, 그것이 인류문명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나와 내 주변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을지는 아직 이해하기 어렵다.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응해야 할지 짐작하기란 더더욱 쉽지 않다.

신간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새로운 현재)은 4차 산업혁명이 현재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조목조목 들여다 본 책이다. 나아가 국가와 기업, 개인이 도저한 변화의 물결 앞에서 어떻게 대처할지 한발 앞선 혜안을 내놓고 있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위기의식이 어느 때보다 높은 지금 정부나 기업, 사회단체의 리더들 뿐 아니라 앞날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리는 개인들이 읽어볼만한 책이다.

저자인 슈밥은 ‘다보스포럼’으로 흔히 불리는 스위스 세계경제포럼의 창립자로 현재도 회장을 맡고 있다. 독일에서 태어나 프라이부르대학교에서 경제학박사, 스위스 연방공과대학교에서 공학박사를 받았다.

저명한 학자이기도 하지만 기업가이자 정치가를 거쳐 여든에 가까운 나이에도 민간 국제기구를 통해 활발하게 활동을 펼치고 있다. 

슈밥의 정의에 따르면 4차 산업혁명은 개념적으로 18세기 제1차 산업혁명, 19~20세기 초 2차 산업혁명, 1960년대 시작된 3차 산업혁명에 이어 21세기의 시작과 함께 출현했다. 디지털 혁명을 기반으로 유비쿼터스 모바일 인터넷, 값싸고 강력해진 센서, 인공지능과 기계학습이 주된 특징으로 꼽힌다.

저자는 인류가 경험한 기존의 산업혁명과는 다른 차원에서 4차 산업혁명이 전개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혁신의 발전과 전파 속도, 그로 인한 충격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전개될 것이란 점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을 이끈 기술적 진보는 상당부분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드론이나 무인자율주행차와 같은 무인운송수단의 등장은 더이상 먼 미래의 얘기가 아니다.

이세돌 9단과 바둑대결을 벌인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처럼 첨단로봇공학이나 3D프린팅, 첨단소재 등장도 4차 산업혁명을 낳은 첨단 기술들이 눈부신 속도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 책은 4차 산업혁명의 개념적 이해나 실상만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이 불러올 영향력과 예측가능한 변화들을 구체적이면서 폭넓게 다루고 있다.

축약하면 인류는 일부 경제학자들이 ‘센테니얼 슬럼프’(100년 동안 계속되는 경제침체)로 부르는 저성장 시대를 만나게 된다. 인구는 2030년 80억 명, 2050년 90억 명으로 늘어날 뿐 아니라 고령화가 전 지구적으로 전개된다.

생산성의 측면에서는 과학기술이 혁신에도 생산성이 늘지 않는 ‘생산성의 역설’을 경험하게 된다. 자본이 노동을 대체하게 되면서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지만 한편에서 새로운 직종과 산업분야가 생겨난다.

한마디로 4차 산업혁명은 기술적 진보로부터 비롯되지만 경제, 사회, 문화적 측면에서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이런 변화에 대해 국가와 기업, 개인이 ‘무엇을 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할까’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 여우 같은 리더의 중요성  
▲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클라우스 슈밥 지음, 송경진 옮김)
슈밥은 기업들이 혁신을 외치는 것만으로 부족하다고 본다. 자원을 공유하는 협력적 혁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인재주의의 중요성을 수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기업이 적합한 인재를 영입해 창의력과 혁신을 펼칠 수 있도록 한다는 개념이다. 인재주의가 실현되려면 조직문화의 혁신이 전제돼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슈밥은 4차 산업혁명의 사회적 변화와 관련해 중산층의 몰락과 불평등의 확산을 들고 있다. 이는 폭력적 성향을 높이고 사회불안을 야기한다는 점에서 국가와 기업의 진지한 고민과 성찰을 요구한다.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파급력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서 거대한 수레바퀴처럼 맞물려 나타나기 때문이다.

저자는 4차 산업혁명의 성공을 위해서는 리더의 중요성을 무엇보다 강조하고 있다. 이는 국가나 사회, 기업들 모두에 해당한다. 새로운 혁신에 민첩하게 대응하기 위해서 리더는 ‘칸막이’식 사고에서 벗어날 것으로 충고한다. 또 좁고 고정된 시각에 머무는 ‘고슴도치’가 아니라, 지적이고 사회적 민첩성을 갖춘 ‘여우’형 리더가 될 것을 주문한다. 

저자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리더 뿐 아니라 개인도 마찬가지다. 날카로운 가시로 타인과 거리를 두는 것으로는 초연결시대로 정의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살아남기 어려울 수 있다. 

이 책에서 주목하는 것 가운데 불평등의 심화도 비단 경제인 것이나 지식 혹은 정보에 국한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부의 불평등이나 지식의 불평등은 3차 산업혁명 이전의 이슈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 불평등은 돈이나 정보, 지식의 소유 여부가 아니라 초연결시대에 얼마나 개방적 태도를 지녔느냐에서 비롯된다. 이는 성별, 연령, 계급의 차원을 뛰어넘는 불평등의 문제이며 그 때문에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띨 수 있다.

영화 ‘엑스맨’은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2000년에 선보인 뒤 이제는 슈퍼 히어로시리즈의 고전이 돼버렸다.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가 인류의 비정상적인 진화태인 돌연변이를 슈퍼 히어로로 설정한 것이다.

엑스맨 1편은 흑백의 영상 속에 1944년 폴란드 유대인 수용소를 배경으로 독일 나치에 의해 모자가 생이별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유대인에 대한 나치의 공포와 돌연변이에 대한 인간의 공포를 동일선상에 놓은 것이다.

영화에서 돌연변이 캐릭터들은 몸이 닿기만 해도 에너지를 빼앗아가거나 타인의 생각을 읽은 초능력을 가졌거나 손등에서 칼날이 튀어나오는 비정상적 힘을 소유하고 있다. 하지만 겉모습은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슈밥이 21세기의 시작과 함께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됐다고 지적한 점에 비춰보면 21세기는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우리의 끊임없는 진화를 요구한다. 엑스맨에서 인간들이 돌연변이에 대해 지니는 공포도 이런 진화에 대한 강박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 ‘Always in beta(끊임없이 진화하라)’를 요구받는 시대, 공포스럽지만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