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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문화프리즘] '더 글로리' 보며, 받은 대로 되돌려 주는 중국 상대하기

이욱연 gomexico@sogang.ac.kr 2023-01-20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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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문화프리즘] '더 글로리' 보며, 받은 대로 되돌려 주는 중국 상대하기
▲ '더 글로리'. <넷플릭스 공식홈페이지 캡처>
연말연시 복수 이야기가 화제다. 고등학교 때 학교 폭력을 당한 주인공이 성인이 된 뒤 폭력 가해자에게 복수하는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더 글로리' 때문이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기다. 주인공이 학교 폭력에 시달릴 때, 학교 선생님과 교장도, 경찰도, 심지어 엄마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 결국, 폭력을 당한 주인공이 성장하여 차근차근 복수한다.

사적 복수는 국가나 법 등 공적인 시스템이 개인을 보호하지 못하고, 정의를 실현하지 못할 때 일어난다.

사적 복수 이야기가 이렇게 큰 인기를 얻는 것은, 적어도 대중 감각 차원에서는 폭력을 막고 정의를 실현하는 우리 사회의 공적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징후다.

'더 글로리'에서 주인공 문동은은 18년 동안 차근차근 복수를 준비한다. 그녀가 삶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오직 복수를 위해서다. 1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녀가 입은 몸과 마음의 상처를 한시도 잊지 않았고, 그것을 기억하면서 폭력을 방치한 교장과 폭력 당사자 5명에게 치밀한 복수를 계획한다.

사실 우리 문화에서 드라마 주인공 문동은과 같은 독한 캐릭터는 익숙하지 않다. 이렇게 끈질기게 흔들림 없이 오랫동안 복수를 가슴에 담고 사는 사람 우리 역사나 우리 문화에 흔하지 않다. 주위에 이런 독한 마음으로 사는 사람 있으면 그 사람 응원하기보다는 멀리하는 사람이 더 많다.

한국인의 정서, 한국 문화가 그렇다. 악을 끝까지 기억하고 추적하여 응징하기보다는 너그럽게 용서한다. 모질다 싶을 정도로 자신이 당한 악을 악으로 갚는 것, 자신이 당한 고통과 치욕에 기어이 복수하는 그런 독한 심성이 우리 문화 속에서는 그리 지지를 받지 못한다.

한국인이 정이 넘치고, 종교적 심성이 강해서 그렇다. 내게 고통과 치욕을 안긴 그 인간에게 이에는 이로 갚는 게 아니라 그 인간도 알고 보면 불쌍하다고 여기면서 용서하고 덕으로 감싼다. 이승에서가 아니라면 저승에서 분명 벌을 받을 것이라고, 하늘이, 부처님이, 하느님이 나를 대신해 처벌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복수문화가 없다. 그 대신 용서문화가 있다.

그런데 중국문화는 다르다. 복수 문화가 있다. 중국은 이에는 이로 대응하는 것, 보복과 복수에 훨씬 너그러운 문화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최근에 중국 정부가 코로나19 통제 정책을 풀면서 코로나가 크게 유행하자 우리나라는 중국인에게 일반 방문 비자 발급을 중단하였다. 그러자 중국이 여기에 복수했다. 한국인에게 중국 비자 발급을 중단한 것이다. 복수한 거다.
 
[한중 문화프리즘] '더 글로리' 보며, 받은 대로 되돌려 주는 중국 상대하기
▲ 중국이 한국의 중국발 입국자 방역 강화 조치에 대한 보복 조치로 한국 국민에 대한 중국행 단기비자 발급을 전면 중단한 10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중국비자신청서비스센터 모습. <연합뉴스>
이번만 그런 게 아니다. 중국은 사드 때도 그랬다.

우리가 사드를 배치하자 중국은 한한령으로 복수했다. 중국인이 한국 여행하는 것을 통제하고 한류를 막고, 한국 상품 불매운동으로 보복하였다. 우리는 대국답지 않다고 불만이지만, 중국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중국 정부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중국인은 자국 정부를 비판할 것이다.

남에게 자신이 당한 것을 되갚는 이야기의 원조는 고사성어 와신상담 이야기다. 상대가 내게 치욕과 고통을 주었으면 쓸개를 핥고 장작더미에서 자면서 늘 치욕과 고통을 기억하고 치밀하게 설계하여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려도 기어이 복수해야 한다. 그래야 이상적 인격의 소유자다. 그래서, 중국 속담에 “원한이 있는데도 갚지 않으면 군자는 못 된다”고 하지 않는가.

중국 뉴스에 가끔 복수 이야기가 나온다. 2000년에도 원한을 갚는 보복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싸우다가 아버지를 칼로 찔러 죽인 사람을 찾아서 아들은 17년 동안 중국 전역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29살이 된 아들은 마침내 그 사람을 찾아 살해하고 아버지의 한을 풀어주었다.

2019년에는 어머니를 죽게 한 집안의 아버지와 아들 세 사람을 아들이 23년 만에 살해하였다. 이 아들은 효자인가? 살인범인가? 중국 법원은 이 아들에게 종신형을 선고했다.

되갚아야 할 대상이 육체적 폭력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인이 목숨처럼 여기는 체면을 손상한 상대의 말과 행동 역시 되갚는 대상이다.

2014년 중국에서 50대 여성이 청부살인 혐의로 구속되었다. 그 여인이 사람을 사서 죽인 사람은 은행 직원이었다. 예전에 자신이 이혼한 뒤 남편 이름으로 된 예금을 찾으려고 했는데, 그때 예금 인출을 거절했던 은행 직원이었다. 자신은 그때 자신이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생생히 기억하는데 그 직원은 나중에 길에서 마주쳤는데도 모른 체했다. 이 여성은 자신이 계속 무시당한다고 생각했다. 이 여성이 청부 살인을 한 동기다.

우리도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중국인은 그 강도가 훨씬 세다. 중국인에게 체면은 목숨이다. 개인이든, 국가든 체면이 손상당했다고 생각하면 나중에 반드시 그 대가를 돌려준다.

중국과 비즈니스를 하거나 외교를 할 때 우리가 흔히 놓치는 점이다. 우리 문화에서는 상사가 부하 직원을 사무실에서 공개리에 나무라는 게 흔한 일이다.

하지만 중국인 직원을 그렇게 대하면 안 된다. 직원이 다 보는 앞에서 질책하면서 부하 직원이나 종업원 체면을 손상하고 모욕을 주지 말아야 한다. 뒷감당할 자신이 없거든 삼가야 한다. 상대 체면을 구기고 모욕을 주면 그 대가는 오래 걸리더라도 언젠가는 꼭 돌아온다. 개인 차원에서도, 회사 차원에서도, 국가 차원에서도 그렇다.

중국인은 받은 것은 꼭 되돌려 준다. 되돌려 주는 대상은 원한이나 치욕만이 아니다. 은혜도 반드시 돌려주고 갚는다. 군자라면 원한도 갚아야 하지만 은혜도 갚아야 한다.

중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은혜가 있으면 은혜로 갚고, 원한이 있으면 원한으로 갚는다.” “은혜를입고 갚지 않으면 소인이고, 원한이 있는데 갚지 않아도 군자가 아니다.”

중국인의 문화적 무의식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게 무협지와 무협소설이다. 그런데 무협지와 무협영화의 주제는 딱 하나다. 갚음이다. 원한도 갚고, 은혜도 갚는다.

무협의 스토리 기본 구조는 매우 단순하다. 어느 날 외적이 침입하거나 가문의 원수, 혹은 문파의 원수가 난입하여 집안이 파탄 나고 부모가 죽거나 스승이 죽는다. 하지만 꼭 한 사람이 살아남아서 결국 복수한다. 국가와 부모, 스승의 원한을 갚는 복수와 국가와 부모, 스승의 은혜를 갚는 보답이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다.

중국인은 상대에게 받은 원한도 꼭 갚지만, 받은 은혜도 꼭 갚는다. 특히 어려울 때 입은 은혜는 꼭 갚는다.

1992년 겨울, 낯선 베이징에 도착했을 때 나와 아내를 늘 챙겨주었던 교수가 있다. 나와 친분이 있는 게 아니라 내 지도교수님의 친구였다. 그런데도 자기 학생처럼 챙겨주었다. 원래 그분 부인이 지도교수의 배려로 한국에서 와서 근무한 적이 있었고, 그 당시 한국과 중국 사이 경제 수준 차이를 생각하면 경제적으로 큰 혜택을 입은 셈이다. 중국인 교수 부부는 그 은혜를 친구인 지도교수에게만이 아니라 그의 학생인 우리 부부에게까지 베푼 거였다.

한국인은 원한을 갚는 것보다는 은혜를 갚는 차원에서 인정을 생각한다. 보복이나 복수는 인정에 어긋나는 일이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은혜를 갚는 것만이 인정이 아니라, 자신이 당한 원한과 치욕을 갚는 것도 인정이다. 부모의 원한을 갚고, 자신이 당한 치욕을 기어이 갚는 사람이 인정 있는 사람이다.

우리가 비즈니스 차원이나 외교 차원에서 중국을 대할 때 좀 더 냉정하고, 치밀하고, 영악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야 중국과 교류에서 지지 않는다.

한국은 선비의 나라이고 중국은 속인의 나라다. 선비의 심성으로 속인의 심성을 대하면 지는 쪽은 선비다. 비즈니스와 외교 현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런 두 나라의 문화적 특징이 두 나라 복수문화에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욱연 서강대 교수  
 
현재 서강대 중국문화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베이징사범대학교 대학원 고급 진수과정을 수료했고 하버드대학교 페어뱅크 중국연구소 방문교수를 지냈다. 중국 문학과 문화를 연구하며 여러 권의 책을 냈고 jtbc '차이나는 클래스', EBS '내일을 여는 인문학'에 출연하는 등 대중과 소통에도 활발하게 나서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이욱연의 중국 수업', '중국이 내게 말을 걸다', '이만큼 가까운 중국', '포스트 사회주의 시대의 중국 지성' 등이 있고, 번역한 책으로 '들풀', '광인일기', '우리는 거대한 차이 속에 살고 있다',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 '아큐정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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