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삼성전자가 ‘반도체 혹한기’에 생산량을 오히려 늘리며 ‘치킨게임(상대방이 망할 때까지 초저가로 제품을 공급하는 전략)’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여러 차례의 반도체 업황 하락기 때마다 오히려 이를 활용해 시장지배력을 확대해왔는데 이번에도 같은 전략을 사용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경계현 ‘반도체 혹한기’에 기회 본다, 삼성전자 치킨게임도 마다 안 해

▲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경쟁사와 격차를 벌리기 위해 치킨게임도 마다 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은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 대표이사 사장.


13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반도체 공급량을 줄이지 않음에 따라 메모리반도체 업황 부진이 기존 예상보다 더 오래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글로벌 투자은행 도이치방크의 시드니 호 연구원은 “메모리반도체 다운사이클이 곧 저점에 도달할 것이라는 낙관론은 아직 이르다”며 “마이크론은 반도체 생산량을 제한하기 위해 몇 가지 조치를 취했지만 경쟁자인 삼성전자가 생산량을 줄이지 않음으로써 ‘반도체 침체’ 기간이 연장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업계 1등인 삼성전자의 감산 없이는 글로벌 메모리반도체 가격이 반등하는 데 시간이 좀 더 걸린다는 것이다.

메모리반도체 2, 3등인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은 반도체 수요 둔화에 맞춰 감산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와 달리 삼성전자는 인위적인 감산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2027년까지 반도체 생산량을 현재보다 3배 확장한다는 기존 계획을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이미 치킨게임에 들어갔다는 말이 흘러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이번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 그동안 좁혀졌던 경쟁사와 격차를 다시 벌릴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를 직원들이 많이 한다”며 “특히 3위인 마이크론은 치킨게임이 장기화됐을 때 버티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치킨게임을 마다 하지 않는 것은 ‘원가경쟁력’ 덕분이다.

메모리반도체는 고정비가 높은 산업으로 생산량이 증가할수록 반도체 한 개를 생산할 때 들어가는 비용이 줄어드는 만큼 가장 많은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는 삼성전자가 경쟁사보다 유리하다. 2022년 기준 삼성전자의 D램 이익률은 경쟁사 대비 5~10%포인트 우위에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게다가 삼성전자는 2023년부터 차세대 제품인 5세대 1a~1b(10나노) 공정의 D램 양산 비중을 확대함으로써 원가경쟁력을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는 10나노 공정에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도 메모리반도체 경쟁사 대비 5배 이상 많이 확보하고 있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2023년부터 삼성전자의 D램 마진과 관련해 경쟁사 대비 원가절감 폭이 3배 이상 확대될 것”이라며 “향후 D램 경쟁력은 판매가격 상승과 생산확대 보다는 원가구조에 좌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재무구조 측면에서도 삼성전자는 치킨게임이 장기화되더라도 버틸수 있는 체력이 충분하다.

삼성전자는 현재 보유하고 있는 현금성 자산(단기 금융상품 포함)이 128조 원에 이르고 차입금은 10조 원 수준에 불과하다. 반면 SK하이닉스는 현금성 자산이 7조2천억 원이고 차입금은 이보다 3배 이상인 약 22조 원이어서 이자비용만으로도 매년 수천억 원을 지불해야 하는 구조다.

마이크론도 현금성자산이 11조7천억 원에 불과해 삼성전자의 10분의 1에 그친다.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은 이와 같은 상황을 적극 활용해 D램과 낸드플래시에서 시장점유율을 확대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경 사장은 올해 9월 기자간담회에서 “항상 보면 위기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며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마켓셰어(시장점유율)를 늘리거나 독점하는 등 안 좋은 구간이 지났을 때 삼성전자가 지금보다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기회로 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국내 증권사에서도 삼성전자의 반도체 생산계획을 감안해 2024년 삼성전자의 D램, 낸드플래시 점유율이 현재보다 약 4~5%포인트씩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는 과거에도 반도체 불황기에 강했다.

2011~2012년, 2015~2016년 반도체 업황이 최악으로 치닫았을 때 삼성전자는 가장 잘 버텨낸 기업이었고 이 위기를 오히려 경쟁력을 강화하는 기회로 삼았다. 이번 반도체 불황기도 선두주자와 후발주자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는 시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산업 불황은 2위권 이하 업체들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면서 1등 기업들의 지배력 상승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