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은 왜 삼성전자 아닌 TSMC에 투자했나, ‘재벌 디스카운트’ 지목

▲ 워런 버핏 회장이 이끄는 투자회사 버크셔해서웨가 대만 반도체 파운드리기업 TSMC 주식을 대량으로 매수한 배경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세계 투자업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는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장기간 강조해 온 가치투자 원칙과 상반되는 대만 반도체기업 TSMC 주식을 매수했다.

버핏 회장이 삼성전자가 아닌 TSMC에 투자한 배경을 두고 지배구조 측면의 불확실성 등을 의미하는 ‘재벌 디스카운트’가 삼성의 약점으로 꼽힌다는 분석이 나온다.

23일 증권전문지 시킹알파에 따르면 헤지펀드 전문 분석가 빈센트벤처스는 “그동안 기술주를 기피해 온 워런 버핏의 TSMC 주식 매수는 많은 투자자들을 놀라게 했다”는 관측을 내놓았다.

워런 버핏의 투자회사 버크셔해서웨이는 최근 TSMC 주식 41억 달러(약 5조5천억 원)를 새로 매수했다고 밝혔다. 이는 전체 투자 포트폴리오 가운데 10위에 해당하는 규모다.

버크셔해서웨이가 IT기업인 애플과 액티비전블리자드 지분도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반도체기업인 TSMC 지분을 매수한 점도 이례적이라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워런 버핏이 지난 수십 년 동안 가치투자 원칙을 강조하며 주로 소비재와 금융주 등에 투자를 고집하다 비교적 최근에서야 IT기업 지분 확보에 나선 만큼 TSMC 투자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더구나 반도체주는 대표적 성장주인 데다 업황 변화에 따라 주가 변동성도 커지기 때문에 워런 버핏의 투자 철학과 가장 거리가 먼 종목에 해당한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빈센트벤처스는 최근 글로벌 반도체 시장 상황 변화로 반도체주도 가치주를 판단하는 기준에 부합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미국 증시의 대표적 반도체 지수인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에 포함된 기업들의 지난 20년 동안 평균 연매출 증가율이 11%, 잉여현금 보유량 증가율이 25%에 해당한다는 점이 근거로 제시됐다.

더구나 최근 5년 동안에는 상승률이 더욱 가파르게 나타나면서 오히려 다른 종목과 비교해 높은 안정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 반도체주의 장점으로 지목됐다.

워런 버핏이 주요 반도체기업 가운데 TSMC에 투자를 결정한 배경으로는 반도체기업들 사이 치열한 시장 경쟁에 따른 변수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는 점이 주목받았다.

엔비디아와 AMD, 인텔 등 기업이 시스템반도체 성능 향상을 위한 경쟁에 주력하는 반면 TSMC는 여러 고객사 반도체를 위탁생산하는 파운드리 전문업체 특성상 이런 경쟁이 벌어질 때 오히려 수주를 확대하며 수혜를 볼 수 있다.

빈센트벤처스는 미국 인텔이 지난 10년 동안 자사주 매입과 배당에 대량의 현금을 사용한 반면 TSMC는 중장기 경쟁력 확보를 위해 연구개발 및 생산투자를 확대한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삼성전자 역시 파운드리시장에서 TSMC를 뒤따라 2위 기업으로 확실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 사업 포트폴리오 측면에서 장점으로 꼽히고 있다.

빈센트벤쳐스는 삼성전자와 TSMC가 모두 고객사 반도체를 위탁생산하며 폭넓은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어 반도체 시장 성장에 따른 기회를 잡고 있다고 바라봤다.

워런 버핏이 TSMC 대신 삼성전자 지분을 매수하거나 두 기업의 주식에 모두 투자하는 대신 TSMC에만 버크셔해서웨이의 투자를 결정한 이유를 두고 다양한 해석도 나오고 있다.
 
워런 버핏은 왜 삼성전자 아닌 TSMC에 투자했나, ‘재벌 디스카운트’ 지목

▲ 삼성전자와 대만 TSMC의 반도체 파운드리공장.

삼성전자는 스마트폰을 비롯한 주요 하드웨어 생태계 분야에서 애플과 맞설 수 있는 유일한 기업으로 자리잡고 필요한 반도체도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수직계열화 구조를 강점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빈센트벤처스는 삼성전자가 TV와 가전, 스마트폰과 반도체 등 여러 사업을 동시에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 오히려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삼성전자가 완제품과 반도체 등 부품사업에서 모두 성공적으로 사업을 유지해야 기업가치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 주식 매수에 어느 정도 리스크를 부여하고 있다는 의미다.

빈센트벤처스는 삼성이 ‘재벌 디스카운트’를 안고 있어 근본적으로 기업가치를 온전히 인정받기 어렵다는 점도 주가에 불확실성을 반영할 수 있는 요인이라고 바라봤다.

재벌 디스카운트는 한국 재벌기업들이 지배구조 측면의 약점 때문에 안고 있는 ‘코리안 디스카운트’와 비슷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삼성도 이런 기준을 두고 볼 때 예외가 아니다.

이재용 회장 등 삼성 오너일가가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율이 안정적 지배력을 확보하기 부족한 수준에 그치고 일부 지분은 금융계열사가 보유하고 있는 기형적 구조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잠재적으로 경영권 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존재하고 재벌기업 특성상 오너의 영향력이 커 경영진과 이사회가 독립성을 인정받기 어렵다는 점도 삼성전자 지배구조에 약점으로 꼽힌다.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워런 버핏은 2020년 주주들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기업의 CEO와 이사회가 갖춰야 할 독립성과 다양성, 지배구조의 중요성 등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내놓았다.

최고경영자 및 이사회의 독립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조되는 주제에 해당하는 만큼 기업들이 이런 점을 염두에 둬야만 한다는 것이다.

워런 버핏의 이런 메시지는 그의 투자 철학에도 반영되고 있을 공산이 크다. 결국 삼성전자 대신 TSMC에 투자를 결정한 배경에도 이런 요소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TSMC는 장중머우 창업주가 여전히 막강한 존재감을 보이고 있지만 자녀에 경영권을 승계하는 대신 전문경영인에 완전히 권한을 맡기고 이사회도 글로벌 반도체 관련기업에서 전문성과 경험을 쌓은 대만과 미국, 유럽 출신의 다양한 인물로 구성되었다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빈센트벤처스가 삼성의 재벌 디스카운트를 지적한 것은 TSMC와 이런 측면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는 점을 언급한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빈센트벤처스는 삼성전자도 TSMC와 함께 반도체시장에서 더 강력한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며 삼성전자가 애플과 같이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측면의 장점을 결합하는 일이 기업가치 상승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았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