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채널Who]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로 유럽 국가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EU의 수장격인 독일은 전체 에너지의 27%를 천연가스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 천연가스의 55%를 러시아산 천연가스가 차지하고 있어 러시아의 갑질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이에 그동안 지상 파이프라인으로 값싼 천연가스를 이용해온 유럽 각국은 이제 바다 건너 미국과 아랍의 천연가스에 눈을 돌리고 있다.
바다 건너편 천연가스를 가져오려면 산유국에서 액화천연가스(LNG)로 가공한 뒤 극저온선박으로 운송해 목적지에서 다시 가스로 기화하는 다양한 공정을 거쳐야해 훨씬 비싼 비용을 지불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유럽 국가들이 수급 다변화를 추진하는 까닭은 안보 앞에서 돈은 문제가 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북미와 아랍 산유국들은 쾌재를 부르고 있다. 그동안 가격 경쟁력에서 밀려 수출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제는 비싼 값을 주고라도 사줄 국가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2022년 현재 미국은 세계 최대 천연가스 수출국인데 이를 더 늘리기 위해 항만 터미널과 액화플랜트 건설을 자체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최근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유럽 동맹국에 천연가스를 최소 150억 톤 추가 공급하기 위해 국제 파트너들과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아랍 국가들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국영기업 아람코는 2030년까지 천연가스 생산량을 50% 이상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카타르 국영기업 카타르석유는 2026년까지 천연가스 생산량을 46% 늘리려고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4기의 천연가스 액화 플랜트 건설을 준비하고 있다.
이처럼 산유국에서 천연가스를 수출하기 위한 건설 수요가 늘면서 그 기회가 국내 플랜트 기업까지 닿을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국내에서 천연가스 액화플랜트를 말할 때 주로 언급되는 기업은 대우건설이다.
천연가스 액화공정에는 천연가스를 –163℃로 냉각하고 액화해 부피를 1/600배로 압축하는 고난도 배관공사가 수반되기 때문에 후발주자인 한국기업들은 시공사로 참여하거나 일부 일감을 나눠 갖는 하도급업체로 참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액화공정의 핵심기술은 미국 정유기업이 독점하고 있으며 액화플랜트 건설을 총괄하는 EPC(설계와 금융조달, 시공까지 모두 책임지는 계약)시장은 미국, 일본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이밖에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 기업의 참여도 활발하다.
대우건설은 2021년 나이지리아 천연가스 액화플랜트 EPC를 국내 최초로 원청 수주했다. 이 과정을 보면 한국 건설기업들이 어떻게 해외시장을 개척하는지 엿볼 수 있다.
대우건설은 1978년 처음 나이지리아에 진출한 뒤 세계 천연가스 매장량 7위, 석유 매장량 10위 국가로서의 잠재력에 주목해 1980년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그 뒤 70여 개 공사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현지고객에 최적화한 계획수립능력을 갖춘 시공사로 자리매김했다.
대우건설은 나이지리아를 거점으로 삼아 파푸아뉴기니, 알제리, 러시아에서 천연가스 액화플랜트 시공을 맡았으며 지금은 전세계 액화플랜트 시공 분야에서 시장 점유율 10%를 차지하는 수준까지 올라섰다.
지난해 대우건설은 2021년 코로나19에 따른 플랜트 수주 감소로 플랜트사업부 직원을 15% 감축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는데 다가오는 액화플랜트 호황에 올라탈 수만 있다면 그동안의 어려움을 만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천연가스는 과거 쓸모없어져서 태워버리기도 했는데 이제 글로벌 에너지 안보를 뒤흔들고 에너지 시장의 판도를 바꿔놓고 있다.
한국기업이 그동안 선진국들만의 잔치판이었던 천연가스 액화플랜트 카르텔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까? 천연가스 시장을 움직이는 큰손들의 선택을 지켜봐야 한다. 조충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