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4회 서울국제건축영화제에서는 레이프 칼도어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 건설기'가 상영된다. 사진은 프랑스 파리에 있는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 <트립어드바이저> |
[비즈니스포스트] 올해로 14회를 맞은 서울국제건축영화제가 3년 만에 오프라인에서 열리고 있다.
서울국제건축영화제는 아시아권에서 유일한 건축영화제다. 올해는 세계 15개국에서 장편 영화 12편, 중단편 영화 12편 등 모두 24편의 영화가 출품됐다.
건축영화라는 장르 자체가 약간은 생소한 영역인데 올해 영화제에서는 어떤 영화들이 상영될까?
28일 이화여자대학교 ECC건물 아트하우스 모모에서는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 건설기’ 등 모두 9편의 영화제 출품작을 만나볼 수 있다.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 건설기는 캐나다의 레이프 칼도어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이번 영화제에서 전설적 건축가들의 생애와 작품, 세계적 건축물을 소개하는 마스터&마스터피스 부문에 출품됐다.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 건설기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프랑스 파리의 국립 오페라 공연장인 ‘바스티유 오페라’ 건물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는 1982년 프랑스의 미테랑 정부가 추진한 현대식 극장 건설 프로젝트에 얽힌 코믹하고 극적인 사건을 다시 꺼내왔다.
1981년 대선에서 승리한 프랑소아 미테랑 대통령은 악명 높은 바스티유 감옥에 있던 자리에 일반 시민들을 위한 오페라 극장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미테랑 정부는 극장 설계를 ‘블라인드 공모’로 진행했는데 여기서 재밌는 일이 벌어진다.
바스티유 오페라 설계 공모에는 무려 756명이 응모했고 심사위원들은 미국의 유명한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의 작품을 뽑았다고 생각했다. 위원단 사이에서 소문도 그렇게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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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4회 서울국제건축영화제 출품작인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 건설기' 소개 사진. <서울국제건축영화제 홈페이지> |
하지만 1983년 11월 공개된 디자인은 건축계에서 전혀 경력도 이름도 없는 신예 건축가의 작품이었다. 우루과이 출신의 캐나다 건축가 카를로스 오트의 작품이 뽑혔던 것이다.
카를로스 오트 건축가의 첫 번째 포트폴리오가 된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은 거대한 선박의 모양을 형상화한 디자인으로 20세기 말 프랑스를 상징하는 기념비적 건축사업 ‘위대한 프로젝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가 됐다.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은 미테랑 사회당 정부가 일반 시민들이 값싼 관람료로 오페라를 볼 수 있게 하겠다는 취지에서 지어진 극장인 만큼 궁정오페라의 잔재인 ‘박스석’을 없애고 모든 관객이 공평하게 무대 정면을 볼 수 있게 설계됐다.
미테랑 대통령은 프랑스 혁명의 시발점이 된 바스티유 감옥 습격 200주년이 되는 1989년 7월13일 바스티유 오페라의 개관 테이프를 끊었다.
▲ 프랑스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 내부 모습. <트립어드바이저> |
영화 자체도 촬영 당시 파리에서 노동자 총파업이 진행되고 있어 촬영진이 어디를 가든 폭도와 경찰이 충돌하고 있었다고 한다.
올해 서울국제건축영화제의 한국 출품작 가운데는 ‘고양이들의 아파트’라는 영화가 눈길을 끈다.
고양이들의 아파트는 이미 올해 3월 롯데시네마, CJCGV 등 상업영화관에서도 개봉됐던 작품이다.
고양이들의 아파트는 단군 이래 최대 규모 재건축사업으로 최근에도 이슈의 중심에 있는 서울 둔촌주공아파트 단지에 살았던 길고양이들의 이주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계속해서 개발되는 도시와 이동하는 사람들을 보여주면서, 도시 속 동물들과 사람의 공존의 가능성을 영화는 묻고 있다.
둔촌주공은 서울 강동구 둔촌동 일대 1980년에 준공된 주공아파트 1단지부터 4단지까지를 말한다. 1~4단지를 합쳐 아파트 145개 동, 모두 5930세대가 살던 이 거대한 단지는 250여 마리 길고양이에게도 삶의 터전이었다.
▲ 제14회 서울국제건축영화제 어반스케이프부문에는 한국 정재은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고양이들의 아파트'가 출품됐다. 사진은 영화의 배경인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단지 모습. <서울국제건축영화제 홈페이지> |
영화 고양이들의 아파트는 2017년 5월 주민들이 이주하기 시작한 때부터 아파트 건물이 모두 철거된 2019년 11월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단지에서 살던 고양이들을 돌봐주던 일부 주민들과 동물활동가들이 함께 모여 ‘둔촌냥이’라는 이름으로 고양이들의 이주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모습을 카메라는 따라간다.
둔촌냥이는 ‘깜이야’, ‘호동아’, ‘쿠키야’, ‘뚱이야’라고 주민들은 붙여준 이름까지 갖고 있다. 이 놈들은 최근에도 SNS 계정 등을 통해 입양, 이주 소식 등이 공유되고 있다. 둔촌주공 아파트에 살던 시절 귀여운 사진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고양이들의 아파트를 연출한 정재은 감독은 이전에도 건축영화를 여럿 선보였다. 고인이 된 공공건축의 대가 정기용 건축가의 삶과 그의 건축물을 담아낸 ‘말하는 건축가', 서울시 새 청사 완공까지 7년의 과정을 그린 ‘말하는 건축 시티:홀’, 도시 속 아파트와 그 안의 삶을 이야기한 ‘아파트 생태계’ 등이 그의 연출작이다.
▲ 정재은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고양이들의 아파트'의 한 장면. <엣나인필름 인스타그램> |
이 밖에 올해 영화제에는 1970년대 건축물인 영등포 대신시장 상가아파트를 바탕으로 근대화시대 주거문제 해결 방안이었던 공동주택 공간의 의미를 살펴본 ‘대신맨숀: 영등포 건축문화유산’, 예술의 전당으로 유명한 김석철 건축가가 단독주택 같은 아파트로 설계한 대구 가든테라스로 도시와 공간을 이야기한 ‘안녕, 가든테라스’ 등 한국 영화들이 관객을 찾아간다.
개발과 도시재생 개념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인천 원도심 중구의 이야기를 다룬 ‘아주 오래된 미래도시’, 해군기지가 들어선 제주도 강정마을 이야기를 다룬 ‘평화가 사람 속을 걸어다니네’ 등도 있다.
올해 영화제에서는 친환경, 스마트도시 등 현재 건축계의 핵심 이슈를 주제로 한 스페셜부문도 따로 편성됐다.
스페셜부문 출품작인 ‘발다우라: 친환경적 격리생활’은 세계 여러 곳에서 온 차세대 건축가들이 바르셀로나 콜세롤라 자연공원 한가운데서 거주하면서 환경친화적 도시설계의 미래를 연구하는 모습을 스크린에 펼쳐보인다.
영화 ‘스마트한 도시를 위하여’에서는 세계 인구의 50%가 도시에서 사는 오늘날 미래 도시는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기능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도시 계획자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제14회 서울국제건축영화제는 27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30일까지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ECC건물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출품작을 상영한다. 오프라인 행사가 끝나는 30일부터는 네이버TV를 통해 온라인으로도 7일 동안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