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레고랜드 관련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채무불이행 사태로 발생한 자금시장 경색 상황을 풀기 위해 유동성 공급 지원을 어떻게 할지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 총재는 고공 행진하는 물가를 잡기 위해 지속적으로 금리를 올려나가고 있는데 유동성 지원책은 이러한 통화정책 기조와 배치되기 때문이다.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사진)가 자금시장 경색 상황을 풀기 위해 유동성 공급 지원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방안을 놓고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
이 총재는 정부가 마련한 유동성 공급 지원책의 결과를 살펴본 뒤에 회사채와 기업어음을 매입하는 기업유동성지원기구(SPV)의 재가동이나 비은행권을 대상으로 한 대출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2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27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 정기회의에서 적격담보대상증권에 국채 말고도 공공기관채와 은행채 등을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이 총재는 23일 열린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적격담보대상증권에 공공기관채와 은행채를 포함하는 방안을 금융통화위원회서 논의할 예정이다”며 “적격담보의 확대 정책이 가져올 효과는 이후에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논의해서 자세히 말하겠다”고 말했다.
적격담보증권은 한국은행이 시중은행에 대출을 할 때 인정해주는 담보물을 말한다. 현재 국채와 통화안정증권, 정부보증채가 적격담보증권으로 인정받고 있다.
적격담보증권에 공공기관채와 은행채가 포함되면 은행들은 이미 확보하고 있는 공공기관채와 은행채로도 한국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게 돼 자금 확보에 숨통이 트일 수 있다.
하지만 금융업계는 지금의 자금경색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한국은행이 적극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하는 제도인 기업유동성지원기구나 금융안정특별대출제도를 다시 시행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김기명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은행의 무제한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과 비은행 금융기관 대출, 증권금융 유동성 공급 등의 대책도 병형돼야 한다”며 “기업유동성지원기구(SPV)도 재가동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기업유동성지원기구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유동성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에게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 KDB산업은행이 회사채와 기업어음을 사들이기 위한 목적으로 세운 기구다. 2021년 12월에 매입 업무를 종료했다.
금융안정특별대출제도는 한국은행이 은행과 증권사, 보험사를 대상으로 우량 회사채를 담보로 최장 6개월 이내로 대출을 해주는 제도다. 코로나19 확산에 대응하면서 도입됐다가 2021년 3월에 종료됐다.
하지만 이 총재가 현재 통화긴축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시장의 요구를 받아들여 한국은행에서 직접 유동성을 공급하는 작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이 물가를 안정화하기 위해 금리 인상 폭을 높여가고 있는 상황에서 대규모 유동성을 공급하는 행동은 금융시장에 혼란을 불러오거나 중앙은행이 금리인상의 속도조절에 나설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를 시장에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도 영국중앙은행(BOE)이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는 상황에서 영국정부가 이에 상충되는 대규모 감세안을 내놓는 바람에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실제 금융권에서는 이번 지원책에 기업유동성지원기구 등을 포함시켜줄 것을 요청했으나 통화긴축을 진행 중인 한국은행의 입장에서는 이를 즉각적으로 수용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정대호 KB증권 연구원은 이 총재가 기업유동성지원기구 재가동을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을 놓고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등에서 마련한 미시적 조치를 통한 수습 과정을 지켜본 후 최종적 대책으로 마련할 가능성을 내비친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23일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앞으로 이번 방안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과 국제 금융시장 변동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필요하면 금통위에서 다시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조승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