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파운드리 '초격차'로 승부, 최시영 메모리1위 신화 재현할까

최시영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장 사장이 현지시각 3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삼성 파운드리 포럼 2022’를 열고 2027년 1.4나노 공정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삼성전자> 

[비즈니스포스트] 최시영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장 사장이 2027년 1.4나노 공정에 가장 빨리 진입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서 ‘기술 초격차’로 승부를 보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최 사장은 2015년 세계 최초로 14나노 공정에 핀펫 방식을 도입해 양산까지 성공시킨 인물로 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 1등’ 목표 달성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과거 삼성전자가 일본을 누르고 메모리반도체 세계 1위에 올랐던 것처럼 최 사장이 파운드리에서도 대만을 추월해 삼성전자를 글로벌 최강자로 이끌지 시선이 쏠린다.

4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최 사장이 이날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삼성 파운드리 포럼 2022’를 열고 2025년에는 2나노, 2027년에는 1.4나노 공정을 도입한다는 로드맵을 제시한 것을 놓고 삼성전자의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이 구체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이란 메모리반도체 1등에 이어 시스템반도체에서도 2023년까지 세계 1등에 오르겠다는 목표로 2019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내건 삼성전자의 새 비전이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에만 171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에 더해 최근 새로운 투자계획도 발표해 삼성전자의 시스템반도체 투자 규모는 총 20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의 현재 주력 사업은 메모리반도체다.

하지만 메모리반도체 수요는 경기에 민감한 성격이 있고 성장성에도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많다. 최근 글로벌 경기침체 가능성이 높아지자 삼성전자의 실적 전망치가 급격히 떨어진 것도 이런 성격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시스템반도체(비메모리) 시장은 상대적으로 경기에 덜 민감하고 성장성은 더 부각되고 있다. 시장 규모도 2021년 기준 메모리반도체 시장보다 2.6배 큰 만큼 삼성전자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삼성전자는 시스템반도체 가운데에서도 파운드리 사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반도체 설계보다는 제조에서 많은 노하우를 갖추고 있는 삼성전자의 장점을 더 많이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은 2022년 2분기 기준 16.5%로 53.4%인 대만 TSMC와 3배 이상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은 점유율 격차를 단숨에 좁히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최시영 사장은 첨단공정 개발 속도에 승부수를 건 것으로 풀이된다.

최 사장의 계획대로 2027년 1.4나노 양산에 성공한다면 세계 최초가 될 공산이 크다.

TSMC는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2027~2028년 1.4나노 양산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인텔은 2029년에 1.4나노 양산에 들어간다는 반도체 공정 로드맵을 발표한 적이 있다.

이는 극자외선(EUV) 장비를 파운드리업계 최초로 적용하고 3나노와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공정을 최초로 도입한 데 이어 1.4나노에도 가장 빨리 진입하겠다는 ‘초격차’ 전략을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된다. 당장 점유율 확대에 매달리기보다는 첨단공정에서 우위를 점해 시스템반도체 1위에 오르겠다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현재 메모리반도체 1위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것도 초격차 전략 덕분이다.

삼성전자는 1992년 9월 세계 최초로 64Mb D램을 개발하며 메모리반도체 주도권을 일본에서 한국으로 가져왔고 이후에도 경쟁사보다 1세대 이상 앞선 제품을 잇달아 선보이면서 결국 일본 기업들을 무너뜨렸다.

1992년 개발팀장으로서 64Mb D램을 개발을 주도했던 권오현 전 삼성전자 회장은 ‘일본과 기술격차가 수년은 난다’는 세간의 평가를 모두 잠재웠고 일본 도시바는 메모리반도체 1위 자리를 삼성전자에 넘겨줘야 했다.

최근 대만 언론은 삼성전자가 3~5년 안에 TSMC의 1위 자리를 위협하지 못할 것이란 주장을 이어가고 있는데 이는 1990년대 일본 언론이 펼쳤던 논리와도 유사하다.

최시영 사장은 권오현 전 회장처럼 삼성전자 내부에서 다양한 반도체 제품 개발을 주도한 핵심인재로 평가되는 인물이다.

최 사장은 삼성전자가 2015년 세계 최초로 14나노급 핀펫 공정 기반의 모바일 프로세서(AP) 생산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으며 두각을 나타냈다. 

2019년 4월 세계 최초로 극자외선(EUV) 공정을 적용한 7나노 모바일칩(AP)을 양산하는 로드맵도 최 사장 주도 아래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7나노는 첨단 파운드리 가운데 가장 널리 이용되는 공정으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극자외선(EUV) 기기 도입 초반만 해도 공정 안정화에 시간이 걸리면서 수율(완성품 가운데 양품 비율)이 기대에 못 미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점차 수율을 끌어올리며 현재 7나노는 파운드리의 주력 공정이 됐다. 

테슬라의 차세대 자율주행칩 ‘완전자율주행(FSD) 4.0 반도체’ 역시 삼성전자 7나노 공정으로 제조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 사장은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의 약점을 보완하는 방안도 찾고 있다.

파운드리는 마치 호텔 사업처럼 캐파(생산능력)를 먼저 확보하고 고객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장기적인 파트너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정해진 규격에 따라 반도체를 대량 생산하면 이를 고객이 구입하는 메모리반도체와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사업구조다.

최 사장이 클린룸을 선제적으로 건설해 안정적인 파운드리 생산 능력을 확보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과 삼성 파운드리 생태계(SAFE)를 확대 조성해 설계자산(IP), 디자인솔루션파트너(DSP), 전자설계자동화(EDA) 등과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것도 파운드리 사업 특성에 맞춰 변화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최 사장은 이날 포럼에서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기술 혁신, 응용처별 최적 공정 제공, 고객 맞춤형 서비스, 안정적인 생산능력 등 4가지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고 오랫동안 준비해왔다”며 “고객의 성공이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의 존재 이유”이라고 말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