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수연 네이버 대표이사(사진)가 네이버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으로 커머스기업을 선택했다. 그에게 주어진 '글로벌 기업' 도약의 임무를 커머스기업 인수합병이라는 방식으로 풀어내려는 행보로 읽힌다. |
[비즈니스포스트] 한 기업이 돈을 어디에 쓰느냐는 그 기업의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네이버가 2조3천억 원이라는 ‘역대급 베팅’으로 북미 최대의 온라인 중고 패션 플랫폼을 사겠다고 한 것은 네이버의 시선이 커머스에 꽂혀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네이버의 행보는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보폭을 넓히겠다는 좁은 의미에 한정되지 않는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는
최수연 대표이사를 수장으로 발탁하며 네이버를 ‘글로벌 기업’으로 만들어달라는 임무를 부여했다.
이런 흐름에 비춰볼 때 최 대표에게 커머스 투자는 콘텐츠 투자와 함께 글로벌 기업 도약을 위한 승부수의 한 축으로 읽힌다.
◆ 네이버는 왜 포쉬마크를 주목했나, 커뮤니티의 가능성에 시선
4일 네이버가 북미 최대의 온라인 중고 패션 플랫폼 포쉬마크를 16억 달러(약 2조3441억 원)에 인수하기로 한 것은 최 대표 취임 이후, 네이버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네이버가 여태껏 진행해왔던 인수합병 가운데 가장 큰 것은 2021년 5월 인수를 완료한 북미 최대의 웹소설 플랫폼 왓패드 투자였다. 당시 인수에 든 금액은 6억 달러였다.
네이버가 이 기록을 2년도 지나지 않아 갈아치운 것은 그만큼 네이버의 성장에 포쉬마크라는 회사가 절실하게 필요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네비어가 포쉬마크 인수와 관련해 글로벌 투자자와 미디어를 대상으로 이날 오전 10시에 연 컨퍼런스콜의 자료를 보면 왜 포쉬마크를 선택했는지 이유를 엿볼 수 있다.
네이버는 이 자료에서 포쉬마크가 가진 커뮤니티의 중요성을 주목했다.
인수합병의 의미를 설명하는 첫 번째 장에서 포쉬마크를 ‘스타일 공유를 위한 소셜 플랫폼’이라고 한 줄로 정의했으며 포쉬마크의 여러 경쟁력을 소개하며 ‘커뮤니티(포쉬마크)가 목록을 선별하고 개인화된 피드(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한 마디로 포쉬마크라는 플랫폼의 특징이 ‘커뮤니티’라는 점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포쉬마크는 2011년에 설립된 중고 패션 플랫폼으로 현재 총 사용자 수가 8천만 명 이상에 이른다. 이 가운데 소비의 핵심 계층으로 꼽히는 MZ세대의 비중만 80%에 이를 정도로 파급력도 크다.
포쉬마크가 북미를 대표하는 중고 패션 플랫폼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지역 단위의 소셜 및 커뮤니티 기능을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이다.
포쉬마크 고객들은 미국의 우편번호와 같은 집코드(ZIP code) 단위로 가입해 비슷한 지역에 기반을 둔 인플루언서나 판매자의 피드를 보며 자신의 취향에 맞는 제품과 게시글을 볼 수 있다.
MZ세대에게 자신과 비슷하거나 동일한 취향을 가진 커뮤니티의 의미가 적지 않다 보니 포쉬마크는 이러한 커뮤니티의 긍정적 기능을 계속 발전·계승하며 결국 북미 1위 중고 패션 플랫폼에 안착할 수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현재도 포쉬마크에서 매일 50만 건 이상의 새로운 판매글이 올라오고 ‘좋아요’와 ‘공유하기’ 등 상호작용도 10억 건 이상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네이버의 설명이다.
네이버 역시 커뮤니티라면 뒤지지 않는다. 네이버카페가 그 주인공이다.
네이버카페는 2021년 말 기준으로 월간활성사용자(MAU) 수만 2800만 명에 이른다. 과거에는 40대 이상의 사용자를 주된 고객층으로 확보하고 있었지만 최근 수 년 사이에 10대부터 30대의 사용 빈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네이버가 네이버카페를 운영하면서 축적한 데이터와 꾸준히 쌓이고 있는 트렌드 데이터를 포쉬마크에 결합한다면 시너지를 낼 가능성이 충분하다.
해외언론 테크크런치도 “네이버는 포쉬마크를 인수함으로써 중고 의류를 사고 파는, 성장하는 소셜 쇼핑 플랫폼인 포쉬마크와 온라인 커뮤니티인 네이버카페 등 기존 커뮤니티를 결합할 것이다”고 내다봤다.
쿠팡과 차별화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포쉬마크는 의미가 있다.
현재 한국의 이커머스시장은 쿠팡과 네이버의 양강구도를 SSG닷컴-G마켓 연합군이 바짝 뒤쫓고 있는 구도다. 하지만 네이버가 쿠팡의 성장속도를 밑돌면서 네이버의 커머스사업에도 경고등이 들어온 게 아니냐는 분석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
네이버는 브랜드스토어와 오픈마켓, 가격비교 기능 등을 앞세워 커머스사업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갈수록 격화하는 이커머스시장에서 충성고객을 확보하기 힘들 수 있다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쿠팡은 로켓배송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는 반면 네이버에는 이에 견줄만한 결정적 한 방이 아직 부족하다는 뜻이다.
결국 소비자들이 주목하는 플랫폼으로 변화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포쉬마크는 네이버가 갖지 못한 시장과 소비자를 확보하고 있어 네이버의 성장에 기여할 여지가 크다.
◆ 이해진의 '글로벌 기업 도약' 특명 받은 최수연, 커머스로 네이버 생태계 넓힌다
네이버의 포쉬마크 인수는 글로벌 진출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최수연 대표가 지난해 말 네이버 수장에 내정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글로벌 진출이 가장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최 대표는 1981년 출생해 서울대학교 지구환경시스템공학과를 졸업한 뒤 NHN에 입사해서 커뮤니케이션 및 마케팅 조직에서 일했다.
이후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미국 하버드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한 뒤 2019년 11월 네이버로 복귀해 글로벌사업지원 책임리더라는 직책을 맡았다.
그는 글로벌투자책임자를 맡고 있는
이해진 창업주를 보좌하며 해외 투자 및 인수합병과 관련한 법률 검토를 맡은 것으로 알려진다.
결국 최 대표가 네이버 수장에 선임된 것은 해외 진출로 성장동력을 마련하라는
이해진 창업주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라는 해석이 네이버 안팎에서 나왔다.
실제로 최 대표는 올해 4월 기자간담회를 열고 “네이버는 이제 배(倍)의 성장을 만들어내는 글로벌 3.0 단계에 돌입했다”며 “국내는 물론 일본과 북미, 유럽 등에 새로운 글로벌 비즈니스 생태계를 조성하고 5년 내 글로벌 10억 명의 사용자와 매출 15조 원을 달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2022년 4월과 비교해 사용자는 3배 이상, 매출은 2배 이상 키우겠다는 공격적인 목표였다.
최 대표는 “5년을 내다보면서 노력하다보면 그 안에 새로운 포트폴리오가 나올 수 있다고 본다”며 목표 달성 시점을 5년으로 제시하긴 했지만 자신의 3년 임기 안에 목표를 마무리하겠다는 각오도 다졌다.
당시 최 대표가 꺼내들었던 글로벌 진출 달성을 위한 수단 중 하나가 바로 커머스다. 그동안 여러 국가에서 뿌리내린 콘텐츠사업의 성과를 바탕으로 일본과 유럽 등에서 커머스라는 새 성장동력을 마련해 글로벌로 사업을 확대해나가겠다는 것이 최 대표의 생각이다.
네이버는 이번 포쉬마크 인수를 발표하며 “전자상거래 시장의 핵심 지역인 북미를 거점으로 앞으로 한국과 일본, 유럽을 잇는 글로벌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게 될 것이다”고 밝혔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