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한국 정부가 현대자동차와 기아의 미국 전기차 보조금 지급 중단에 반발하는 것은 미국의 정책이 업계 전반에 불러올 긍정적 변화를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영국언론의 분석이 나왔다.

현대차그룹이 단기적으로 받게 될 타격보다 한국 배터리 3사의 수혜와 중장기 전망에 집중한다면 오히려 한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 시행을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FT "현대차 미국 전기차 보조금 중단에 단기적 타격, 배터리3사는 수혜"

▲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 시행으로 현대자동차와 기아가 단기적 타격을 받을 수 있지만 한국 배터리 3사는 큰 수혜를 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8일 “미국 정부의 현대차와 기아 전기차 보조금 지급 중단에 따른 한국의 분노는 두 국가 사이의 불안한 관계를 수면 위로 드러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정부에서 시행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따라 현대차와 기아 등 미국에 공장을 보유하지 않은 업체의 전기차가 지원금 대상에서 제외된 일을 언급한 것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현대차그룹이 미국에 100억 달러(약 14조 원) 상당의 대규모 생산시설 투자 계획을 내놓은 뒤에도 이런 정책을 시행하면서 한국 정부의 반발을 사고 있다.

그러나 파이낸셜타임스는 전문가들의 분석을 인용해 한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 시행으로 보게 될 중장기 혜택을 고려하면 미국 정부의 행보가 ‘배신’에 해당한다는 한국의 주장은 적절하지 않다고 바라봤다.

현대차와 기아 등 한국 자동차기업은 당장 타격을 받을 수 있지만 미국에 공장을 설립하고 있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삼성SDI 등 한국 배터리업체는 큰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세부 내용에 따르면 미국에서 생산된 전기차 배터리를 대상으로 대규모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노무라증권 분석을 인용해 “전 세계 배터리업체들이 미국에서 생산된 배터리를 사들이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라며 “한국 배터리 3사가 완벽한 수혜기업으로 꼽힌다”고 보도했다.

증권사 UBS도 파이낸셜타임스를 통해 한국 배터리 3사가 연간 80억 달러(약 11조5천억 원)에 이르는 막대한 지원금을 기대할 수 있다며 앞으로 생산 확대에 따라 보조금 규모가 더 늘어날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배터리를 해외에 수출하는 것과 관련한 규제가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점도 중요한 요소로 언급됐다.

한국 배터리 3사가 미국공장에서 제조한 배터리를 유럽 등에 수출한다면 글로벌시장 진출을 본격화하는 중국 경쟁사들에 강력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UBS는 한국 배터리 3사가 미국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대규모 투자를 진행할 동기를 확보하게 됐다며 중국 경쟁사들에 맞서 상당한 이점을 확보하게 됐다고 바라봤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미국 정부의 정책이 현대차에 실제 타격으로 이어질 지 여부도 아직 확실하지 않다는 시각을 보였다.

미국에 전기차 생산공장을 보유하고 있는 자동차기업들도 어차피 중국산 부품과 원재료 비중을 제한하는 보조금 지급 정책에 따라 당분간 정부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인플레이션 감축법 세부 조항에 따르면 2024년부터 중국과 러시아 등 미국의 적대적 국가에서 조달한 부품과 재료 비중이 일정 기준을 넘는 전기차는 보조금을 받지 못한다.

결국 현대차가 미국 전기차공장을 설립해 가동을 시작할 때까지도 다수의 자동차기업이 보조금을 받기 어려워져 실질적으로 업체들 사이 큰 격차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한국이 미국 정부의 정책에 분노를 느낄 이유는 충분하지만 단일 기업에 미치는 단기적 영향만에 집중해서는 안 된다”며 “한국 정치인들이 전기차산업 전반에 미칠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중장기적 효과에 눈을 돌려야 할 때”라고 보도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