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단지 이름 바꾸니 집값이 껑충, 아파트 ‘택갈이’ 열풍은 계속된다

▲ 최근 2~3년 사이 서울을 비롯해 전국 아파트값이 급격하게 폭등하면서 아파트 단지 이름를 바꾸는 일이 유행처럼 번졌다. 

[비즈니스포스트] “우리 아파트에 새 이름을 지어주세요.”

올해 7월 대형 포털사이트의 한 아파트 입주민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다. 이 아파트에서는 최근 단지 외부 벽 도색작업을 진행하면서 이름도 새롭게 바꿔 달자는 의견이 나왔다. 

이름을 바꿔 이미지를 바꾸고자 하는 것인데, 이는 결국 아파트 값을 올리는 길이기도 하다.

25일 건설·부동산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최근 2~3년 사이 서울을 비롯해 전국 아파트값 폭등과 함께 거세졌던 아파트 이름 변경 바람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다른 여느 상품들과 마찬가지로 아파트도 간판인 이름이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름을 통해 구축, 신축, 브랜드 유무 등 아파트의 값을 결정하는 다양한 요인들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동우 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 교수가 내놓은 ‘명칭변경 사례를 통해 살펴본 아파트 브랜드 프리미엄에 관한 연구’ 논문을 보면 서울 아파트 명칭 변경 사례를 비롯해 데이터 4만여 개를 이중 분석한 결과 더 좋은 브랜드로 이름을 바꾸면 아파트 가격이 약 7.8%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는 2006년 이후 서울의 아파트 명칭 변경 사례 가운데 브랜드와 지역명과 관련된 명칭 변경 사례를 주로 분석했다. 다만 이름 변경에 따른 가격 상승 효과는 단기간에 그쳤으며 지역명과 관련된 변경은 큰 효과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아파트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목적의 명칭 변경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특히 20년 전 삼성물산의 래미안, GS건설(당시 LG건설)의 자이 등이 출시돼 아파트 브랜드 시대가 본격화되자 많은 아파트 단지들이 ‘우리 아파트에도 브랜드를 붙여달라’고 민원을 넣었다.

삼성아파트는 ‘래미안’으로, LG빌리지는 ‘LG자이’로, 대우아파트는 ‘대우 푸르지오’로 이름을 바꿔달겠다고 나온 것이다. 

이를테면 2002년 준공한 대우드림타운은 2006년 영등포푸르지오로 이름을 변경했고 1995년 준공한 서울시 영등포구 삼성아파트는 래미안당산1차로 새 간판을 달았다.

이 밖에도 당시 당산동 삼성2차와 강마을 삼성아파트, 용산 이촌동의 한강대우아파트가 각각 래미안, 푸르지오로 이름을 바꿨다. 현대아파트 단지들에서도 현대아이파크로 이름를 바꾸는 일이 잦았다.

너도나도 새 브랜드로 이름을 바꾸겠다고 나서자 2006년 당시 건설교통부가 변경 사유도 없이 집값을 띄우기 위해 아파트 명칭을 바꾸는 행위를 금지하기도 했다. 이에 증축이나 개축, 복도식의 계단식 전환 등 건축물의 내용 변경 없이 아파트 벽에 새 이름을 다는 단순 명칭 변경이 금지됐다. 

그러다 최근 5년 사이에는 선호도가 높고 개발호재가 있는 인근 지역명이나 지하철역, GTX(수도권광역급행열차) 정차역 등을 아파트 이름에 반영하려는 곳이 많아졌다.

대표적 예로 지난해 경기 안양과 의왕시에서는 아파트 이름에 GTX-C노선 정차역으로 추가된 인덕원역을 추가하려는 단지들이 줄을 이었다. 인덕원역 주변뿐 아니라 인덕원역에서 도보로 40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 단지도 ‘인덕원’을 추가하기 위한 이름 변경을 추진했다. 

2000년 준공한 안양시 동안구의 삼성래미안이 ‘인덕원 삼성래미안’으로 변경을 추진했고 의왕시 내손동의 의왕 내손 이편한세상도 ‘이편한세상 인덕원 더 퍼스트’로 이름을 바꿨다.

관양동의 ‘평촌 더샵 센트럴시티’, ‘동편마을3단지’와 의왕시 내손동 ‘포일자이’, 포일동 ‘포일 숲속마을 3·4·5단지’ 등도 단지 이름에 인덕원을 추가하는 이름 변경을 추진했다.

인덕원역을 끼고 있는 안양시와 의왕시는 실제 2021년 한 해 동안 아파트값이 각각 16.8%, 24.3% 올랐다. 이는 경기 전체 아파트값 평균 상승률인 11.2%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서울 강서구 방화동에서도 아파트 이름 변경 바람이 불었다. 

개발호재가 있는 마곡지구와 같은 생활권 이미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방화12단지 도시개발공사아파트는 2022년 1월 ‘마곡중앙하이츠아파트’로 이름을 변경했다. 방화2-2그린아파트도 마곡한강그린 아파트로 이름을 바꾸기 위한 행정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강서구에서는 앞서 2021년에도 신안네트빌, 방신서광, 한숲마을대림, 방화현대, 방화동 한진로즈힐 등 5개 단지가 모두 ‘마곡’을 포함한 새 이름을 달았다.

아파트 이름을 바꾸기 위해 지자체와 소송까지 벌이는 사례도 있다.

서울 양천구 신월동의 신정뉴타운 롯데캐슬 아파트는 현재 아파트 명칭 변경을 두고 양천구청과 법정다툼을 벌이고 있다.

신정뉴타운 롯데캐슬은 ‘목동센트럴 롯데캐슬’로 이름을 바꾸려고 했다. 하지만 양천구청이 단지가 목동과 멀리 떨어져 있고 행정구역도 명확하게 구분돼 있다는 이유로 신청을 반려하면서 입주자 대표회의는 서울고등법원까지 소송을 끌고 갔다.

신정뉴타운 롯데캐슬은 현재 소송이 끝나지 않았지만 이미 아파트 단지 입구 문주에는 목동센트럴 롯데캐슬이라는 이름을 달았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올해 8월 출간한 ‘부동산트렌드 수업’이라는 저서에서 아파트값 우상향을 맹신하는 한국사회의 모습을 두고 ‘아파트교(敎)는 한국에서 유독 두드러지는 세속화된 종교이자 현대판 기복신앙’이라고 표현했다.

김희선 부동산R114 관계자는 2000년대 초반 이름을 바꾸면 이미지가 좋아지고 집값이 오른다는 기대감으로 브랜드 아파트로 개명에 적극 나섰던 것을 두고 “아파트의 가치는 단순히 브랜드가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교통, 공원, 녹지공간, 편의시설, 교육환경 등 입지와 인프라 등 요소가 근본적으로 충족된 상태여야 한다”고 말했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