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무리한 압박에 역풍 맞나, 한국-일본-대만 중국과 반도체 협력 가능성

▲ 한국 등 동맹국을 향한 미국 정부의 무리한 압박이 오히려 중국과 동맹국의 반도체 협력을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정부가 반도체 지원법 및 ‘칩4 동맹’ 연합체 구축과 관련해 한국 등 동맹국을 대상으로 무리한 요구를 내놓으면서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한국과 일본, 대만이 중국이 아닌 미국과 반도체 공급망 분리를 시도하면서 오히려 중국과 반도체 분야 협력을 더욱 강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2일 일본 니케이아시아가 보도한 더글라스 풀러 코펜하겐 비즈니스스쿨 교수의 논평에 따르면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무리한 압박이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본격적으로 시행을 앞둔 반도체 지원법과 관련해 미국에서 반도체공장 건설 보조금과 인센티브를 받는 기업의 중국 시설 투자를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 대만 등 주요 동맹국이 미국에서 주도하는 반도체 국가연합 칩4 동맹에 참여해 중국 반도체산업을 함께 견제하도록 하는 계획도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풀러 교수는 미국 정부의 이런 시도가 장기적으로 역효과를 일으킬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바라봤다.

중국 반도체산업을 견제하는 일은 여러 국가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반발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바이든 정부는 중국 반도체산업을 향한 규제를 갈수록 강화하고 있다.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공급하는 업체들이 중국에 일부 프로그램을 수출할 수 없도록 하는 조치가 최근 시행됐고 엔비디아와 AMD 등 기업의 인공지능 반도체도 수출 규제 대상에 올랐다.

더 나아가 중국 최대 파운드리업체인 SMIC가 반도체 생산에 반드시 필요한 노광장비를 아예 사들일 수 없도록 하는 제재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풀러 교수는 “바이든 정부의 잇따른 규제 강화 조치는 세계 여러 반도체기업들이 업황 악화로 고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뤄졌다”며 “이들이 중국 반도체기업에 기술 우위를 유지하는 일도 어려워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 정부가 중국의 반도체 설계 및 기술 발전을 방해한다면 중국 기업을 고객사로 두고 있는 대만 TSMC나 삼성전자 등 반도체 파운드리업체에도 타격이 번질 수밖에 없다.
 
미국 무리한 압박에 역풍 맞나, 한국-일본-대만 중국과 반도체 협력 가능성

▲ 삼성전자와 대만 TSMC의 반도체 파운드리공장.

중국에 일부 고성능 반도체를 수출하기 어려워진 엔비디아 및 AMD도 TSMC와 삼성전자의 주요 고객사에 해당하는 만큼 파운드리업체들이 이중고를 겪게 될 수 있다.

더구나 중국 반도체기업들이 미국의 압박에 대응해 자체적으로 반도체 및 반도체장비 설계와 생산 능력을 강화하기 시작한다면 중장기적으로 한국과 대만 기업들의 시장 점유율은 낮아질 공산이 크다.

한국과 대만에서 모두 중국을 반도체 주요 수출 국가로 두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미국 정부의 강력한 규제가 중국뿐 아니라 주변 국가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되는 셈이다.

미국 정부는 TSMC와 삼성전자 등 미국에 반도체공장을 신설하고 있는 기업들이 중국에 시설 투자를 제한하도록 하는 정책을 계속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더해 한국과 일본, 대만을 대상으로 칩4 동맹에 가입해야 한다는 압박도 꾸준히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이런 무리한 시도가 결국 바이든 정부의 의도대로 중국을 세계 반도체 공급망에서 고립시키는 대신 미국을 고립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풀러 교수는 “TSMC와 삼성전자 등 기업은 지금과 같은 추세가 이어질수록 미국에 의존을 낮춰야 한다는 판단을 하게 될 수도 있다”며 “대만과 한국 파운드리업체, 일본 반도체 장비기업이 중국 고객사와 첨단 반도체 생산기술 확보에 힘을 합칠 수도 있다”고 바라봤다.

미국이 중국에 기술 및 반도체장비 수출 규제를 강화할수록 한국과 대만, 일본이 오히려 중국과 협력을 강화해 미국 정부의 압박에 따른 악영향을 극복하려 할 수 있다는 의미다.

결국 한국과 대만, 일본이 미국과 칩4 동맹을 결성해 중국과 거리를 두는 대신 중국 반도체기업과 기술 개발에 협력하면서 칩4 동맹과 유사한 형태의 폭넓은 협력 기반을 강화할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중국이 전 세계 반도체시장에서 절반 이상의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과 대만, 일본의 반도체 및 관련업체가 미국의 뜻에 따라 중국과 관계를 단절하는 일은 쉽지 않다.

미국 정부의 무리한 압박이 결국 의도했던 목적과 완전히 다른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풀러 교수는 “바이든 정부는 전 세계의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에서 최악의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며 “중국을 겨냥한 지나친 규제 시도는 동맹국과 관계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