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현대자동차그룹의 하반기 판매 실적에 청신호가 켜지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자동차업계 비수기로 여겨지는 3분기에도 판매 호조를 보이는 데다 우호적 환율환경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현대차그룹이 미국 인플레이션 완화법(감축법)에 따른 전기차 판매 위기를 넘어서는데 큰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 하반기 미국 판매 청신호, 전기차 보조금 없이 버틸 체력 축적

▲ 현대차그룹이 하반기 판매 호조를 보여 우호적 환율환경과 맞물려 미국 전기차 판매 절벽 위기를 넘어서는 데 큰 힘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은 현대차 미국 앨리바마 공장. 


2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전날 원/달러 환율은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인 1354.9원에 거래를 끝냈다. 연고점을 경신한 하루 전 종가보다 17.3원이 더 올랐다. 기존 종가 기준 최고치는 2009년 4월28일의 1356.8원으로 13년 4개월 만에 최고치다.

증권업계에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 달러화 대비 유로화 약세, 중국 경기침체 등이 뒤섞여 글로벌 달러 강세 흐름이 이어지고 있어 고환율 기조가 연말까지 계속 될 수 있다는 시선 나온다.

김효진 KB증권 연구원 "환율이 하락 기조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연준의 긴축 속도 조절, 유럽의 에너지 공급 개선, 중국의 부동산 가격 상승 전환 등이 필요하다"며 "이는 연말 이후가 될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고 말했다.

현대차·기아와 같은 수출 기업에 있어 원/달러 환율 상승은 수출물량과 외화표시 수출가격이 일정하다고 가정할 때 환율이 상승하는 폭만큼 매출이 증가되는 효과가 발생한다. 현대차와 기아는 올해 2분기 1년 전보다 12% 상승한 원/달러 평균 환율에 힘입어 각각 6410억 원, 5090억 원의 영업이익 증가 효과를 봤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현대차와 기아 미국판매법인은 8월 기준 역대 최대 판매를 동시에 기록해 미국에서 거두는 이익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8월 미국에서 현대차는 6만4335대, 기아는 6만6089대의 자동차를 판매했다. 지난해 8월보다 각각 14%, 22% 늘었다.

현대차 가운데는 투싼(1만4305대)과 엘란트라(1만4238대)가, 기아 차 중에는 스포티지(1만2986대)와 포르테(1만1838대)가 가장 많이 팔렸다.

현대차그룹은 미국뿐 아니라 8월 글로벌 판매에서도 호조를 보였다. 현대차와 기아는 8월 글로벌 판매에서 1년전 보다 각각 판매량이 11.6%(33만4794대), 10.4%(23만9887대) 늘었다. 현대차와 기아가 모두 두자릿수 판매 증가율을 기록한 것은 지난해 6월 뒤 1년 2개월 만이다.

7월에도 현대차와 기아는 1년 전보다 판매량이 4.0%, 6.3% 증가했다. 3분기 들어 두 달 연속 실적 호조를 보인 셈이다.

일반적으로 3분기는 연말 자동차 최대 성수기인 4분기와 계절적 성수기인 2분기 사이에 낀 비수기로 여겨진다. 

더욱이 8월 미국 자동차시장 인센티브(판매 장려금)이 1117달러를 기록한 가운데 현대차기아의 인센티브는 각각 409달러, 450달러에 그쳤다.

비수기에도 판매량이 호조를 보이는 가운데 인센티브는 낮게 유지되고 환율 상승세는 더 커지면서 하반기 미국에서의 이익체력은 더 튼튼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조수홍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하반기 공급 개선이 예상되지만 빠듯한 차량 재고 상황은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며 "과거보다 매우 낮은 수준의 인센티브 수준(레벨)이 유지되는 가운데 가동률 개선 효과가 손익에 더 긍정적인 영향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달 16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 한해 보조금(세액공제)을 지급하는 내용을 담은 '인플레이션 완화법(감축법, IRA)'에 서명하면서 이 법이 즉각 발효됐다.
 
현대차그룹 하반기 미국 판매 청신호, 전기차 보조금 없이 버틸 체력 축적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현지시각 16일 인플레이션 완화법에 사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내년부터는 전기차 배터리에 사용되는 핵심 원재료와 배터리 부품이 대부분 북미에서 생산되거나 중국 등 적대적 국가가 아닌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동맹국에서 수입돼야 한다는 조건이 추가된다.

미국 에너지부는 이달 16일부터 올해 12월31일까지 IRA 발효에 따라 대당 최대 7500달러(약 1천만 원)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전기차 목록 발표했는데 아직 미국에서 전기차를 생산하지 않고 있는 현대차그룹 전기차는 모두 제외됐다.

전기차 보조금 혜택 제외로 현대차그룹 전기차들의 가격 경쟁력이 크게 후퇴해 판매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이에 정부와 현대차그룹은 IRA 시행과 관련한 전방위적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최근 외교부는 현대차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 공장이 완공되는 2025년까지 법안을 유예해 달라고 미국 측에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산업통상자원부도 '북미 내'로 규정된 전기차 최종 조립 및 배터리 부품(소재) 요건을 완화해 줄 것을 미국 통상 당국에 요청했다.

현대차그룹은 내년 착공 예정이던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 공장 건설 일정을 6개월 가량 앞당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고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대응 마련을 위해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하반기 출발점에서 현대차그룹의 판매 호조는 우호적 환율환경과 맞물려 IRA에 관한 대응책이 구체화되기까지 전기차 판매 타격에 맞서 수익성을 방어하는 버팀목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상반기 36만9535대(제네시스 포함)의 자동차를 미국에서 팔았다. 그 가운데 약 9%인 3만4518대(제네시스 포함)를 전기차가 차지했다.

현대차그룹은 미국에서 올해부터 전용전기차 현대차 아이오닉5와 기아 EV6 판매를 본격화하며 전기차 판매를 빠르게 늘리고 있으나 아직은 전기차 판매 볼륨이 크지 않은 상황이다.

유지웅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현대차와 기아의 연간 판매 대수는 각각 1년 전보다 2.5% 증가한 398만 대, 9.4% 늘어난 303만 대로 글로벌 완성차 업체 평균을 크게 상회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