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 주거복지 명성 핀란드 로푸키리, 한국 시니어타운의 미래를 묻다

▲ 핀란드 수도 헬싱키에서 차로 15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아라비안란타 마을에 있는 노인 전용 아파트 '로푸키리' 모습. <헬싱키 로푸키리 홈페이지>

[비즈니스포스트] 핀란드 수도 헬싱키에서 조금 떨어진 해안가 마을 아라비안란타에는 입주자의 평균 나이가 70세가 넘는 ‘로푸키리’라는 주거단지가 있다.

2000년 핀란드 헬싱키에 살던 마르야 달스트롬(Marja Dahlstrom) 등 직장에서 은퇴한 할머니 4명이 ‘요양원 같은 시설로 가지 말고 노인들이 함께 모여살 수 있는 집을 만들자’고 의기투합해 만들었다.

할머니들은 프로젝트 추진을 위해 곧바로 ‘활동적 노인협회(The Active Senior Association)’라는 모임을 꾸렸고 노인 전용 아파트를 짓기 위해 건축가부터 각 부문 전문가를 찾아 나섰다. 

집을 지을 땅은 헬싱키시의 지원을 받았다. 할머니들은 시에 노인을 위한 아파트를 지을 수 있도록 시가 보유한 땅을 싸게 임대해달라고 요청했고 시는 선뜻 땅을 지원했다.

핀란드는 유럽국가들 가운데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된 나라로 노인자살을 비롯한 여러 사회문제가 생겨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로푸키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노인들이 직접 발품을 팔고 주택조합을 만들고 공간설계와 공동생활 규칙까지 만들어 조성한 곳이다.
 
노년 주거복지 명성 핀란드 로푸키리, 한국 시니어타운의 미래를 묻다

▲ 핀란드 헬싱키 노인 전용 아파트 로푸키리 단지 내부 정원 모습. <로푸키리 블로그>

6년 뒤 완성된 7층짜리 건물에는 핀란드어로 ‘마지막 전력질주’를 뜻하는 ‘로푸키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라비안란타 로푸키리 1층과 7층에는 식당, 도서관, 사우나, 세탁실 등 공용공간이 조성됐고 2층부터 6층까지 모두 58가구가 입주했다. 70대부터 90대까지의 입주자들은 로푸키리에서 엄연한 ‘내 집’을 갖고 합창단부터 요가클럽, 문학클럽, 연극클럽 등 다양한 활동을 즐긴다.

로푸키리에 사는 노인들은 이런 클럽활동을 통해 책을 출간하거나 연주회, 연극 공연 등도 진행하며 사회와 단절되지 않고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식사와 빨래를 비롯한 가사활동도 직접 해결한다. 로푸키리가 인기를 끌면서 헬싱키 인근 칼라사타마지역에도 두 번째 로푸키리 모델의 노인 전용 아파트가 문을 열었고 세 번째 프로젝트도 추진되고 있다.

핀란드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로푸키리를 직접 찾아 벤치마킹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로푸키리는 헬싱키의 네 할머니가 처음 로푸키리를 구상하고 만들었던 활동적 노인협회 이름 그대로 ‘액티브 시니어’ 주거공동체의 대표 사례가 된 셈이다.
 
노년 주거복지 명성 핀란드 로푸키리, 한국 시니어타운의 미래를 묻다

▲ ​핀란드 헬싱키 노인 전용 아파트 로푸키리에서는 주민들이 함께 직접 식사를 준비한다. <로푸키리 블로그>​

한국에서도 노후 주거형태에 관한 인식과 수요가 달라지고 있다.
 
가구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과거와 비교해 건강하고 활동적 노인인 ‘젊은 노인(Young Old, 욜드)’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주거의 질을 보장하면서 다양한 문화, 취미활동과 교류가 가능한 노인 전용 주거단지는 노후 주거형태에서 선호도가 높은 선택지로 부상하고 있다. 
 
현재 한국의 대표적 고급 시니어타운으로 꼽히는 경기 용인의 삼성노블카운티, 서울 광진구 더클래식500 등은 6억~10억 원대의 높은 보증금과 300만 원에서 500만 원 중반대까지 이르는 한 달 생활비에도 입주대기자가 줄을 선다고 한다.

건국대병원이 운영하는 더클래식500의 사례를 보면 일반 아파트와 같은 주거공간부터 내부에 골프장과 수영장, 테니스장, 댄스연습실, 도서관, 영화관, 전용 공연장까지 갖추고 있다. 입주자들은 외국어부터 댄스까지 다양한 강습도 원하는 대로 들을 수 있다.

대기업의 시니어타운사업 진출이 늘어나고 있는 점에서도 달라진 사회분위기와 수요를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롯데그룹은 롯데호텔, 롯데건설 등 계열사를 중심으로 아예 시니어 주거시설 전문 브랜드를 론칭해 부산에 이어 서울 마곡지구에 대규모 시니어타운을 조성하고 있다.

롯데그룹이 만드는 시니어타운에도 단지 내 다양한 취미, 스포츠 활동 등을 즐길 수 있는 커뮤니티시설과 강좌, 여행 프로그램 등이 도입될 예정이다.

한국에서도 점점 노인인구의 요양, 치료를 위한 시설이 아닌 행복한 ‘삶’을 위한 시니어타운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현재 한국의 시니어타운들은 경제적 여유가 충분한 수요자들을 대상으로 한 ‘고급’, ‘초호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모습이다.
 
노년 주거복지 명성 핀란드 로푸키리, 한국 시니어타운의 미래를 묻다

▲ 핀란드 헬싱키 노인 전용 아파트 로푸키리 주민들이 여가활동을 즐기고 있다. <로푸키리 블로그>

기업이 주가 된 시장인 만큼 타깃층이 분명하다.

한국은 2018년 65세 이상이 인구의 14% 이상을 차지하는 고령사회에 접어들었고 2025년에는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가통계포털 2020년 주민등록 인구 기준으로는 한국 261개 시군구 가운데 109곳이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공공이 나서는 노인 주거복지 지원에 관한 사회적 요구도 더욱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앞서 살펴본 핀란드 헬싱키 로푸키리는 공공이 주도한 노인 주거단지는 아니지만 입주금이 인근 일반 아파트 시세보다 싸고 식사 등 생활비용도 저렴하다. 헬싱키시가 시유지를 저렴하게 임대해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서울시도 최근 고품질 공공주택 공급정책의 하나로 노인 복지주택인 ‘골드빌리지(가칭)’ 조성 구상을 밝혔다. 서울시는 공공주택 단지 10여 곳에 시니어세대가 병원, 공원, 커뮤니티시설, 편의시설 등 생활에 필요한 서비스를 손쉽게 이용하고 이웃, 사회와 교류할 수 있는 시니어타운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뒀다.

울산시 중구는 2023년 9월 완공을 목표로 우정혁신도시에 공공시니어주택을 짓고 있다. 경북 예천군도 사업비 7천억 원을 투입해 3천 세대 규모의 시니어주택과 요양병원, 호텔, 골프장 등으로 구성된 시니어타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