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 3나노 양산계획 차질, 삼성전자 파운드리 선두 추격 기회 잡는다

▲ 대만 TSMC가 3나노 공정 양산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삼성전자에 추격할 빌미를 주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대만 TSMC가 3나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정 양산계획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삼성전자가 추격할 기회를 잡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TSMC의 3나노 공정은 2023년 사실상 애플만이 활용하게 되는데 2024년 퀄컴, AMD, 미디어텍 등을 고객사로 확보하기 위해 삼성전자와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5일 대만 시장조사기관 이사야리서치 등에 따르면 TSMC가 애초 2023년 말까지 3나노 반도체 생산을 위해 매월 1만5천~2만 개의 웨이퍼를 사용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현재 매월 5천~1만 개로 줄인 것으로 전해졌다. 3나노 공정 양산계획을 당초 계획보다 절반 이하로 낮춰 잡은 것이다. 

이처럼 TSMC가 계획을 대폭 수정하게 된 것은 인텔을 3나노 고객으로 확보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TSMC는 애플의 SOC(시스템온칩) ‘A17바이오닉’ 외에 인텔의 14세대 CPU(중앙처리장치) ‘메테오레이크’도 자사의 3나노 공정으로 제작하는 것을 고려해 설비투자를 준비해왔던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인텔이 메테오레이크의 출시 일정을 2023년 말로 미루면서 확정된 3나노 고객은 애플만이 남게 됐다.

TSMC가 2023년 3나노 생산량이 기존 목표보다 줄어드는 것은 삼성전자에게는 기회 요인이 될 수 있다.

3나노와 같은 첨단공정은 램프업(장비 설치 뒤 본격 양산까지 생산능력을 높이는 것)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수율(결함이 없는 합격품의 비율)을 서서히 높이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 수율을 높이려면 수많은 테스트를 진행해야 하는데 생산량이 많을수록 더 많은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어 유리하다.

TSMC가 오랫동안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등을 지킬 수 있었던 것도 압도적인 생산량을 바탕으로 많은 고객사를 확보하고 이를 통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반도체를 공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3나노에서는 세계 최초 양산을 삼성전자에게 빼앗겼으며 생산계획에도 차질이 발생하는 등 악재가 늘고 있다. 

게다가 TSMC가 2023년 3나노 설비투자를 축소한다면 생산 가능한 물량이 적어져 2024년 이후 퀄컴, AMD, 미디어텍 등의 팹리스로부터 받을 수 있는 수주에도 한계가 생길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팹리스들은 일부 물량을 삼성전자에 맡기거나 아예 삼성전자의 3나노 공정을 선택할 공산이 크다.
TSMC 3나노 양산계획 차질, 삼성전자 파운드리 선두 추격 기회 잡는다

▲ 삼성전자 파운드리 공장 모습.

반면 삼성전자는 계획대로 3나노 양산에 들어가며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강문수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부사장은 7월28일 콘퍼런스콜에서 “2024년 양산을 목표로 3나노 게이트올어라운드(GAA) 2세대 공정을 개발하고 있다”며 “특히 모바일 부문에서 복수의 대형 고객사를 이미 확보했고 또한 고성능컴퓨터(HPC), 모바일 고객과 수주 관련 논의를 진행 중인데 그 규모는 점차 확대될 것”이라고 바라봤다.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3나노 2세대 수주를 따낸 고객사가 어디인지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정황을 고려하면 모바일 프로세서(AP) 엑시노스를 만드는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와 스냅드래곤을 만드는 퀄컴 등으로 꼽힌다.

퀄컴은 최근 일부 스냅드래곤 제품의 4나노 위탁생산을 삼성전자에서 TSMC로 옮기기는 했지만 여전히 삼성전자와 협력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삼성전자는 7월25일 3나노 파운드리 제품 출하식을 열었는데 퀄컴에도 3나노 제품 샘플이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는 3나노 설비투자도 예정대로 진행하고 있다.

강문수 부사장은 “파운드리는 첨단공정을 중심으로 지속해서 투자할 계획이며 2023년에는 평택공장, 미국 2024년에는 테일러공장이 가동을 시작할 것”이라며 “2025년에는 파운드리사업부가 자체적으로 투자 재원을 마련할 수 있을 정도의 수익성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지정학적' 분위기도 삼성전자가 파운드리에서 입지를 강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마크 리우 TSMC 회장은 7월31일 CNN과 인터뷰에서 “중국의 대만 침략은 TSMC의 공장 가동을 멈추게 하고 중국에도 타격을 줄 것”이라며 “TSMC의 반도체 생산 중단은 중국에 엄청난 경제 혼란을 야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리우 회장이 직접 중국의 대만 침략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것은 TSMC가 그만큼 지정학적 리스크에 많이 노출돼 있음을 인정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최근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하면서 양안 관계는 더욱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중국은 4일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에 항의하며 대만 해협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군사행동까지 보였는데 중국이 대만 해협에 실제 미사일을 발사한건 1995년 이후 27년 만의 일이다.

이런 국제정세를 감안한다면 그동안 TSMC를 선호하던 미국 팹리스들도 삼성전자를 선택지로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영국 경제분석기관 캐피털이코노믹스의 마크 윌리엄스 연구원은 “중국이 글로벌 칩 산업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방법은 문자 그대로의 침략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예를 들어 중국은 대만 국경을 둘러싸고 TSMC 등의 첨단 반도체 공급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대만에 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