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 지원법에 ‘독소조항’ 담기나, 삼성전자 중국 반도체공장에 변수

▲ 미국 정부의 반도체 지원법 시행이 삼성전자 중국 반도체공장에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나온다. 미국 의회 의사당.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정부와 의회에서 추진하는 52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지원법에 수혜 대상 기업들의 중국 반도체공장 투자를 규제하는 조항이 포함될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 지원법 수혜를 기대하고 있는 삼성전자가 해당 조항에 당장 영향을 받지 않겠지만 중장기적으로 미국 정부의 압박이 더욱 커진다면 규제 영향권에 놓일 가능성이 있다.

19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미국 의회가 장기간 계류되고 있던 반도체 지원법 통과 절차에 점차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 민주당 관계자는 파이낸셜타임스를 통해 “척 슈머 민주당 원내대표가 곧 반도체 지원법 표결 절차를 추진할 것”이라며 “의회를 적극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이든 정부에서 도입하려 하는 반도체 지원법이 시행되려면 미국 상원의회에서 다수 득표를 얻은 뒤 하원의회도 통과해야 한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슈머 원내대표가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손을 잡은 만큼 상원의회를 통과한 법안이 그대로 하원의회를 통과할 가능성도 크다고 바라봤다.

현재 미국에 반도체공장을 신설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삼성전자와 인텔, TSMC 등 기업이 해당 법안에 직접적으로 수혜를 볼 수 있는 대표적 기업으로 꼽힌다.

그러나 상원의회를 통과하는 반도체 지원법에 수혜 대상 기업들의 중국 반도체공장 투자를 규제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 오히려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인텔을 포함한 일부 반도체기업은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은 업체가 중국에서 생산할 수 있는 반도체에 제약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상원의회에서 표결을 앞두고 있는 법안은 지원 대상 기업이 중국에서 28나노미터 미만 미세공정을 활용하는 시스템반도체를 생산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8나노 이상 공정은 주로 전력반도체 등 성능이 크게 중요하지 않은 분야에 쓰이고 스마트폰 프로세서와 CPU 등 고사양 반도체는 14나노 이하 미세공정을 활용해 생산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사업에서 14나노 이하 공정을 주력으로 가동하고 있으며 중국에 파운드리 공장도 운영하지 않고 있어 해당 법안에 포함된 생산 규제에 당장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실제로 삼성전자에 대규모 지원금을 제공하기 시작한다면 중국 공장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는 것과 관련해 점차 압박을 강화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바이든 정부에서 반도체 지원법을 추진해 온 목적 가운데 하나는 결국 중국이 세계 반도체시장에서 고립된 상태에 놓이도록 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반도체 지원법에 ‘독소조항’ 담기나, 삼성전자 중국 반도체공장에 변수

▲ 삼성전자 중국 시안 낸드플래시 생산공장. <삼성전자>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 대규모 낸드플래시 메모리반도체 생산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앞으로 중국 공장에 시설 투자를 벌이거나 반도체장비를 반입할 때 미국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반도체업계의 한 관계자는 파이낸셜타임스를 통해 “현재 여러 반도체기업이 중국에 공장을 운영하거나 생산 투자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며 “미국의 강력한 규제를 환영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반도체 지원법 입법 절차가 추진되는 과정에서 의회가 중국 반도체 생산과 관련한 규제를 완화할 가능성을 유심히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삼성전자는 미국 기업들을 중요한 고객 기반으로 여기는 동시에 중국을 최대 반도체 수출국으로 두고 있어 두 국가와 모두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만 한다.

그러나 미국 정부의 지원이 곧 중국과 거리를 둬야 한다는 점을 의미한다면 앞으로 반도체 지원법이 시행되고 미국 반도체공장 투자에 도움을 받는 과정에서 관계에 균형을 맞추기 어려워진다.

바이든 정부가 삼성전자에 막대한 투자 지원금을 제공하는 데 중국 반도체공장과 관련한 대가를 어느 정도 치르도록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블룸버그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기업이 어차피 중국에 꾸준한 반도체 공급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고 바라봤다.

중국이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 기술력과 생산 능력 발전에 최근 빠르게 성과를 내면서 한국 반도체기업에 의존을 낮추고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중국 반도체산업의 상황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다”며 “중국이 이제는 충분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천천히 밀어낼 수 있는 단계에 올라섰다”고 보도했다.

결국 미국 반도체 지원법 통과는 삼성전자가 중국 반도체 생산공장 규모를 점차 축소하고 생산거점을 한국과 미국 등 다른 국가로 이동하게 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블룸버그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 및 중국과 관계 균형을 깨뜨리는 것과 관련한 잠재적 리스크를 아직 충분히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