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순 Global Watch] 지금의 인플레이션은 원자재값 급등 때문 아니다

▲ 지금이 인플레이션이 원자재 가격 상승에서 기인한 것은 아니다. 미국의 한 슈퍼마켓.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한 가지는 확실하다. 지금의 '인플레이션'은 원자재 가격 상승에서 기인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상승 추세가 꺾이기까지 했다. 전에도 언급했듯이 1982년 이후 최고라는 전년 동기 대비 9%가 넘는 인플레이션은 실물 경제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원자재 가격 지수 기준으로는 기껏해야 지난 30년간의 역사적 평균 수준에 간신히 도달한 정도다. 그러니까 전쟁이 어떻고 유가가 어떻고 이런 소리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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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과 에너지 부족으로 물가가 폭등하여(6월 물가 상승률이 전월 대비 36%에 달했다) 정권이 무너진 스리랑카도 달러가 없어서 물가가 상승한 것이지 국내 화폐량이 넘쳐서 물가가 상승한 것은 아니다. 매우 역설적이지만, 이 인플레이션 하에서(인플레이션은 이론적으로는 화폐량의 증가의 표현이다) 스리랑카는 돈이 없어서 무너지고 있는 중이다.

지금의 인플레이션은 글로벌 불균형, 또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글로벌 비효율성의 결과다. 성장이나 화폐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아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stagflation(고물가 하의 저성장)으로 귀결된다. 미국의 몇가지 흥미로운 지표들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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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차트는 지난 1945년 이후의 미국의 장기 산업생산 추이다. 2005년 이후 미국의 산업 생산은 고점을 돌파하지 못하고 있다. 다른 말로 해서, 금융 위기 이후의 '회복' 또는 '성장'은 산업 생산의 관점에서는 기껏해야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미국 인구는 2005년 이후 15%가량 증가했다. 즉, 인구 증가에도 불구하고 산업 생산은 정체 상태인 것이다. 제조업은 더 심각하다.

미국의 제조업 생산은 지난 2007년 10월의 고점에 비해 아직도 약 3% 감소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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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20년 2분기 이후의 반등에는 과거와는 다른 기묘한 측면이 있다.

미국의 수출입 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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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경기 반등기에 미국의 수출 물가 상승률은 수입 물가 상승률을 훨씬 앞지르고 있다. 2005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미국의 글로벌 지위에서 수출 물가가 수입 물가 상승률을 앞지르기 위해서는 다음 3가지 조건 중의 하나여야 한다.

(1) 미국 역외의 화폐 유동성이 미국 역내보다 훨씬 풍부해졌다. 즉, 미국보다 미국 국외에서 달러가 더 많이 유통되었어야 한다. 그러나19 코로나 이후의 각국의 달러 환율을 보면 이같은 가설은 기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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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주요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는 지난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 이후 최고 수치다. 그런데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이 차트는 유로/엔/파운드/스위스프랑 등 주요 선진국 통화와 달러화를 비교한 것이다. 이른바 개발도상국 통화의 달러화 대비 가치 변화는 사뭇 다르다.

달러/인도 루피 환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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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도상국 중 거의 유일하게 선진국에 근접한, 그리고 IMF 구제금융 이후 20여년간 연속으로 무역흑자를 기록하여 그나마 사정이 낫다는 한국 원화 환율을 보자.

달러/원 환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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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원화 환율을 보면, 과연 무역 흑자가 해당국의 달러화 대비 환율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달러화 대비 자국 통화 환율이 상승한다는 것은 그 나라에서 접근/조달 가능한 달러양이 적어졌다는 것을 뜻하며, 따라서 해당국의 전체 화폐 유통량이 감소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보충하기 위해서는 자국 통화 가치 하락을 무릅쓰고라도 중앙은행이 '화폐'를 공급하여 부족한 화폐를 보충해야만 한다.

지금 일본 중앙은행이 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같은 정책이다. 일본 중앙은행은 엔화 가치 하락을 감수해가며 중앙은행이 QE(양적완화)를 통해 국채 가격을 유지시키고 있다. 연준이 금리를 올리고 있는 마당에 터무니없는 정책처럼 보이지만, 실은 일본으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만일 일본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거나 혹은 QE(양적완화)를 중단한다는 신호를 보낸다면, 일본 국채 가격은 하락할 것이며 이는 일본 국채를 기초 자산으로(담보) 금융활동을 유지하는 일본 금융기관들에게는 파국적인 일이 된다. 그리고 이는 일본 국채시장의 내파(implosion), 즉 일본 정부의 파산으로 이어지게 된다.

즉, 일본중앙은행은 엔을 포기하더라도 국채를 지켜야만 한다. 나머지는 수요-공급의 보이지 않는 손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 즉 물가 상승 압력으로 인해 총수요가 감소해 다시 안정적인 디플레이션 환경이 될 때까지 무턱대고 기다릴 수밖에 없다. 중국도 이미 2015년 무렵부터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도 동일한 딜레마에 빠져 있다. 연간 10%에 가까운 인플레이션률에도 불구하고 굳굳이 버티다가 결국 금리를 인상하고 QE를 중단한다는 발표를 하기는 했는데, 그 경우 지난 10여 년 동안 마이너스 수익률(국채 시장가가 발행가보다 높은 상태)을 기록하며 유로존 은행들을 버텨주던 유럽 국채 가격이 하락할 것이며, 이는 유럽 은행들의 건전성에 치명적인 위협이 된다.

유럽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매우 색다른, 정치적 경로를 밟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금리를 인상하여 총수요를 감소시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비경제적 방식, 즉 전쟁을 통해, 아니 보다 정확하게는 전쟁을 빌미로 자기 발등을 찍는 터무니 없는 경제 제재를 통해 경제 활동을 위축시키고 이것이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는 요인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유럽의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경제 제재가 '논리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을 정도로 터무니 없는 자해극인 것도 이 때문이다. 분명 이같은 자해극은 효과를 보기는 할 것이지만,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오히려 인플레이션 심리를 자극하는 역풍을 불러온 것도 분명하다. 적어도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의 경기의 상대적 호황이거나, 역외 유동성의 상대적 풍부함이 수출 물가 상승률이 수입 물가 상승률을 상회하는 요인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두 번째 가설은 미국의 수출 상품이 독점적/구조적 경쟁력 우위를 확보하고 있고 따라서 경기 여부와 무관하게, 혹은 인플레이션 환경에서는 더욱 더 미국 기업들의 가격 결정력이 두드러지며, 그 결과로 수출 물가가 보다 가파르게 상승한다는 것이다.

이 가설은 첫 번째 가설보다는 그럴듯 하다(특히 미국의 수출품이 첨단 기술 제품이라는 점에서). 그러나 여기에도 난점이 있다.

왜 2005년 이후 약 10여년간 미국의 수출 물가 상승률은 수입 물가 상승률을 하회했는가? 미국은 금융 위기 이후 다시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말인가? 이에 대한 대답을 찾기는 매우 난처하다. 미국의 산업 생산성의 관점에서는 이같은 가설은 유지되기 힘들다.

(3) 세 번째 가설은 이른바 on-shoring(시장과 생산거점 일치)에 관한 것이다. 트럼프 이후 미국은 지난 40여 년간 지속되어왔던 제조업의 off-shoring(시장과 생산거점이 지역적으로 떨어져 있는 것)을 역전시킬 정책들을 강구해 왔다. 그렇다면 미국의 수입 물가 상승률이 상대적으로 지체된 것은 그동안 수입에 의존해 왔던 상품들을 국내에서 제조함으로써 경쟁이 격화되어 수입 물가 하락 압력을 불러온 것일까?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 산업 생산 지표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지난 2000년대 중반의 산업 활동 고점을 돌파한 분야가 있다.

미국 제조업 내구소비재 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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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는, 비록 트럼프가 추구한 관세를 통한 미국 제조업 국내 생산 증가 정책의 효과가 아니라, 글로벌 유통망 교란으로 인한 미 국내 생산 증가 덕분이기는 해도, 미국의 on-shoring은 나름 결실을 맺었으며, 따라서 수입 물가 하락 압력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보는 편이 가장 적합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론적으로만 본다면, 달러화가 강세인 한에는 미국의 수출 물가 상승률은 수입 물가 상승률을 상회하는 것이 당연하다.

왜냐하면 미국에 상품을 수출하는 쪽에서는 달러화 강세로 인해 동일한 달러를 지불받더라도 자국 통화 기준으로는 더 많은 매출과 이윤을 기록하게 되기 때문에, 수입상들은 상품 가격 인하를 요구하며 따라서 상대적으로 대미국 수출 물가에 대한 하락 압력이 존재한다. 이처럼 수입 물가가 상대적으로 싸지는 경우에는 미국처럼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에서는 상대적으로 국민들의 생활 수준 유지에, 비록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총수요 감소의 경우에도, 유리하게 작용한다.

결론적으로 미국이 유도해낸 deglobalization(탈세계화, 반세계화)을 통한 경제적 비효율성의 결과로서의 인플레이션은 미국 민주당으로서는 선거에는 유리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미국 경제 전체로서는 분명히 이점이 존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업에게, 그리고 그 기업에게 투자하고 있는 증시 참여자들에게 유리하다.

미국 기업 이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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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 미국 기업 이윤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리고 비록 지난 3개 분기 동안 정체 상태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이 시기 동안만큼은 인플레이션이 미국 기업 이윤에 당장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물론 지난 3월 이후 미국 개인 소비 지출이 정체 내지는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미국 기업들의 이윤도 하락하기 시작할 것이다.

미국 기업 이윤 측면에서 본다면, 특히나 미국 내의 인플레이션은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동안 해외 매출(수출 및 해외 지사 포함)을 통해 누려왔던 초과 이윤이 코로나 이전 시기부터 이미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기업들의 해외 이윤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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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기업의 해외 이윤은 지난 2017년 4분기가 고점이었고 그 후에는 감소 추세이며, 코로나 인플레이션기에도 전고점을 돌파하지 못했다. 즉, 미국 기업들에게 해외시장은 더 이상 이윤의 핵심 근원지가 아니다(2017년 이전까지는 S&P500 상장 기업의 경우, 매출의 약 40%, 이윤의 45% 가량이 해외에서 발생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으로 가장 덕을 본 것은, 미국의 금융 시장 참가자들과 기업들이었다. 실은 여기에 선행하는 더 복잡한 메카니즘이 존재한다; 미국이 어떻게 지난 40여년 동안 global currency(기축퉁화)였던 달러화를 국유화했는가(리보 금리 시장을 폐기하고 SOFR-미국 초단기 금리 시장-을 형성했는가), 국적 없던 global major bank들을 그들의 지역적 위치와는 무관하게 어떻게 연준 산하의 미국적 은행으로 전화시켰는가 등등의 선재적 금융 메카니즘의 전화가 있었다.

이것은 다음 기회에 다룰 것이다. 분명한 것은 미국은 금융적으로나, 산업적으로나, 특히 기업 이윤에 있어서 더 이상 글로벌에 그 이해를 두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코로나19 인플레이션은 그 기초 하에서 이윤을 어떻게 창출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최초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는 조 바이든이 옳다. "인플레이션은 자산(great assets)이야, 이 멍청한 son of bitch야". 이공순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