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그룹 계열사들이 최근 기술 전문가들을 공격적으로 영입하는 것을 두고 이재용 부회장의 ‘기술 초격차’ 강조에 따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 부회장은 6월18일 유럽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첫 번째도 기술, 두 번째도 기술, 세 번째도 기술”이라며 “삼성이 할 일은 좋은 사람을 모셔오고 조직이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유연한 문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이 부회장의 방침에 따라 삼성그룹은 전사적으로 기술인재를 영입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분야도 반도체, 로봇, 배터리, 증강현실(AR), 슈퍼컴퓨터, 인공지능 등 전방위적이다.
올해 초에는 삼성전자가 새 성장동력으로 키우고 있는 로봇사업팀에서 석·박사 인력만 100여 명을 채용했다. 학사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큰 규모의 채용이 진행됐는데 웨어러블 주행보조 로봇 ‘젬스(GEMS)’를 본격 상용화해 사업을 확대하기 앞서 인재를 끌어 모은 것이다.
젬스는 이르면 8월 미국에서 출시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임원급 기술인재 영입도 공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연구개발 조직인 삼성리서치는 6월 메타(페이스북)의 자회사 오큘러스VR 출신인 윤가람 상무를 AR(증강현실)랩장으로 영입했다. 윤 상무는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3년 동안 애플에서 카메라 광학 기술을 개발한 가상현실 관련 전문가다.
삼성전자는 윤 상무를 중심으로 AR글라스(안경) 등을 본격적으로 개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4월에는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출신의 반도체 전문가인 마코 치사리를 DS부문 반도체혁신센터(SSIC)장으로 영입했고 IBM, 인텔에서 인공지능과 슈퍼컴퓨팅 개발을 맡아온 로버트 위즈네스키를 부사장으로 데려오는 등 해외 인재 영입에서도 광폭행보를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 외의 계열사들도 기술인재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는데 삼성SDI는 국내 박사급 인력을 모시기 위해 7월8일 서울 조선팰리스 호텔에서 채용행사인 ‘테크 앤 커리어’를 진행하기도 했다. 삼성SDI가 박사급 인력을 대상으로 국내에서 대규모 채용행사를 진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IT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그룹이 최근 각 분야의 기술인재를 빨아들이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며 “로봇이나 인공지능 등은 다른 국내기업들도 인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삼성의 움직임에 따른 파장이 작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그룹뿐만 아니라 현대자동차그룹, LG그룹 등도 인공지능 등 첨단기술 인재를 영입을 최우선 과제로 두고 있다.
LG그룹은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빅데이터 등 첨단산업 연구개발 분야에서만 앞으로 3년 동안 전체 채용 인원의 10%가 넘는 3천 명을 채용하기로 결정했다.
현대자동차는 올해 들어 소프트웨어, 인공지능, 전동화 등과 관련된 기술인재를 적극 채용하고 있다. 올해 홈페이지에 올린 채용 안내 가운데 70% 이상이 IT관련 인재를 모집하기 위한 것이었다. 올해 상반기 신입 신규채용 부문에는 처음으로 ‘로봇 솔루션’이 포함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인공지능, 로봇과 같이 삼성, LG, 현대차가 모두 눈독들이고 있는 분야에서는 국내의 한정된 기술인재를 둘러싼 영입 경쟁이 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전통적인 제조 대기업들이 인공지능 등 IT분야의 인재를 필요로 하면서 네이버나 카카오 등 정보기술기업에서 삼성이나 현대차 등으로 이직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특히 네이버와 카카오 등이 최근 인건비 부담 등으로 부진한 실적을 거두면서 지난해와 같은 대규모 인재 채용은 당분간 진행하지 않을 공산이 커 IT 인재들의 기존 대기업업 진출 양상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기업들은 국내에서 기술인재를 확보하는 것에 한계를 느끼고 해외 기술기업을 인수하거나 해외 연구소 설립을 통해 현지 기술인재를 채용하는 방식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21년 3월 인도공과대학(DTU)에 인공지능(AI), 머신러닝, 컴퓨터 비전 등을 연구하는 ‘혁신 연구소’를 설립하기도 했다.
김경훈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주요 산업별 인공지능(AI) 도입 현황 및 시사점’이란 보고서에서 “국내 기업 내에 인공지능 전문인력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은 단 6.5%에 불과한데 이는 역량을 갖춘 신규인력 채용이 어렵기 때문이다”며 “많은 기업들이 정책적으로 전문 기술인력의 양성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