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전 세계 반도체 업황이 침체기에 접어들고 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되면서 삼성전자의 실적이 2022년 하반기부터 악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슈퍼사이클의 정점이었던 2018년 순이익 43조8909억 원을 내며 역대 최대 실적을 거뒀지만 2019년 순이익이 21조5051억 원으로 반토막 났는데 그때 상황이 재현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삼성전자 하반기 '반도체 겨울' 맞는다, 침체 신호 곳곳에서 포착

▲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 겸 대표이사 사장.


4일 글로벌 증권업계에 따르면 지난 2년 동안의 반도체 슈퍼사이클은 거의 끝났으며 다시 반도체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최소 몇 분기는 지나야 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수석 반도체 분석가인 비벡 아리야는 최근 야후파이낸스 라이브에 출연해 ”경기침체가 여러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며 “특히 반도체업종의 둔화는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고 전망했다.

산제이 메로트라 마이크론 최고경영자(CEO)도 ‘경기침체’를 사실상 기정사실화했다.

메로트라 CEO는 6월30일 콘퍼런스콜에서 “마이크론은 이번 경기침체의 반대편에서 더 강하게 부상할 준비가 되어 있다”며 “고객과 긴밀히 협력하여 최신 수요 동향을 파악하고 우리의 계획을 가능한 빨리 조정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대만 매체인 디지타임스는 AMD, 엔디비아 등이 제품 수요 약화에 따라 TSMC에 5나노 반도체 주문을 축소했거나 줄일 예정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즉 그동안 일각에서 제기돼 왔던 반도체 수요 감소 가능성이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글로벌 증권시장은 이미 반도체 업황 악화를 반영하고 있다.

미국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올해 들어 35% 이상 하락했는데 이는 미국 500대 기업의 주가를 반영하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의 올해 상반기 하락 폭인 20.6%보다 15%포인트나 높은 것이다. 또 S&P500에서 올해 상반기 최악의 주가흐름을 보인 10개 기업 가운데 4개가 반도체 기업이었다. 

블룸버그는 글로벌 반도체 생산기지인 한국의 반도체 재고에 주목하기도 했다.

올해 5월 한국의 반도체 재고는 2021년 같은 기간보다 53.4% 증가했다. 54.1%가 늘었던 2018년 3월 이후 4년여 만에 가장 큰 폭의 증가세로 이는 반도체 생산량에 비해 수요가 줄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블룸버그는 “한국은 스마트폰과 노트북에서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들어가는 메모리반도체의 세계 최대 생산국”이라며 “인플레이션 압력, 금리 인상, 소비자 신뢰 악화 및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세계 경제의 침체의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반도체 재고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삼성전자 하반기 '반도체 겨울' 맞는다, 침체 신호 곳곳에서 포착

▲ 한국의 반도체 재고 증가 추이. <블룸버그>

반도체 재고가 증가하면서 삼성전자의 하반기 실적에도 먹구름이 끼고 있다.

남대종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메모리 반도체의 수요 부진과 가격 하락이 지속될 것”이라며 “당초 시장은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올해 하반기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글로벌 거시 경제의 환경 변화로 수요 불확실성이 확대됐다”고 분석했다.

남 연구원은 삼성전자가 2022년 연결기준으로 영업이익 56조6천억 원을 낼 것으로 전망했는데 이는 시장컨센서스(증권사 예측 평균치)인 62조2천억 원에 못 미치는 수치다.

게다가 그동안 반도체산업의 성장동력이자 버팀목이었던 데이터센터 수요가 하반기부터 다소 약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박성순 케이프증권 연구원은 “2022년 상반기 가전, 스마트폰 등 소비자 IT 수요 부진이 나타나는 가운데 시장은 서버 고객의 구매 감소까지 우려하고 있다”며 “비록 북미 인터넷데이터센터(IDC) 수요가 크게 감소하지 않더라도 PC와 모바일 수요 약세로 가격협상력의 우위가 IDC업체에 넘어가 D램 가격 하락세가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삼성전자가 2018년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둔 뒤 2019년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반토막 났던 악몽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불거지고 있다.

하지만 과거와 같은 큰 폭의 반도체사이클 침체기는 오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만만치 않다.

반도체 공정의 미세화가 갈수록 어려워짐에 따라 첨단 공정으로 전환하는 속도가 둔화됐고 반도체 장비 리드타임(주문 뒤 입고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2019년 수준의 반도체 공급 과잉이 발생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대만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는 반도체장비를 리트타임이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 약 3~6개월에서 현재 최장 30개월까지 늘어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또 삼성전자, 마이크론 등 반도체기업들이 지난 경험을 바탕으로 수요 부진에 즉각적으로 대응해 공장 가동률을 축소하는 등 수익성 중심의 운영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점도 긍정적 요인이다.

박성순 케이프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2분기 실적발표 콘퍼러스콜에서 다시 한 번 통제된 공급 전략을 강조한다면 업황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생기기 시작할 것”이라며 “반도체 침체기에 진입했다기보단 업황 개선 시기가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반도체 침체기가 오더라도 기간이 과거처럼 길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미국 투자 전문매체 시킹알파는 “반도체산업은 칩 제조에 많은 비용이 발생하고 생산능력 구축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호황과 불황을 순환하는 성질을 갖고 있다”며 “하지만 미래에는 데이터 생산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반도체 수요도 추세적으로 늘 수밖에 없어 반도체 순환 주기는 앞으로 약해지거나 더 짧아질 공산이 크다”고 분석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