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옥석 가리기' 시작되나, '롯데 울타리' 벗어날 계열사 어딜까

▲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비즈니스포스트] 롯데그룹이 여러 사업 포트폴리오를 놓고 옥석 가리기에 들어갈 태세다.

바이오와 헬스케어 등 새 성장동력을 육성하려면 롯데그룹의 주력 사업들도 쳐낼 수 있다는 발언이 최근 롯데그룹 컨트롤타워에서 나왔다.

앞으로 ‘롯데그룹 울타리’ 안에 머무를 계열사와 내보낼 계열사를 선정하는 과감한 결단이 롯데그룹에서 연달아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15일 이훈기 롯데지주 ESG경영혁신실 실장이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롯데그룹의 기존 사업 일부를 정리할 수 있다고 발언한 것은 롯데그룹이 본격적으로 ‘선택과 집중’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실장이 수장을 맡고 있는 롯데지주 ESG경영혁신실은 과거 롯데그룹의 모든 방향을 설정했던 정책본부가 맡았던 역할 가운데 신사업 발굴과 인수합병, 사업 포트폴리오 고도화 등의 기능을 맡고 있는 조직이다.

정책본부는 롯데지주 출범 과정에서 과도기를 거치며 경영전략실, 경영혁신실 등으로 이름을 바꾸다가 현재는 그 기능을 ESG경영혁신실을 포함한 6개 실로 분산하고 있다.

사실상 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았던 조직인 만큼 이를 이끄는 인사의 입에서 나온 발언은 언제나 롯데그룹의 미래 전략을 보여주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실장의 발언도 마찬가지다.

이 실장은 “바이오나 헬스케어사업을 위해 기존 사업 가운데 경쟁력이 없거나 현재 돈을 벌고 있더라도 미래 전망을 봤을 때 유망하지 않은 사업은 매각할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사실상 앞으로 롯데그룹 차원에서 주도해 그룹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작업에 착수할 수 있다는 뜻으로 여겨진다. 성장성이 낮은 계열사에 인력과 재원을 배치하기보다 미래가 유망한 분야에 집중하는 쪽을 선택하겠다는 의미다.

물론 롯데그룹이 앞으로 미래를 위해 어떤 선택을 할지 현재로서는 드러나 있지 않다.

하지만 올해 롯데지주 최고경영진에게서 나온 발언들을 종합하면 롯데그룹이 어떤 사업을 중심으로 미래 포트폴리오를 구성할지 엿볼 수 있다.

이동우 롯데지주 대표이사 부회장은 3월 열린 정기주주총회에서 롯데그룹의 새로운 성장 테마로 △헬스앤웰니스 △모빌리티 △서스테이너빌리티(지속가능성) △뉴라이프플랫폼 등 4가지를 제시했다.

이와 관련한 사업기회 영역으로는 실버타운과 헬스케어 플랫폼, 대체식품소재, 전기차 충전 인프라, 자율주행,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배터리 전해액, 수소, 스마트홈플랫폼, 무인 플랫폼 등 16가지를 꼽았다.

이를 보면 롯데그룹이 앞으로 새 성장테마에 부합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회사는 롯데그룹의 미래 사업 포트폴리오에 넣어두고 그렇지 않은 계열사는 과감히 정리하는 전략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롯데그룹은 크게 주요 사업군을 유통과 화학, 식품, 호텔 등 4개로 구분한다. 2021년 11월 조직개편을 통해 이 사업군들에 헤드쿼터(HQ) 체제를 도입한 것도 이들이 주력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 가운데서도 ‘진짜 주력’은 따로 있다.

롯데지주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보면 롯데그룹은 2020년 재무회계 기준으로 매출 64조9천억 원가량을 냈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사업부문은 유통(39%)이다. 화학·건설(34%)과 호텔·관광·서비스(14%), 식품(13%) 등이 뒤를 잇는다.
롯데그룹 '옥석 가리기' 시작되나, '롯데 울타리' 벗어날 계열사 어딜까

▲ 롯데월드타워 전경. <롯데지주>

매출 비중만 보면 호텔·관광·서비스 부문과 식품 부문을 롯데그룹의 중심축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이 부문들을 대표하는 계열사 호텔롯데(1973년 설립)와 롯데제과(1967년 설립)이 롯데그룹의 뿌리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실적에는 큰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훈기 실장이 ‘미래 유망성이 낮은 회사’를 매각 대상으로 거론해놓은 만큼 이들 사업부문에 포함된 계열사들 중심으로 롯데그룹이 선택과 집중 전략을 추진할 공산이 없지 않다.

대표적으로 롯데제과를 보면 최근 3년 실적은 매출 2조 원, 영업이익 1천억 원대에서 큰 변화가 없다.

롯데제과와 곧 합병하는 롯데푸드의 최근 3년 매출은 평균 1조6천억 원대에서 정체중이며 영업이익은 2019년 295억 원, 2020년 445억 원, 2021년 385억 원 등으로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롯데제과와 롯데푸드는 합병을 통해 경영을 효율화하면 향후 실적이 상승할 수 있다는 청사진을 제시해놓고 있다.

하지만 제과산업의 성장성이 밝지 않다는 점에서 롯데그룹이 미래에도 이들 계열사를 주요 사업 포트폴리오로 지속해야만 하는지를 놓고는 의구심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

호텔롯데도 마찬가지다.

호텔롯데는 실적만 보면 고개를 들기 힘든 처지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주력 사업부인 면세사업부와 호텔사업부가 큰 타격을 받은 탓에 최근 2년 동안 누적 영업손실만 7600억 원에 이른다.

물론 호텔롯데가 한국 롯데그룹의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회사라는 점과 롯데그룹을 상징하는 롯데월드를 운영하는 법인이라는 점에서 매각은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구조조정을 통해 사업을 효율화하는 방안을 찾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밖에도 최근 실적이 부진한 롯데하이마트, 상사업을 하는 롯데상사, 성장성이 크지 않은 캐논코리아와 한국후지필름 등 비주력사업의 정리도 이뤄질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점쳐진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