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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X조선해양 채권단이 법정관리행을 결정한 25일 서울 중구 후암로 STX 서울사무소 앞에서 직원이 통화를 하고 있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회사를 살리기 위해 4조원을 투입했고, 무역보험공사가 6백억원을, 농협과 우리은행, 하나은행, 신한은행도 1조 9천억원을 지원했지만 채권단은 자율협약 개시 3년 만에 법정관리행을 결정했다. <뉴시스> |
STX조선해양의 법정관리 신청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자율협약(채권단 공동관리)을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수조 원의 자금이 투입됐지만 회사를 정상화하는 데 자율협약이 아무런 역할을 못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밑빠진 독에 물 붓기’가 아닌 기업을 살릴 수 있는 제대로 된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26일 금융권과 조선업계에 따르면 STX조선해양은 2013년 4월 자율협약에 들어갔지만 3년 만에 결국 법정관리 수순을 밟게 됐다. 이 기간에 채권단이 쏟아 부은 돈만 무려 4조5천억 원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은행들이 주도하는 자율협약 구조조정 방식에 근본적인 문제점이 드러났다고 지적한다.
자율협약은 기업이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에 몰렸을 때 채권단의 판단에 따라 해당 기업을 지원하는 것을 말한다.
문제는 자율협약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나 법정관리와 달리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워크아웃은 ‘기업구조조정촉진법’, 법정관리는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통합도산법)’에 각각 법적 근거를 두고 있다.
반면 자율협약은 법적 구속력없이 채권단과 기업 간 자율적인 협의로 구조조정이 진행된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과 은행,구조조정 대상기업의 경영진 등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소지도 다분하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자율협약 방식은 말 그대로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채권자 간, 채권자-채무자 간 사적 계약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라며 “감독당국을 비롯한 외부의 암묵적 개입이 이뤄질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말했다.
STX조선해양의 경우 일시적 유동성의 위기가 아닌 수익모델의 문제로 위기에 빠졌는데 채권단이 성급하게 자율협약을 추진해 결과적으로 구조조정을 망쳤다는 주장도 나온다.
오정근 건국대 교수는 “STX조선이 자율협약을 신청했던 2013년 4월은 금융위기와 유로존 위기 직후로 선박 수주 전망 자체가 불투명했던 시기”라며 “일시적인 위기 대처가 아니라 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필요했는데 당시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들이 ‘내 임기만 피하자’는 안이한 생각으로 센 구조조정을 회피하고 책임을 방기했다”고 비판했다.
국책은행이나 시중은행들이 당장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법정관리나 워크아웃보다 시간을 끌고 구조조정을 지연하는 선택지로 자율협약을 악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도 있다.
채권단에 속한 은행 가운데 한곳이 발을 빼면 이때부터 구조조정 대상 기업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이 경우 ‘독박’을 쓰지 않으려고 은행들이 앞다퉈 자금 회수에 나서게 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자율협약 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거나 선제적 구조조정을 위한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봉균 한국기업평가 실장은 “자율협약은 법정관리처럼 강제적이지 않고 자율적 판단 아래 채무 재조정 등을 추진하므로 사업적 경쟁력이 강화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이나 금호산업, 대한전선 등과 같이 자율협약을 통해 구조조정에 성공한 사례도 있는 만큼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모든 구조조정을 법조항에 의거해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자율협약에 들어가는 조건을 지금보다 좀더 명확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재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