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올해를 더 큰 수확으로 진입하는 원년으로 만들겠다."
"세상이 꿈꾸는 미래와 혁신의 길목에 있는 숨겨진 보석을 찾아 나서겠다."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올해 초 미래를 위한 투자확대 의지를 다지며 한 발언이다.
이 말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장동현 SK 대표이사 부회장과
박정호 SK스퀘어 대표이사 부회장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기업문화 관행으로 볼 때 '미래'와 '투자'라는 열쇠말은 오너경영인쯤은 돼야 꺼낼 수 있었다.
그런 얘기를 매해 사업성과에 매달려야 하는 전문경영인들이 자신감 있게 직원과 사회를 향해 내놓은 것이다.
이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파이낸셜스토리'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경영' '사회적 가치' 같은 경영원칙을 제시한 뒤 전문경영인과 각 계열사 이사회에게 힘을 실어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로도 볼 수 있다.
그룹 오너인 총수가 시장에서 매력을 느낄 성장계획을 만들고 사회적 효용을 높이는 일을 하라면서 권한 위임을 해주니 전문경영인들도 당장 실적뿐 아니라 미래성장 토대를 만드는 일에 신경쓸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됐다.
이런 기조는 SK그룹의 성장으로도 이어졌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2022년도 공시대상기업집단 자료를 보면 SK그룹은 현대자동차그룹을 제치고 공정자산 기준 대기업집단 순위 2위에 올랐다.
2010년 이후 12년 만에 처음으로 철옹성 같던 상위 5개 기업집단 내 순위가 바뀌었다. 기업 내면의 방식을 바꾸니 외형까지 커졌다.
이런 현상은 LG그룹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계열사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초 코스피에 상장하면서 단박에 SK하이닉스를 제치고 시가총액 2위에 올랐다.
LG에너지솔루션은 현재 중국 CATL에 이어 전기차 배터리 분야 세계 2위지만 미래 사업경쟁력은 오히려 앞선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국에 치우진 CATL과 달리 미국, 유럽, 중국, 동남아, 한국 등 업계 최다 글로벌 생산거점을 마련해 증설투자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어서다. LG그룹 역시 계열사 별로 최고경영자와 이사회 중심의 경영구조를 갖추고 있다.
"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지주사의 대표로서 보고는 받지만 투자 등 계열사 경영은 각 회사 최고경영자에게 맡깁니다. 구 회장은 그룹의 사업방향과 미래 먹거리를 만드는 일에 주로 전념합니다." LG그룹 관계자의 말이다.
대체로 오너경영인은 미래를 위한 준비, 전문경영인은 사업경험에서 각각 강점을 가지는 것으로 여겨진다. 오너의 권한 위임으로 둘 사이 조화와 균형이 잘 이뤄지는 그룹들이 가시적 성과를 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미래를 놓고는 최근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
전 세계 주요 반도체기업들이 천문학적 투자를 펼치고 있는 것과 달리 총수인
이재용 부회장이 가석방 상태로 취업제한에 묶여 있어 삼성전자의 투자와 인수합병이 오랫 동안 정체돼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런 명분에 따라 이 부회장을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재계 단체를 중심으로 나온다.
이 부회장은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농단 사건에 뇌물공여 혐의로 연루돼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고 수감됐다가 2021년 8월 가석방됐다.
물론 그룹 총수인 이 부회장이 법적 족쇄에서 풀려나면 100조 원이 넘는 현금동원력을 바탕으로 삼성전자의 미래 성장동력을 찾는 일이 급물살을 탈 수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오너 부재 상황으로 미래 준비에 속도를 내지 못한다는 사실은 국내 최고기업 답지 않은 서글픈 자화상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이재용 부회장과 그룹 지휘부 역할을 하는 사업지원T/F로부터 계열사 전문경영인으로 권한 위임이 더욱 폭넓게 이뤄지는 경영구조가 이제 삼성그룹에서도 제대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균형과 견제가 잘 이뤄지는 투명한 경영구조를 마련하는 일은 이 부회장 사면 이상으로 삼성전자 미래에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이 부회장 재판을 계기로 외부 시선에서 삼성 주요 계열사 경영을 감시하기 위한 삼성준법감시위원회가 생겼다. 그 기구가 더 이상 필요 없어진다면 삼성전자가 사상 최대 분기 매출을 내고도 주가가 곤두박질하는 일은 더이상 나오지 않을 수 있다. 박창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