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전 세계 반도체기업들이 인수합병(M&A)의 기회와 위험을 저울질하고 있는 가운데 SK스퀘어가 ARM 지분 인수에 나설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박정호 SK스퀘어 부회장은 28일 주주총회에서 “ARM도 사고는 싶다. (SK스퀘어가) 투자 회사니까 꼭 최대 지분을 사서 콘트롤하는 걸 목표로 하지 않아도 된다”며 “반도체 지형의 변화에 대해 지속적으로 스터디하고 있고, 올해 리소스 확보 순서에 따라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부회장이 구체적으로 회사 이름까지 거론하며 투자 대상으로 지목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특히 박 부회장이 2012년 SK하이닉스(당시 하이닉스) 인수에 핵심적 역할을 한 인물인 점을 고려하면 ARM 투자 가능성 언급은 결코 가볍지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박 부회장은 SK텔레콤 사업개발부문장일 때 SK그룹 내부에서 하이닉스 인수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잠재우고 인수 과정에서 실무작업을 이끌어 ‘인수합병’의 귀재로 불리기도 했다.
SK스퀘어는 SK하이닉스를 비롯해 SK그룹 ICT계열사를 이끄는 중간지주사로 현재 반도체분야에서 가치상승(밸류업)을 도울 수 있는 투자 대상을 찾고 있다.
ARM은 모바일 프로세서(AP)를 개발하는 업체로 기본 설계기반을 제공하고 로열티로 대부분의 수익을 거두는 영국 반도체 설계 전문기업이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갤럭시 시리즈의 AP가 ARM 설계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애플의 AP A15바이오닉도 ARM의 구조방식(아키텍처)을 기반으로 재설계한 제품이다.
애초 ARM은 그래픽처리장치(GPU)업체 엔비디아가 인수합병 계약까지 맺었으나 올해 초 각국 규제당국의 승인을 받지 못하면서 인수가 불발됐다.
이에 ARM의 최대 주주인 소프트뱅크는 ARM의 미국 나스닥 상장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각국의 자국 반도체산업 강화 기조로 대형 반도체기업 인수는 매우 어려워졌다.
포브스는 “하이테크 반도체칩이 국가 안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산업을 포함해 점점 더 많은 산업에서 중요한 인프라가 되면서 정부는 반도체기업의 인수합병을 점점 더 경계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그만큼 지분 투자의 기회는 더 많이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손정의(마사요시 손)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는 새로운 자금 확보를 위해 ARM 매각을 통한 엑시트(투자금 회수)에 열을 올리고 있는 만큼 일부 지분 매각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일 공산이 크다.
ARM은 시스템반도체 경쟁력을 확보하고 싶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모두에게 매력적 투자 대상이다.
애플과 퀄컴, 미디어텍 등 AP를 만드는 대부분의 기업이 ARM 설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시스템반도체시장에서 ARM의 존재감이 대단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때문에 규제당국은 엔비디아가 ARM 인수를 인수하면 반도체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가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 향후 인공지능 반도체나 자동차 반도체, 메타버스용 반도체 등을 자체적으로 개발할 때 ARM과 더 밀접하게 협력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이미 시스템반도체시장에서 파운드리(반도체위탁생산) 분야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확보한 삼성전자는 꾸준히 ARM 인수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ARM 사옥.
다만 완전한 인수합병이 아닌 일부 지분 인수만으로는 사업 시너지를 내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SK하이닉스는 2018년 사모펀드(PEF) 베인캐피털이 주도하는 투자 컨소시엄에 참가해 일본 키오시아(당시 도시바메모리)에 4조3천억 원을 투자해 지분 일부를 취득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시너지는 미미했고 SK하이닉스는 투자금 회수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또 최근에는 ARM의 설계 기술력에 문제가 제기되면서 미국 사이파이브 등 경쟁 스타트업이 부각되고 있는 점도 지분 투자에 부정적 요인으로 꼽힌다.
사이파이브는 리스크파이브(RISC-V)라는 설계 기술로 ARM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해 인텔, AMD, 퀄컴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도 투자에 참여했다.
인텔이 2021년 사이파이브 인수를 추진했지만 무산됐으며 사이파이브는 올해 말이나 2023년을 목표로 기업공개(IPO)를 준비하고 있다.
해외 IT매체 프로토콜은 “사이파이브는 ARM을 몰아내기 위해 최근 1억7500만 달러의 막대한 자금을 투자받았다”며 “엔비디아의 ARM 인수 실패 뒤 사이파이브는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