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네덜란드 장비업체 ASML이 생산하는 차세대 EUV(극자외선) 반도체장비 가격이 1대당 3억 달러(약 3662억 원)를 넘을 정도로 높아지며 반도체기업들에 비용 부담을 키우고 있다.
TSMC와 삼성전자, 인텔이 EUV장비를 활용하는 미세공정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시설 투자를 경쟁적으로 벌이는 상황에서 결국 장비 확보에 투자할 수 있는 자금 여력 및 ASML과 협력이 관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CNBC는 현지시각으로 23일 “ASML은 세계에서 가장 큰 반도체기업들이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기업이 됐다”며 “EUV장비 수요가 최근 더욱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ASML은 7나노 이하 시스템반도체 미세공정에 쓰이는 EUV장비 개발과 생산을 독점하고 있다. 반도체기업들의 EUV장비 수요가 공급을 크게 웃돌아 이미 수년치 주문이 밀려있는 상태다.
피터 베닝크 ASML CEO는 CNBC와 인터뷰에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앞으로 더 많은 장비를 생산해 공급하겠다”며 “이런 과정에서 장비의 평균 판매가격도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베닝크 CEO는 ASML이 최근 10년 동안 공급한 EUV장비 140대의 평균 가격이 1대당 2억 달러 정도라며 앞으로 생산되는 차세대 EUV장비 가격은 3억 달러를 넘을 것이라고 밝혔다.
EUV장비는 비싼 가격 때문에 현재까지 공급된 전체 물량의 84%가 TSMC와 삼성전자, 인텔 등 자금력을 동원할 수 있는 반도체기업에 판매된 것으로 집계됐다.
앞으로 EUV장비 가격이 더 오르면 이런 추세는 더욱 뚜렷해질 수밖에 없다.
ASML의 장비 가격 인상은 TSMC와 삼성전자, 인텔 사이에서 최근 불붙고 있는 반도체공장 시설 투자 확대 경쟁에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시설 투자가 대부분 EUV장비 기반의 미세공정 생산라인 중심으로 진행되는 만큼 EUV장비를 선제적으로 확보하지 못한다면 반도체 생산라인 투자 계획도 늦출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도체기업들이 자연히 ASML의 가격 인상에도 장비 주문을 서둘러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앞으로 반도체 시설 투자에 들이는 비용 부담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파운드리시장에서 막대한 자금력을 동원할 수 있는 기업이 앞으로 시장 지배력을 높이기 더 유리해지는 흐름도 뚜렷해질 가능성이 크다.
베닝크 CEO는 EUV장비 가격 인상과 수요 대응을 통해 올해 연매출을 지난해보다 20% 늘리고 앞으로 10년 동안 연평균 11% 수준의 매출 증가세를 유지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ASML의 반도체장비 공급 확대는 고객사들의 원활한 생산라인 투자 확대를 이끌어 글로벌 반도체 공급부족 사태를 해소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베닝크 CEO는 ASML도 장비 생산에 필요한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생산을 확대하는 데 차질을 겪고 있는 역설적 상황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EUV장비 생산 차질로 공급이 예상보다 늦어지거나 가격을 더 인상할 수도 있다는 점을 예고한 셈이다.
베닝크 CEO는 EUV장비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TSMC와 삼성전자, 인텔 등 협력사의 도움을 받아 성장할 수 있었다며 주요 고객사들과 끈끈한 협력 관계를 강조했다.
삼성전자는 한때 ASML 지분을 3%, TSMC는 5%까지 매수해 자금을 지원한 적이 있다. 인텔은 최근 직접 반도체 기술전문가를 파견해 ASML의 장비 생산을 돕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이들 기업의 반도체 투자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ASML과 협력 관계를 강화하려는 노력도 더욱 힘이 실리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베닝크 CEO는 “우리는 고객사들에게 특별한 존재고 고객사도 우리에게 특별하다”며 “절대 떨어질 수 없는 공생관계”라고 말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