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생활건강이 미국 화장품 브랜드 엘리자베스 아덴을 인수하지 않기로 했다. 'M&A의 귀재'로 불리며 승승장구했던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은 퇴진설이 나돌 만큼 타격을 입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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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 |
LG생활건강은 26일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 엘리자베스 아덴 인수를 포기한다고 밝혔다.
LG생활건강은 “엘리자베스 아덴 인수를 검토했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더 좋은 대안을 찾고자 인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앞으로도 중장기 성장 전략의 일환으로 다양한 인수합병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LG생활건강이 인수포기를 결정한 것은 엘레자베스 아덴 이사회가 23일 인력구조조정, 비수익사업 및 브랜드 구조조정, 일부 해외법인 철수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한 데 따른 것이다.
LG생활건강은 애초 1조 원이나 되는 대규모 인수를 추진했지만 엘리자베스아덴의 최근 수익이 급격히 악화된 데다 구조조정 비용마저 감당해야 할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LG생활건강은 엘리자베스 아덴을 인수해 글로벌 브랜드 파워를 바탕으로 해외지역의 수요를 늘릴 계획이었다. 2006년 중국 화장품시장에 진출한 LG생활건강은 한방화장품 후를 비롯한 고급브랜드로 브랜드 인지도를 확대해 왔다. 그 결과 중국 60여 개 고급백화점 매장에서 후는 최근 2년간 연평균 약 30%의 매출을 올렸다.
LG생활건강은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아시아뿐 아니라 북미 및 유럽시장 진출을 모색해왔다. 엘리자베스아덴 인수 계획을 세운 이유도 글로벌 브랜드 파워를 높이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러나 인수합병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수익보다 구조조정에 들어갈 비용이 더 많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결국 인수를 포기하기로 결론내린 것이다.
이정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엘리자베스 아덴이 예상한 구조조정 비용은 약 6500만~7200만 달러로 아덴의 2015년 예상 순이익 2721만 달러를 한참 웃돈다”며 “구조조정이 시행되는 경우 막대한 손실이 발생할 수 있어 무리한 M&A 추진보다 훨씬 나은 결정”이라고 분석했다.
업계에서 이번 엘리자베스 아덴의 인수 포기 결정으로 차 부회장의 입지가 큰 타격을 입게 됐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최근 LG생활건강의 실적이 둔화되고 있는 데다 M&A에서도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차 부회장의 퇴진설까지 나돌고 있다.
엘리자베스 아덴은 120여개 국에 진출한 글로벌 브랜드로 역사가 100년이 넘는 미국의 대표 화장품이다. 차 부회장이 지금까지 시도했던 M&A 가운데서도 가장 큰 규모였다. 차 부회장은 아시아지역에 한정된 매출을 미주지역으로 확장시키기 위해 엘리자베스 아덴 합병에 공을 들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2005년 대표이사로 취임한 차 부회장은 지금까지 총 12건의 M&A를 성공시켰다. 2007년 10월 코카콜라음료를 시작으로 다이아몬드샘물, 더페이스샵, 한국음료, 해태음료, 색조 화장품 브랜드 바이올렛드림(옛 보브), 일본 화장품 업체 긴자스테파니와 에버라이프 등이 그의 손을 거쳐 LG생활건강 품에 들어왔다.
또 지난해 영진약품 드링크사업과 올해 건강기능식품 판매계열사 R&Y코퍼레이션 등까지 화장품뿐 아니라 식품과 의약품까지 손을 뻗쳐 LG생활건강의 덩치를 키워왔다. 그 결과 2005년 1조392억 원, 영업이익 717억 원이던 매출이 지난해 4조3262억원, 영업이익 4964억 원으로 늘었다.
그러나 올들어 1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보다 12% 감소하면서 차 부회장의 체면이 구겨졌다. 게다가 차 부회장은 최근 본인 소유의 LG생활건강 보통주 2만2천 주를 매도해 구설수에 올랐다. 최근 열흘간 주가가 20% 가까이 빠진 만큼 CEO가 주식을 대량 처분해 주가를 폭락시켰다는 비판을 사고 있는 것이다.
차 부회장은 올해 초 코카콜라음료와 더페이스샵 대표에서 물러났다. 주식매각까지 더해 차 부회장이 회사를 떠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LG생활건강 관계자는 “차 부회장이 2017년까지 임기를 다 채우겠다고 밝힌 것으로 안다”며 퇴진설을 부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