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새로울 순 없는 것 같다. 새로운 트렌드도 찾아내야 하지만 조직 안에서 누군가는 망할 줄 알면서도 그걸 또 해야 한다. 그래야 조직이 지금의 트렌드를 인식하고 실패를 배우면서 진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고인이 된 김정주 넥슨 창업자가 쓴 책 '플레이'에 담긴 글귀다.
 
[오늘Who] 도전 거침없던 김정주, 넥슨 '디즈니'는 미완의 꿈으로 남아

▲ 고 김정주 넥슨 창업자.


2일 게임업계를 비롯해 각계 각층에서는 한국 PC 온라인게임 시장을 개척하고 한국 게임산업에 큰 기여를 한 김정주 넥슨 창업자의 갑작스런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그가 남긴 발자취를 돌아보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김 창업자는 넥슨을 국내 게임 기업 최초로 매출 1조 원(2011년), 매출 3조 원(2020년)을 기록하며 국내 게임시장에서 선두를 다투는 기업으로 키워냈다. 

그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게임 지식재산(IP) 확장을 통해 ‘디즈니’와 같은 회사를 만들고 싶어 늘 새로운 도전에 거침없던 인물로 평가받는다.

김 창업자는 1991년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뒤 1993년 카이스트 전산과 석사학위를 받고 서울대 동기인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와 1994년에 넥슨을 함께 창업했다.

그는 1996년에 넥슨의 대표작 '바람의나라'를 개발해 성공의 발판을 마련했다. 바람의나라는 지금까지도 서비스되고 있으며 기네스북에 가장 오래 서비스되고 있는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으로 등재됐다.

넥슨은 2000년대에도 아케이드게임 '비앤비', 레이싱게임 '카트라이더', 대규모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메이플스토리', '마비노기' 등 인기 게임을 잇달아 선보이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게임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지식재산 강화에도 힘을 쏟았다.

넥슨은 2004년 메이플스토리 개발회사인 위젯스튜디오를 인수합병한 것을 시작으로 2005년 엔텔리전트, 2006년 두빅엔터테인먼트, 2008년 네오플, 2010년 엔도어즈와 게임하이, 2011년 JCE, 2015년 불리언게임즈 등을 잇따라 인수했다.

그는 '던전앤파이터' 개발사 네오플을 인수하는데만 3800억 원 이상을 투자하기도 했는데 이후 던전앤파이터가 중국에서 국민게임으로 떠오르며 그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음을 스스로 증명하기도 했다.

그는 2001년 소셜 퀴즈게임 '퀴즈퀴즈'에서 부분유료화 모델을 처음 도입해 게임업계에 새로운 수익모델을 제시하기도 했다.

외부 협력에서도 성과를 냈다.

김 창업자는 2019년 던전앤파이터를 개발했던 허민 원더홀딩스 대표이사에게 넥슨의 게임 개발 외부고문을 맡겼는데 이후 허 대표의 손을 거친 '카트라이더 러쉬플러스'와 '피파모바일' 등은 성과를 내며 넥슨이 부진에서 탈출하는 데 힘이 됐다.

김 창업자는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2020년 6월 허민 대표에게 넥슨의 차기작 '마비노기 모바일'과 '카트라이더:드리프트' 개발을 맡기기도 했다.

김 창업자는 넥슨을 디즈니와 같은 콘텐츠 회사로 만들고자 하는 꿈에도 한 발짝씩 다가가는 모습을 보였다.

김 창업자는 자서전에서 "어린이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돈을 내는 디즈니의 100분의 1이라도 따라가고 싶다"는 소망을 드러냈는데 이를 위한 투자는 가장 최근 이뤄졌다.

넥슨은 2022년 1월 AGBO에 5억 달러를 투자해 지분 38%을 확보한다고 발표했다. AGBO는 '캡틴 아메리카:윈터 솔저', '어벤저스:엔드게임' 등 4개의 마블 영화를 제작한 루소 형제의 영상제작사다.

넥슨은 2021년 7월 미국 할리우드에 '넥슨 필름&텔레비전' 조직을 신설하고 게임 지식재산 활용 분야에서 경험이 많은 인물들을 잇따라 영입하면서 콘텐츠사업을 본격화할 태세를 갖추기도 했다. 

넥슨 필름&텔레비전에서 수석부사장을 맡고 있는 반 다이크 수석부사장은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액티비전 블리자드 스튜디오의 필름&텔레비전부문 대표, 월트디즈니에서 10년 간 기업 전략 및 사업 개발부문 수석부사장을 지낸 경험이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마블 최고운영책임자(COO) 출신인 팀 코너스가 넥슨의 필름&텔레비전부문 수석부사장으로 합류했다. 

김 창업자는 미래기술에도 관심을 놓치지 않았다.

2020년 8월에는 NXC가 미국 민간 항공우주기업 스페이스X에서 모집한 전환우선주 신주에 1600만 달러를 투자했으며 암호화폐 시장에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이며 NXC를 통해 2016년에 국내 최초 가상화폐 거래소인 ‘코빗’을 인수했다.

2018년에는 유럽 가상화폐 거래소 비트스탬프와 미국 암호화폐 위탁매매회사 타고미에 투자했으며 2020년 말부터 핀테크 플랫폼 아퀴스를 통해 꾸준히 암호화폐를 매입하기도 했다.

김 창업자는 어린이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

그는 2013년 레고 거래플랫폼 브릭링크, 프리미엄 유모차 제조사 스토케, 2018년 이탈리아 애완동물 사료기업 아그라스델릭, 2021년 이탈리아 애완동물 사료기업 세레레 등 어린이와 관련된 기업에 투자했다.

김 창업자는 직접 한국 유일의 장애아동재활치료 전담 병원인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을 세우기 위해 2014년 200억 원을 기부하기도 했으며 2019년에는 대전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건립에 100억 원을 기부했다. 2020년에는 서울대 넥슨어린이완화의료센터 설립과 경남권 최초 어린이병원 건립에 각각 100억 원을 기부했다.

물론 김 창업자에게 성공이라는 밝은 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때때로 좋지 않은 소식으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과거 진경준 전 검사장에게 넥슨 주식 등 뇌물을 건넨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뇌물) 위반 혐의 등과 관련해 무죄를 선고받긴 했지만 뇌물 혐의는 그의 경력에 큰 오점을 남겼다.

고인은 2005년 친구인 진경준 전 검사장에 넥슨의 비상장 주식을 매입할 대금 4억2500만 원을 비롯해 넥슨 법인 리스 차량 무상 제공 등의 혐의로 2016년 기소됐다.

김 창업자는 2016년 7월 시민단체인 투기자본감시센터에 의해 2조8천억 원대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고발되기도 했다.

해외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넥슨의 비상장 주식을 헐값에 매입했다는 의혹도 받았다. 넥슨 지주회사인 NXC의 벨기에법인을 통해 일본 상장법인 넥슨 주식을 저가로 현물 출자해 NXC가 약 7990억 원의 손해를 보게 했다는 혐의다.

이밖에 김 창업자는 서울대 공대 선후배 사이인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이사와 2015년 경영권 분쟁을 벌이기도 했다. 

2012년 미국의 최대 게임업체인 일렉트로닉아츠(EA) 경영권을 인수하기 위해 의기투합했다가 경영권 인수에 실패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불편해졌다. 이후 경영권 참여를 선언한 넥슨에 맞서 엔씨소프트가 넷마블과 상호 지분투자를 통해 이를 방어했다.

넥슨이 결국 2015년 10월 엔씨소프트 지분 모두를 시간외 대량매매(블록딜) 방식으로 매각하면서 두 회사의 표면적 갈등은 마무리됐다. [비즈니스포스트 안정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