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낟알이 떨어지면 줍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누군가에게 위기는 또 다른 누군가에 기회이기도 한 것이 세상사다.
정부가 기업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면서 건설업계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건설업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면 탄탄한 중견건설사들 가운데 대약진하는 곳이 나오는 등 업계 지형도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 있다.
◆ 건설업계, '정부발' 기업 구조조정에 온도차
25일 정부와 건설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조선·해운·건설·철강·석유화학 등을 5대 불황업종으로 꼽고 부실기업 퇴출을 포함한 구조조정에 칼을 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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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종룡 금융위원장. |
정부는 24일 청와대에서 범정부 차원 경제현안회의(서별관회의)를 연데 이어 26일 임종룡 금융위원원장이 주재하는 ‘산업ㆍ기업 구조조정협의체’ 회의를 연다.
그러나 업종별 온도차도 존재한다. 건설업은 이미 재무구조가 악화한 기업들 가운데 여러 곳이 인수합병 대상에 오르는 등 자체 구조조정이 진행돼 왔다.
이 때문에 해운업과 조선업에 비해 건설업은 ‘정부발’ 구조조정 강도가 상대적으로 약할 것으로 예상된다.
26일 구조조정협의체에서도 조선ㆍ해양업 등을 우선으로 기업구조조정 추진계획이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건설업 구조조정은 해운이나 조선, 철강 등 여타 업종과 국내 전체 산업계에 미칠 파장도 상대적으로 적다. 또 개별 부실기업의 퇴출이 이뤄져도 덩치가 크지 않아 인수자를 찾기도 용이한 편이다.
그렇다고 건설업계가 마냥 안심하고 있을 상황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 정부가 업종별 한계기업 구조조정에 강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는 만큼 건설사들 가운데 부실한 곳은 퇴출이 이뤄질 수 있다. 강도와 완급의 문제만 있을 뿐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건설업종 구조조정은 자격요건을 맞추지 못하는 업체를 상시퇴출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상위 30개 건설사 가운데 돈을 벌어 이자도 감당하지 못하는 건설사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9곳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기업의 채무상환능력을 나타내는 이자보상배율 지표가 ‘1’미만이면 영업이익으로 채무에 따른 금융비용을 내기조차 어렵다는 뜻이다.
동부건설, 한라, SK건설, 한진중공업, 한화건설, 쌍용건설, KCC건설, 두산건설, 경남기업은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이 1에 못 미치고 있다.
동부건설과 경남기업은 법정관리 상태로 매물로 나왔다. 한라는 부채비율이 600%가 넘고 10대 건설사에 드는 SK건설 부채비율도 360%로 높은 수준이다.
한화건설이나 두산건설도 지난해 각각 4천억 원과 1600억 원가량의 적자를 내며 위험군으로 분류된다.
◆ 호반건설, 10대 건설사로 도약할 기회 얻나
부실기업 퇴출이 본격화하면 상대적으로 재무구조가 탄탄한 동종 업종의 기업들에게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경쟁강도가 약화하는 것은 물론 매각이 이뤄질 경우 좋은 조건에서 입찰에 뛰어들 여지가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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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열 호반건설 회장. |
건설사 가운데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 1이상을 유지하고 있는 곳은 금호산업, 서희건설, 한양, 현대건설, 현대엔지니어링, 부영주택, 호반건설이 꼽힌다.
특히 건설업계에서 중견건설사로 가장 주목받는 곳이 호반건설이다. 호반건설은 지난해 상반기 기준으로 부채비율이 16% 수준으로 사실상 '무차입 경영'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호반건설은 최근 접수가 마감된 동부건설 매각 예비입찰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부건설 인수전은 올해 건설사 인수합병의 최대어로 꼽히며 다음달 10일 본입찰이 진행된다. 업계 관계자들은 동부건설 인수전에서 호반건설이 완주할 경우 강력한 인수후보가 될 것으로 점친다.
호반건설은 지난해 금호산업 매각전에 단독으로 나서 6천억 원이 넘는 응찰가를 써내 막강한 자금력과 존재감을 과시했다. 호반건설의 금호산업 인수는 불발에 그쳤지만 상대적으로 곳간이 두둑해 인수합병에 적극 뛰어들 공산이 크다.
호반건설은 최근 울트라건설 인수에 성공했는데 동부건설까지 품에 안을 경우 10대 건설사로 순위가 훌쩍 뛰어오를 수 있다. 특히 호남지역에 연고를 둔 지방건설사에서 ‘중원’ 진출에 탄력을 받는 것은 물론 주택사업에 치중된 사업부문도 플랜트와 토목공사로 넓힐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호반건설이 동부건설 인수에 성공하면 단순합산만으로 시공능력평가 순위가 4조 원 이상으로 추산된다”며 “이는 지난해 기준 3조9천억 원 수준으로 10위를 차지한 현대산업개발을 따돌릴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