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과 티웨이항공, 에어프레미아가 그동안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들고 있던 수익성이 높은 ‘황금노선’에 대한 기대감을 키울 것으로 보인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을 두고 운수권과 슬롯을 재배분하는 조건부 승인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국내 저비용항공사(LCC)들이 노선 확대의 기회를 잡을 가능성이 커졌다.
 
제주항공 티웨이항공 에어프레미아, 새해 '황금노선' 확보 기대 품어

▲ (위부터) 제주항공, 티웨이항공, 에어프레미아 로고.


30일 항공업계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2022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이 본격화함에 따라 국내 항공산업의 지각변동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저비용항공사들은 그동안 일본과 중국 등 단거리 국제선과 국내선을 중심으로 서비스를 적게 제공하는 대신 저렴한 비용을 받는 사업모델로 운영해왔다. 

하지만 공정위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인수·합병을 두고 통합항공사의 운수권과 슬롯을 재배분하는 조건을 걸어 승인하는 쪽으로 잠정 결론을 내리면서 저비용항공사들이 중장거리 국제선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대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공정위는 한국과 항공자유화협정이 체결되지 않은 항공비자유화 노선에 새로 취항하고자 하는 항공사가 있다면 통합항공사의 운수권이나 슬롯을 반납받아 재배분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항공비자유화 노선은 인천~런던 등 다수의 유럽 노선과 중국 노선, 동남아 일부 노선, 일본 일부 노선 등이 해당된다.

운수권은 다른 나라 공항에서 여객, 화물을 탑재 및 하역할 수 있는 권리로 정부끼리 협상을 통해 결정한 뒤 항공사에 배분한다. 관련법(국제항공운수권 및 영공통과이용권 배분 등에 관한 규칙)에 따라 외국 항공사에게는 배분할 수 없으며 국내 항공사들에게만 기회가 주어진다.

슬롯은 공항의 수용능력에 따라 항공 교통량을 효율적으로 분산해 혼잡 시간을 최소화하고자 개별 항공사에 할당된 이착륙 일자·시간을 말한다. 

항공업계는 이에 따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운수권을 독점하고 있는 김포~일본 하네다 노선, 인천~몽골 울란바토르 노선 등 이른바 ‘황금노선’의 운수권 재배분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김포공항과 하네다공항은 각각 서울과 도쿄 도심까지 대중교통으로 30분 안에 접근가능한 공항으로 승객들의 수요가 많아 수익성이 높은 알짜 노선으로 꼽힌다. 

인천~몽골 노선 또한 대표 황금노선이다. 운항거리에 비해 항공료가 비싸고 탑승률이 높아 수익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노선은 1994년 이후 25년 동안 대한항공이 독점하고 있었지만 운항 거리에 비해 항공권 가격이 비싸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국토부가 추가로 아시아나항공에 운수권을 배분했다. 독점 노선이 경쟁 노선으로 바뀌면서 인천~몽골 노선의 항공운임은 10만 원 이상 저렴해졌다. 

인천~몽골 노선의 사례처럼 저비용항공사들이 신규 노선에 진입을 확대하면 소비자들이 누릴 수 있는 혜택도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보유한 운수권 및 슬롯 재배분이 본격화하면 노선을 확대할 수 있는 여력을 갖춘 국내 저비용항공사인 제주항공과 티웨이항공, 에어프레미아가 ‘황금노선’의 운수권을 따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제주항공과 티웨이항공, 에어프레미아 등은 코로나19 때문에 잠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앞서 국제선 확대 계획을 세워뒀다. 

제주항공은 국제선을 확대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2018년 보잉 737맥스 항공기 50대 구매계약을 맺기도 했다. 

보잉 737맥스는 항속거리가 6500km로 기존에 운용하고 있는 항공기보다 항속 거리가 1천km 이상 길어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등까지 운항할 수 있다. 

하지만 보잉 737맥스 항공기의 잇따른 추락사고로 운항이 세계적으로 중단된 데다 이후 코로나19까지 확산하면서 계획을 실행하지는 못했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코로나19로 당장은 어려움이 있지만 앞으로 상황을 고려해 국제선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것이다”고 말했다. 

티웨이항공은 중장거리 운행이 가능한 에어버스 A330-300 항공기 3대를 들여와 내년 2월부터 운항을 시작한다. 

이 항공기의 최대 항속거리는 1만1750km로 티웨이항공이 현재 운영하고 있는 보잉 737-800의 항속거리 6천km보다 2배 가까이 길다. 

티웨이항공은 중대형 항공기를 도입해 호주 시드니, 크로아티아,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 싱가포르 등 중장거리 노선으로 운항을 확대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코로나19로 국내선에서 먼저 해당 항공기를 띄우기로 했다. 

에어프레미아에게도 운수권 재배분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에어프레미아는 저비용항공사와 대형항공사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항공사(HSC)’라고 스스로 정체성을 규정하면서 저비용항공사 가운데 드물게 장거리 노선 운항이 가능한 보잉 787-9 항공기를 도입했다.

에어프레미아는 12월부터 인천~싱가포르 노선에 화물 운송 목적의 비행기를 띄운 것을 시작으로 코로나19 상황에 맞춰 여객 노선을 확대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다만 이들 저비용항공사들이 아직 중장거리 노선에 비행기를 띄울 수 있는 여력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항공업계의 한 관계자는 “티웨이항공, 에어프레미아 등 국내 저비용항공사는 아직 운항 여력을 갖추지 못했다”며 “이들이 운수권을 가져간다고 하더라도 소비자들의 선택에서 외항사에게 밀리면 국내 항공산업의 경쟁력이 저하될 수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운수권을 재배분하더라도 국내 저비용항공사들이 받을 여력이 없다는 의견도 있다. 

강성진 KB증권 연구원은 공정위의 운수권 재배분 결정을 두고 “운수권을 확보한 노선도 100% 활용할 수 없는 현재의 부진한 여객 업황을 고려할 때 운수권을 배분받은 경쟁사들이 즉각적으로 노선 운항에 나설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국내 저비용항공사들이 충분한 여력을 갖출 수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슬롯과 운수권 배분 등과 관련한 조정을 모두 마치고 두 항공사의 기업결합이 마무리될 때까지 적어도 2~3년은 걸릴 수밖에 없다”며 “그 사이에 국내 저비용항공사들이 필요한 역량을 충분히 갖출 수 있다”고 말했다. 

저비용항공사의 한 관계자도 “당장은 코로나19로 쉽지 않을 수 있지만 앞으로 통합과정이 진행되는 시간 동안 저비용항공사들이 노선을 확대할 수 있는 여력을 충분히 갖출 수 있다”고 말했다. 

항공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항공업계가 내년에는 급변하는 한 해를 보낼 것으로 보인다”며 “좋은 방향이든 안 좋은 방향이든 변화의 흐름에 놓인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지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