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가 '평생직장'이라는 말을 사라지게 했다면 코로나19는 '잡호핑(job hopping)'이라는 단어를 널리 퍼뜨렸다. 

젊은 세대에게 이직은 두려움보다 기회에 가깝다. 젊은 직장인들은 더 나은 연봉과 근무환경, 커리어 관리를 위해 깡총깡총 뛰어다니듯 직장을 옮겨 다닌다. 
 
헤드헌터가 바라본  인재시장 변화, 코로나19로 판이 바뀌었다

▲ 정민호 커리어케어 경영기획실장 상무.


사회초년생의 취업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처럼 어렵지만 프로들의 이직시장은 사정이 좀 다르다.

코로나19로 채용시장이 급변하면서 기업이 아닌 후보자가 선택권을 쥐는 모습이 늘고 있다.

MZ세대로 불리는 20~30대 직장인의 상당수가 '잡호핑족'이 되고 싶어 한다. 이들은 한 직장에 오래 머물며 안정적 성장을 도모하기보다 다양한 변화와 경험을 추구한다.

노량진 학원가에서 일 년 열두 달 공무원시험 준비를 하는 취업준비생만 떠올리면 오판할 가능성이 크다. MZ세대에게 열심히 일하면 나중에 큰 보답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면 꼰대라는 사실만 드러내는 셈이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유예하는 것은 이들의 가치관과 맞지 않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기회를 찾아 움직이는 것이 자신의 몸값도 올리고 하루빨리 은퇴해서 즐겁게 살 수 있는 길이다. 

경제적 자립(Financial Independence)과 조기은퇴(Retire Early)를 합친 '파이어'족도 이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기업들도 회사에 충성도 높은 사람들이 가득해도 성과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부담만 커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보수적인 대기업도 젊고 능력 있는 사람들을 빼앗기자 로열티 중심의 인사관리를 포기하고 있다. 단계적 승진연한을 폐지하고 앞뒤 꽉 막힌 연봉테이블을 느슨하게 조정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변화에 불을 지핀 것은 코로나19다. 

기업생태계는 코로나19로 지각변동을 겪고 있다. 디지털로 전환이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지고 있고 사람들은 함께 모여있는 것을 꺼리고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 모임과 이동이 제한됐으며 재택근무, 혼밥, 홈술처럼 집에서 나 홀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오프라인사업을 하는 기업은 당장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반면 온라인사업을 하는 기업은 쏟아지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 돈도 관심도 쏠림 현상이 심하다. 

채용시장도 이러한 흐름에 예외일 리 없다. 

지난해에는 불확실한 환경 탓에 채용을 보류한 기업이 많았고 직장인들도 이직을 미뤘다. 

그러나 올해는 상황이 달라졌다. 체질개선과 시장확대를 위해 기업들은 앞다퉈 인재확보에 나서고 있다. 환경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려면 신입 공채 대신 경력직 수시 채용이 유리했다. 직장인들은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하는 산업으로,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는 기업으로 줄지어 이동하고 있다. 디지털과 세대교체는 업직종을 불문하고 채용시장의 주된 키워드다.

프로야구나 프로축구, 프로농구 등 프로스포츠에는 FA(Free Agent)제도라는 것이 있다. 일정기간 자신이 속한 팀에서 활동한 뒤 다른 팀과 자유롭게 계약을 맺어 이적할 수 있는 제도다. 능력 있고 인기 많은 선수는 수십억, 수백억 원의 연봉을 보장받으며 흔쾌히 계약서에 도장을 찍지만 그렇지 않은 선수는 냉정한 시장논리에 쓸쓸히 퇴장한다. 

그런데 최근 채용시장도 프로선수시장처럼 양분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IT프로그래머는 너도나도 찾는 통에 유능한 프로그래머라면 웬만한 기업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직장인들은 재택근무 덕분에 비대면 면접이 확대되자 회사 눈치 보지 않고 여러 직장에 지원하고 있다. 빨리 오라며 손짓하는 회사들을 끝까지 저울질하다가 최상의 조건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입사하기로 해놓고서 번복하는 일이 빈번해 헤드헌터나 채용담당자들의 속앓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야속하고 괘씸하지만 후보자 탓만 할 순 없다. 후보자의 눈높이를 맞춰주던가 빨리 다른 후보자를 찾는 수밖에. 

최근 삼성전자는 '사내 FA'제도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같은 부서에서 5년 이상 근무한 직원에게 다른 부서로 이동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해 옮기고 싶은 부서에 손을 내밀 수 있게 한 것이다. 

젊은 직원들 가운데 우수인력을 선발해 일정기간 동안 상호 교환근무를 할 수 있는 '스텝(STEP·Samsung Talent Exchange Program)'제도도 시행한다고 한다. 뛰어난 젊은 직원들을 다른 기업에 빼앗기지 않으려고 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인사제도를 바꾼 것이다.

많은 기업들이 상무~부사장 직급단계를 하나로 통합하고, 30~40대 CEO와 임원이 탄생할 수 있도록 직급별 근무연한도 폐지하고 있다. 사내에서 상호 존댓말 사용을 원칙으로 하는 것은 어리다고 무시하지 말라는 압박이며 나이보다 능력이 먼저라는 걸 강조하는 신호다. 

온라인은 오프라인과 달리 한 기업 또는 브랜드가 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장악한다. 

한국에서 메신저는 카카오톡, 검색은 구글이나 네이버, 동영상은 유튜브라고 길을 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얘기해도 답할 정도로 한쪽으로 집중된다. 

대도시로 인구가 집중되는 것처럼 인기 많고 편리한 온라인 플랫폼으로 소비자들은 몰려든다. 어떤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하건 플랫폼 경쟁이 격화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런데 그 플랫폼의 차별화를 만들어 내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기술이 어떻고 디자인이 어떻고 사용자환경(UI)이 어떻고 마케팅이 어떻다고 해도 모두 프로그래머, 디자이너, 기획자, 마케터가 하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몇몇 잘 나가는 특정기업에서 경력을 쌓고 성과를 낸 사람들의 인기는 프로야구의 유명 자유계약선수 못지 않다. 오프라인사업만 하는 기업도 이제 온라인서비스를 병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 그러한 경력을 가진 사람들의 수요는 늘면 늘었지 줄어들 가능성은 적다. 

이들을 모셔 오려면 기존의 인사제도, 연봉구조로는 불가능하다. 기업이 기존의 시스템을 과감히 뜯어 고칠 수 밖에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헤드헌팅회사가 아무리 유능한 인재를 추천해도 내부 시스템 때문에 이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 이런 회사는 필요한 인재를 수혈받지 못할 뿐 아니라 인재유출이 심해져 종국적으로 위기로 내몰리게 된다. 

코로나19가 몰고 온 인재시장의 변화를 가볍게 볼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커리어케어 정민호 경영기획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