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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경련 회장인 허창수 GS그룹 회장(왼쪽)과 대한상의 회장인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오른쪽) |
허창수 GS그룹 회장과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경제계 맏이’ 자리를 놓고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허 회장이 이끄는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박 회장이 맡은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경제단체 주도권을 놓고 물밑 다툼 중이다.
두 경제단체는 매년 열리는 정기 하계포럼을 올해 같은 기간에 진행한다. 매우 이례적이다. 지금까지 전경련과 대한상의는 서로 행사기간이 중복되지 않도록 하계포럼 스케줄을 조정했다. 전경련은 매년 7월 마지막 주에 포럼을 개최했고 대한상의는 전경련보다 일주일 먼저 행사를 열었다.
그러나 올해 7월 마지막 주가 8월 첫째 주와 겹치면서 관례를 그냥 따르기 어려워졌다. 결국 두 단체는 모두 7월 넷째 주에 포럼을 개최하기로 했다. 전경련과 대한상의의 2014년도 정기 하계포럼은 둘 다 7월 23일부터 4일간 열린다.
전경련 인사들은 대한상의가 전경련과 같은 날에 포럼을 여는 것에 유감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자는 “두 단체가 중요한 하계포럼 일정을 잡으면서 사전 상호조율을 못해 행사기간이 중복됐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행사기간이 겹치면 대한상의가 전경련과 사전에 상의해 양보하는 게 맞지 않냐”는 의견을 내놨다.
대한상의는 사전에 행사일정을 맞출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한 관계자는 “전경련과 대한상의의 하계포럼에 참석하는 기업인은 별로 겹치지 않는다”며 “굳이 행사기간을 두고 전경련과 사전협의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재계 인사들은 전경련과 대한상의가 하계포럼을 같은 기간에 하는 것을 놓고 두 단체가 주도권 다툼을 시작한 것이라고 본다. 정기 하계포럼은 두 단체가 매년 치르는 행사 중 가장 중요하다. 그동안 전경련보다 후발주자인 대한상의가 양보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대한상의가 점차 위상이 높아지면서 경쟁이 시작됐다는 뜻이다.
전경련은 초대 회장인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1961년 창립한 경제재건촉진회에서 시작됐다. 이후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등 유력 그룹 오너가 회장직을 맡으면서 주도적 경제단체가 됐다. 그러나 현재 회장단 20여 명 중 격월 정기회의에 참석하는 총수가 한 자리수에 머무는 등 위상이 많이 떨어졌다는 평을 받고 있다.
대한상의는 상대적으로 최근 들어 활발하게 목소리를 낸다. 대한상의 회장직을 맡은 박 회장은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찬성과 고환율 정책 비판 등을 공식적으로 제기해 주목을 받았다.
대한상의는 민간 경제단체 중 유일한 법정단체로 전경련에 비해 중소기업과 지방상공인까지 회원인 것도 장점이다. 이에 근거해 대한상의는 지난 2월13일 경제 관련 7개 분야를 아우르는 정책자문단 40인을 구성하기도 했다.
한 관계자는 “국내 경제단체 맏형이던 전경련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며 “대한상의의 존재감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상대적으로 커졌다”고 말했다.
허 회장은 이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지난해 11월 “전경련을 국민에게 신뢰받는 조직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재계순위 50위권 그룹 총수들을 영입해 회장단을 확충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대부분 경영에 전념하겠다며 요청을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허 회장은 전경련 회관을 새로 세운 것을 계기로 분위기를 전환을 꾀했다. 그러나 지난 3월13일 신축 전경련 회관에서 열린 첫 회장단 회의에 21명 중 7명만 참석했다. 허 회장과 이승철 상근부회장을 빼면 실제로 참석한 그룹 총수는 5명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등 4대 그룹 회장들은 모두 자리에 없었다.
전경련의 한 간부는 “전경련의 위상이 대표 경제단체로서 예전만 못하다는 것은 내부 구성원들도 인정한다”며 “주요 그룹 회장들 얼굴 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계를 대표하는 사람도 허 회장에서 박 회장으로 넘어갔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한 관계자는 “허 회장에게서 확실히 박 회장에게로 중심 추가 넘어갔다”며 “허 회장이 내는 전경련의 목소리가 묻히면서 박 회장이 이끄는 대한상의에 밀리는 분위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