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연말인사에서 그룹의 미래를 그리는 역할은 롯데지주에게 맡기고 각 사업부문을 총괄하는 BU에는 계열사 시너지를 모색하도록 하는 데 더욱 힘을 주게 될까?

20일 롯데그룹에 따르면 롯데지주는 신 회장의 의지에 따라 과거 롯데그룹 소속 계열사의 시너지 전략을 고민하던 역할을 일부 내려놓고 현재는 미래 신사업에 대응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신동빈, 롯데지주는 미래 찾고 BU는 시너지 높이는 역할분담 강화하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롯데지주 대표이사 직속 조직인 ESG경영혁신실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 기능이 과거와 비교해 대폭 줄어들면서 미래에 초점을 맞춘 조직으로 탈바꿈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SG경영혁신실의 전신은 경영혁신실이다. 신 회장은 8월 경영혁신실의 이름 앞에 ESG를 붙여 환경과 사회, 지배구조와 관련한 ESG경영 의지를 강화했다.

경영혁신실은 2020년 6월까지만 해도 명칭이 경영전략실이었다. 황각규 전 롯데지주 부회장이 퇴진하면서 경영혁신실로 바뀌었다.

신 회장은 롯데지주가 들고 있던 전략적 기능을 대폭 줄이겠다는 의도를 보였다.

롯데지주 경영전략실의 전신이 과거 롯데그룹의 모든 방향을 설정했던 정책본부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롯데그룹이 여러 단계를 거쳐 롯데지주의 역할과 기능을 대폭 축소했다고 볼 수 있다.

대신 신 회장은 기존 경영전략실의 계열사 시너지기능을 각 BU에 넘겼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유통BU, 화학BU, 식품BU, 호텔&서비스BU는 각각 롯데쇼핑과 롯데케미칼, 롯데제과, 호텔롯데 소속이다”며 “기존 경영전략실이 맡았던 기능 일부를 각 BU에서 넘겨받아 현재 각 BU별로 사업부문 계열사의 시너지를 강화할 수 있는 전략을 짜고 있다”고 말했다.

신 회장이 롯데지주는 미래를 고민하는 데 집중하도록 한다는 점은 ESG경영혁신실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보면 더 자세하게 알 수 있다.

롯데지주는 8월 ESG경영혁신실 산하에 바이오팀, 헬스케어팀과 같은 신사업 전담조직을 신설했다.

바이오팀은 롯데그룹이 미래 먹거리사업으로 낙점한 바이오산업에서 기존 회사 인수나 제약사와 조인트벤처 설립 등을 검토하고 있고 헬스케어팀은 디지털 헬스케어 및 시니어시장에 집중해 사업기회를 발굴하고 있다.

유통과 화학, 식품, 호텔&서비스 등 각 BU가 자체적으로 추진하기 어려운 미래 먹거리 발굴을 ESG경영혁신실이 주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이 펼쳐질 당시 인수 검토의 주도권을 쥐었던 곳도 롯데쇼핑이 아닌 롯데지주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신 회장은 미래를 위한 브랜드 전략도 원점에서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롯데지주는 9월14일에는 배상민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 교수를 초대 센터장으로 하는 디자인경영센터도 만들었다. 디자인경영센터는 롯데그룹의 브랜드 이미지 전면 쇄신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이다.
 
신동빈, 롯데지주는 미래 찾고 BU는 시너지 높이는 역할분담 강화하나

▲ 롯데지주 로고.


롯데지주는 올해 말까지 디자인경영센터 인력을 30명가량 충원해 조직 정비를 완료한 뒤 2022년 초부터는 본격적으로 디자인 혁신작업에 들어간다.

디자인경영센터가 가장 처음 부여받은 임무는 잠실에 모여있는 롯데백화점과 롯데호텔, 롯데월드를 개혁하는 것이다.

앞으로는 롯데그룹이 운영하는 편의점 세븐일레븐과 커피숍 엔제리너스 등도 디자인경영센터를 통한 변화가 이뤄질 것으로 알려졌다.

배 센터장은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롯데월드몰 건축모형 사진을 올리며 “새로운 롯데로 거듭나길”이라는 문구와 함께 “Design driven innovation!(디자인이 주도하는 혁신)”이란 문장을 넣기도 했는데 디자인경영센터가 그룹 전체의 디자인 혁신을 도맡는 조직이라는 점이 다시 확인된다.

롯데지주의 역할 변화는 누가 롯데지주를 이끄느냐에 따라 변화한 것으로도 여겨진다.

황각규 전 부회장이 롯데지주 대표이사를 맡을 때만 해도 롯데지주를 중심으로 한 그룹의 전략 설정이 당연시됐다.

황 전 부회장이 과거부터 롯데그룹의 기획조정실(정책본부 전신)에서 일하면서 굵직한 인수합병을 주도하며 롯데그룹을 재계 5위권 반열에 올린 만큼 롯데지주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황 전 부회장의 퇴진 이후 그가 맡았던 역할을 대신할 인물을 롯데그룹에서 찾기 힘든 까닭에 롯데지주는 미래 신사업 발굴만 맡고 그 이외의 기능을 각 BU에게 넘긴 것으로 볼 수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