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현대차그룹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정 회장은 지난해 10월14일 회장 취임 이후 1년 동안 미래 모빌리티사업 전환, 해외사업 확장,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 육성 등과 함께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정지작업도 차질없이 진행한 것으로 평가된다.
현대엔지니어링 상장 추진과 현대오토에버와 현대엠엔소프트, 현대오트론 3사 합병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정 회장이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 가운데 상장하지 않은 유일한 사업회사로 9월 말 한국거래소에 상장예비심사 신청서를 내고 기업공개(IPO)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현대오토에버는 정 회장이 지분 7.33%를 쥐고 있다. 서림개발(100%)과 현대글로비스(23.29%), 현대엔지니어링(11.72%)에 이어 지분을 많이 들고 있는 계열사로 올해 3사 합병을 통해 기업가치를 크게 높였다.
현대엔지니어링과 현대오토에버의 기업가치 상승은 정 회장의 지배구조 개편의 자금 마련에 큰 보탬이 될 수 있다.
시장에서는 정 회장이 현대엔지니어링과 현대오토에버 등 그룹 지배력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계열사 지분을 활용해 지배구조 개편의 자금을 마련할 것으로 보는 시선이 많다.
정 회장이 미국 로봇업체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하며 2500억 원 규모의 개인 돈을 투자한 것도 향후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주요 재원으로 쓰일 수 있다.
현대차그룹은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하며 앞으로 4~5년 뒤 상장하기로 했는데 보스턴다이내믹스가 상장에 성공하면 정 회장은 조 단위의 막대한 투자 수익을 낼 수 있다.
정 회장이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 정공법을 선택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는 관측도 나온다.
시장에서는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 2018년 현대차그룹이 시도했던 현대모비스 분할 뒤 현대글로비스와 합병 방식을 포함해 현대차를 지배구조 최정점에 놓는 방안, 지주회사체제 전환 방안 등 여러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다.
이 가운데 총수 일가가 현대모비스 지분을 매입해 순환출자고리를 끊는 방안이 현실성이 높은 방법으로 꼽힌다.
현대차그룹은 현재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 ‘기아-현대제철-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 ‘현대차-현대글로비스-현대모비스-현대차’, ‘현대차-현대제철-현대모비스-현대차’ 등 4개의 순환출자 고리를 지니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순환출자 고리 중심에 있어 정 회장이 계열사들이 쥔 현대모비스 지분을 직접 매입한다면 순환출자를 해소하는 동시에 그룹 지배구조 최정점에 놓이는 현대모비스 최대주주에 올라 안정적으로 그룹을 지배할 수 있다.
문제는 현대모비스 지분 매입에 막대한 자금이 들어간다는 점인데 정 회장과 정몽구 명예회장이 보유한 계열사의 지분 가치를 따져볼 때 무리한 시나리오는 아닌 것으로 분석된다.
순환출자 고리에서 현대모비스를 향하는 지분은 2분기 기준 기아 17.33%, 현대제철 5.81%, 현대글로비스 0.69% 등 모두 23.83%인데 8일 현대모비스 종가 기준(26만6천 원) 가치는 6조 원에 이른다.
정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현대차와 기아, 현대모비스, 현대글로비스, 현대위아, 이노션, 현대오토에버 등 7개 상장계열사 지분가치는 8일 기준 3조6천억 원 수준이다.
여기에 현재 상장을 추진 중인 현대엔지니어링의 지분가치 1조 원(추정)과 정몽구 현대차 명예회장이 보유한 현대차그룹 계열사 지분가치를 더하면 10조 원이 넘는다.
정 회장과 정 명예회장이 의지만 있다면 지분 매각 이후 현금매입 혹은 지분교환 등의 방식으로 순환출자고리 안에 있는 현대모비스 지분을 모두 매입하며 지배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셈이다.
정 회장이 취임 이후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기조를 지속해서 강화하고 있는 점은 정공법을 선택할 가능성을 높인다.
현대차와 기아, 현대모비스는 올해 주총에서 사외이사로만 구성된 ‘투명경영위원회’를 ‘지속가능경영위원회’로 확대하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와 관련한 의사결정 권한을 부여하기로 했다.
현대차와 기아, 현대모비스는 현대차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지배구조 개편이 본격화하면 현재 주주 지분율이 크게 변동할 계열사로 꼽힌다.
정 회장이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정공법을 선택한다면 기업 분할이나 합병 과정에 항상 따라붙는 이른바 '꼼수' 논란 없이 공정성을 확보하며 승계 작업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어 ESG경영 신뢰도도 그만큼 높일 수 있다.
시장에서는 애초 현대차그룹이 현대엔지니어링을 현대건설 등 다른 상장계열사와 합병하는 방식으로 우회상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바라봤는데 직접 상장하는 정면승부를 선택하면서 정공법을 선택할 가능성에 더욱 무게가 실렸다.
정 회장이 2018년처럼 현대모비스 등 주요 계열사를 분할하는 방식의 지배구조 개편안을 선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데 이때도 분할과 합병비율 등과 관련한 논란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은 2018년 시장의 반대로 지배구조 개편안을 철회한 경험이 있는 만큼 다시 한 번 시장의 반대에 부딪힌다면 기업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말 현대오토에버와 현대엠엔소프트, 현대오트론 3사 합병을 진행할 때 총수 일가에 유리하게 합병비율이 산정됐다는 소액주주들의 의견을 반영해 합병비율을 곧바로 조정하기도 했다.
지배구조 개편은 그룹 승계와 관련한 정 회장의 마지막 과제로 평가된다.
정 회장은 지난해 회장에 오른 뒤 올해 5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현대차그룹 총수로 지정되며 대내외적으로 그룹 승계를 인정받았지만 낮은 지분 지배력과 순환출자고리 문제는 아직 해소하지 못했다.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최상단에 있는 계열사인 현대차와 기아, 현대모비스 보유지분이 각각 2.62%와 1.74%, 0.32%에 그친다. 현대차그룹은 국내 대기업집단 가운데 유일하게 순환출자구조를 통해 그룹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급변하는 대내외 경영환경과 그룹의 미래 방향성을 고려하고 시장 의견을 적극 청취해 최적의 시점과 지배구조 개편안을 검토하고 있으나 아직 구체적 내용은 확정되지 않았다”며 “개편안이 마련되는 대로 시장과 적극 소통하겠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