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한 ‘노사상생’ 약속이 시험대에 올랐다.

삼성전자 노사는 올해 임금협상에서 가시밭길을 예고했다. 이 부회장의 무노조경영 철폐 선언 이후 첫 교섭인 만큼 삼성전자는 임금인상의 부담을 낮추면서도 잡음 없이 타결을 이끌어내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 노사 임금협상 가시밭길, 이재용 ‘노사상생’ 약속 시험대 올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6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노사가 5일 열린 2021년 임금협상 상견례에서 기싸움만 벌인 것을 놓고 교섭이 장기화할 것으로 내다보는 시선이 많다.

애초 상견례에서 노조와 회사의 제시안 교환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됐으나 노조 측에서 회사 측의 교섭대표가 전무에서 상무로 낮아진 점을 문제삼아 상견례부터 파행됐다.

노사교섭에서 노조가 초반에 강경한 자세로 임하는 것은 으레 있는 일로 여겨진다. 노조가 최대한의 제시안을 내놓으면 회사가 교섭을 통해 이를 깎아 나가는 것이 임금협상의 일반적 방식이다.

그러나 올해 삼성전자 임금협상은 노사 의견차가 ‘일반적 수준’을 넘어서는 것으로 보인다.

노조는 올해 임금협상에서 △모든 직원의 연봉 1천만 원 일괄인상 △1명당 자사주 107만 원어치 지급 △코로나19 격려금 1명당 350만 원 지급 △매해 영업이익의 25%를 성과급 지급 등을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노조 요구안이 그대로 받아들여질 경우 직원 1명당 평균급여가 51%가량 인상된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6천만 원가량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초 노사협의회에서 2021년 임금을 기본급 4%, 성과급 최대 3.5% 인상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총합 최대 7.5% 인상을 회사 측 제시안이라고 본다면 교섭을 통해 격차를 좁히는 데 상당한 진통이 있을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2분기 말 기준으로 정규직 직원만 11만1081명이 일한다. 교섭 결과에 따라 순이익이 수조 원 단위로 움직인다.

삼성전자가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에 171조 원을 투자한다는 장기계획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규모의 임금인상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삼성전자는 국내기업들의 대표격 회사로 임금협상 교섭이 재계에 미칠 파급력도 크다.

올해 임금협상이 삼성그룹의 다른 계열사들, 더 나아가 국내 기업들의 노사 교섭에서도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삼성전자의 부담을 더욱 무겁게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재계에서는 삼성전자가 큰 폭의 임금인상을 하지 않는 대신 임금 이외의 조건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교섭을 원만하게 타결하려 할 것이라는 시선이 나온다.

올해 임금협상은 이재용 부회장이 무노조경영 철폐를 선언한 뒤 치러지는 첫 교섭이라는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2020년 5월 대국민사과에서 “이제 더 이상 삼성에서 무노조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며 “노사화합과 상생을 도모해 건전한 노사문화가 정착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에서 처음 노조가 생긴 것은 2018년이다. 이 해 삼성전자 노사는 임금협상을 진행했지만 타결에 이르지는 못했다. 노조의 규모가 작았을 뿐더러 삼성그룹의 무노조경영 전통이 남아 있어 제대로 된 교섭이 진행되지도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의 무노조경영 철폐 선언 이후로 삼성전자는 노조를 교섭의 상대로 인식하고 상생을 논의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앞서 8월 회사 안에 조직된 4개 노조와 창사 이래 첫 단체협약을 맺었다. 4개 노조는 단체협약 교섭에 이어 이번 임금협상에도 연합체를 이뤄 임하고 있으며 삼성전자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삼성전자 노사교섭에서 잡음이 불거진다면 이 부회장이 대국민사과를 통해 약속한 노사 상생의 진정성에도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 부회장은 1월 국정농단사건으로 수감됐다 8월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다만 아직 삼성물산 부당합병 관련 재판과 프로포폴 불법투약 관련 재판 등이 남아있다.

오너의 사법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만큼 삼성전자도 임금협상 교섭에 몸을 낮출 수밖에 없다. 올해 임금협상에서 임금 인상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것보다 교섭을 잡음 없이 끝내야 하는 부담이 더 클 수도 있는 셈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노사 교섭이 하루아침에 끝나는 것이 아닌 만큼 첫 만남 이후의 공식 입장을 새로 정리할 단계는 아니다”며 “앞으로의 교섭에서도 절차에 따라 노조와 성실하게 대화하겠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