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대만 TSMC를 비롯한 기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업계에 인텔이 끼어들면서 첨단 반도체 생산을 위한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쟁탈전이 치열해지고 있다.

극자외선 노광장비는 네덜란드 반도체장비기업 ASML에서 독점 생산된다. 수량이 제한된 장비를 어느 기업이 더 많이 확보하느냐에 따라 파운드리업계 기술 경쟁의 판도가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 TSMC에 이어 인텔도 ASML의 반도체 극자외선장비 쟁탈전

▲ 삼성전자 평택사업장 2라인. 극자외선 기반 반도체가 생산된다. <삼성전자>


29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ASML의 극자외선 노광장비는 주요 반도체기업의 기술 로드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날 삼성전자는 2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을 통해 내년부터 3나노 반도체를 생산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TSMC와 함께 내년 비슷한 시기 3나노 공정 양산에 들어가 파운드리 기술력 양대산맥 입지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나노(nm)는 10억 분의 1m를 나타내는 단위로 반도체업계에서는 주로 반도체 회로 폭을 나타내는 데 쓰인다. 

반도체는 회로가 미세해질수록 전력 효율을 비롯한 성능이 좋아진다.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기업)가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미세공정 기술력이 뛰어난 파운드리기업을 찾아야 한다.

현재 파운드리시장에서 7나노 이하 공정을 제공하는 기업은 삼성전자와 TSMC뿐이다. 이런 나노 단위 반도체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ASML이 만드는 극자외선 노광장비가 필수다. 

노광장비는 실리콘 웨이퍼에 빛으로 반도체 회로를 그리는 노광공정에 사용되는 장비를 말한다. 극자외선 노광장비는 기존 광원보다 파장이 짧은 극자외선을 사용해 더 세밀한 회로를 구현할 수 있다.

삼성전자와 TSMC는 지금까지 AMSL 극자외선 노광장비의 가장 큰 수요처였다. 미즈호증권에 따르면 2020년 판매된 극자외선 노광장비 31대 가운데 18대는 TSMC로, 8대는 삼성전자로 갔다. 

극자외선 노광장비 가격은 대당 2천억 원에 이른다. 기술력도 기술력이지만 충분한 자금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반도체기업은 극자외선 노광장비에 투자하기 어렵다.

하지만 극자외선 노광장비를 노리는 기업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고 있다. 특히 글로벌 1위 반도체기업 인텔이 극자외선 노광장비 주문을 대폭 확대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인텔은 최근 파운드리사업 진출을 선언한 데 이어 26일 온라인 행사를 통해 2022년 하반기 극자외선 기반 인텔4 공정 생산 준비를 마치겠다고 밝혔다. 

인텔4는 삼성전자 TSMC의 5나노 공정과 유사한 것으로 파악된다. 향후 인텔 자체 반도체뿐 아니라 외부 고객사 반도체에도 적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인텔은 여기에 더해 2025년 초를 목표로 인텔18A(1.8나노) 공정을 상용화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기존과 비교해 훨씬 미세한 공정이 도입되는 만큼 극자외선 노광장비도 고도화한 ‘하이(High)-NA’ 장비를 쓰게 된다. 이 장비는 기존 극자외선 노광장비보다 정밀한 회로를 구현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인텔은 26일 행사에서 “다음 세대 극자외선 노광장비에 관해서도 ASML과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며 “하이-NA 장비를 업계 최초로 공급받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현재 파운드리시장은 TSMC가 시장 절반 이상을 차지한 가운데 삼성전자가 10% 후반대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인텔은 미세공정 개발에 속도를 내 충분히 삼성전자와 TSMC의 반도체 일감을 차지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극자외선 노광장비의 생산량 자체가 한정돼 있다는 점이다. ASML이 생산능력을 확대해도 삼성전자, TSMC, 인텔 등 모든 파운드리기업의 수요를 충당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 TSMC에 이어 인텔도 ASML의 반도체 극자외선장비 쟁탈전

▲ ASML 극자외선 노광장비. < ASML >


김경민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ASML이 매년 극자외선 노광장비 생산을 늘리고 있지만 여전히 독점생산체제여서 공급부족이 불가피하다”며 “ASML은 극자외선 노광장비 생산능력을 기존 40대 수준에서 2023년 60대까지 늘릴 계획인데 이미 내년 생산분까지 선주문이 끝난 상태다”고 말했다.

파운드리뿐 아니라 메모리반도체기업의 극자외선 노광장비 수요도 만만찮다. 극자외선 노광장비는 기존에는 파운드리를 비롯한 시스템반도체분야에서만 사용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D램 등 메모리반도체에도 극자외선 기술이 도입되고 있다.

먼저 삼성전자가 지난해 3월부터 극자외선을 적용한 D램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극자외선 노광장비 관련 노하우가 충분한 만큼 극자외선 기반 메모리반도체를 생산하는 일이 상대적으로 쉬웠던 것으로 파악된다.

SK하이닉스도 7월 초 처음으로 극자외선 노광장비를 활용해 D램 양산에 들어갔다. 또 마이크론은 2024년까지 극자외선 노광장비 기반 팹(공장)을 구축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ASML의 극자외선 노광장비를 확보하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IT매체 샘모바일은 “ASML의 극자외선 노광장비 생산량은 연간 40여 대에 불과하다”며 “장비 수요가 너무 강해 삼성전자에서 2021년 주문한 제품이 2026년 이전에 인도되기 쉽지 않을 것이다”고 바라봤다.

ASML은 이런 극자외선 노광장비 수요에 힘입어 빠른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ASML 연간 매출은 2016년 68억7500만 유로에서 2020년 139억7800만 유로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순이익은 15억7800만 유로에서 34억6500만 유로로 늘었다.

올해 상반기 ASML 매출은 이미 83억8400만 유로에 이른다. 전년 같은 기간 대비 45.4% 증가한 것이다. [비즈니스포스트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