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회’.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2018년 9월 총괄 수석부회장에 올라 사실상 경영 전면에 나선 뒤 전국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현대차 노조)가 진행한 파업 횟수다.

현대차 노조는 정의선시대 들어 그동안 강경 이미지에서 벗어나 사뭇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는데 그 중심에는 하언태 현대차 대표이사 사장이 있다.
 
[오늘Who] 현대차 노사관계 바꿔낸 하언태의 협상원칙이 궁금하다

하언태 현대자동차 대표이사 사장.


하 사장은 ‘원칙’과 ‘신뢰’를 바탕으로 노사협상을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 사장은 현대차 사장단 가운데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리고 정의선 회장의 신뢰를 받는 만큼 향후 최장수 현대차 울산 공장장 타이틀을 거머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8일 현대차 노조가 조합원 투표를 통해 2021년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협상 잠정합의안을 가결하면서 하 사장은 2000년 현대차그룹 출범 이후 노사 단체교섭을 3년 연속 무파업으로 이끈 첫 번째 현대차 울산 공장장이 됐다.

현대차는 보통 울산 공장장이 매년 회사 대표로 노조와 단체교섭을 진행한다. 하언태 사장은 현대차 대표이사로 현재 울산 공장장을 겸직하고 있다.

현대차가 3년 연속 무파업으로 단체교섭을 마무리한 것은 2009~2011년에 이어 두 번째인데 당시에는 강호돈 부사장(2009년 2010년), 김억조 사장(2011년)이 회사 대표로 협상을 진행했다.

하 사장은 2018년 초 현대차 노사관계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을 때 소방수 역할을 맡아 긴급투입됐다.

현대차 노사는 당시 2017년 임단협을 사상 처음으로 해를 넘겨 2018년 1월 마무리했다. 이 과정에서 노조는 24차례에 걸쳐 파업을 진행했고 파업에 따른 추정 생산손실 규모는 2조 원에 육박했다.

하 사장은 2018년 1월 2017년 임단협이 타결된 직후 곧바로 울산 공장장에 올라 그해부터 단체교섭 협상을 이끌었는데 첫해만 2차례 부분파업을 겪었을 뿐 2019년부터 올해까지 3년 연속 무파업으로 단체교섭을 마쳤다.

하 사장은 내줄 건 확실히 내주고 안 되는 건 절대 안 되는 원칙을 지키는 방식으로 협상을 이끄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올해 협상에서도 노조가 강하게 요구한 정년연장과 관련해서는 처음부터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대신 다른 요구사안인 성과급 인상을 놓고는 최근 5년 사이 가장 큰 인상폭을 제시해 노조의 동의를 이끌어냈다.

노조는 잠정합의안을 마련한 뒤 지부신문을 통해 “사측은 국민연금과 연계한 정년연장 문제를 놓고 청년일자리 문제와 사회법령을 앞세워 완강히 거부했다”며 “그래서 시니어제도를 보완하고 확대하는 선에서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노조와 신뢰를 바탕으로 협상을 이끄는 점도 하 사장의 장점으로 평가된다.

하 사장은 이번에도 파업을 향한 긴장감이 높아질 때면 직접 노조사무실을 찾아가 협상 재개를 요청하는 등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10월에는 정 회장 취임 이후 면담을 요구한 노조의 요구에 맞춰 정 회장과 이상수 현대차지부장의 만남을 성사하기도 했다.

하 사장의 신뢰는 단체교섭 기간 일정 기한을 넘기지 않고 노조에 전달하는 사측의 회사안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단체교섭 합의안은 노조가 먼저 요구안을 마련하고 사측과 검토한 뒤 사측이 회사안을 제시하면 이를 놓고 밀고 당기는 과정을 거쳐 확정된다. 

국내 다수의 노조가 사측의 시간끌기로 회사안을 받는 일부터 힘겨루기를 할 때가 많은데 하 사장은 속도감 있게 교섭을 진행하면서도 노조가 요구한 시점에 맞춰 회사안을 전달했다.

하 사장은 7월 초 노조의 단체교섭 협상 결렬 선언 이후 낸 담화문에서 "총 100개 항목에 이르는 요구안에 합의점을 도출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며 "하지만 그럼에도 신속한 교섭을 강조한 노조에 맞춰 새로운 국면을 만들어야 한다는 판단 아래 빠르게 임금과 성과금을 제시하는 결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오늘Who] 현대차 노사관계 바꿔낸 하언태의 협상원칙이 궁금하다

▲ 2020년 10월30일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열린 ‘친환경 미래차 현장방문’ 행사 이후 현대차그룹 관계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공영운 현대차 사장, 알버트 비어만 현대차 사장, 이상수 노조 지부장, 정의선 회장, 하언태 현대차 사장, 이원희 현대차 사장, 송호성 기아차 사장. <현대자동차>


노조가 2021년 임단협 여름휴가 전 타결의 마지노선으로 잡은 20일에는 3차 제시안과 4차 제시안을 하루에 던지며 잠정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실리를 중시하는 중도노선의 노조 지도부를 만난 점도 하 사장이 3년 연속 무파업으로 단체교섭을 마칠 수 있었던 주요 이유로 꼽힌다.

이상수 지부장체제는 2011년 이경훈 지부장체제 이후 8년 만에 들어선 중도노선의 지도부로 이 지부장은 2019년 말 당선 직후부터 회사와 노동자의 상생을 강조했다.

하 사장이 올해 역시 무파업으로 단체교섭을 마무리한 만큼 현대차 역사상 최장수 울산 공장장에 오를 가능성도 더욱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하 사장은 2018년 1월 울산 공장장 올라 현재 3년 반째 현대차 노사관계를 이끌고 있다. 2012년 1월부터 2018년 1월까지 6년 동안 울산 공장장을 맡은 윤갑한 전 사장에 이은 2번째 장수 울산 공장장이다.

하 사장은 올해 3월 주주총회에서 3년 임기로 사내이사에 재선임돼 임기가 2024년 3월까지다.

정의선 회장은 한 번 사람 믿으면 신뢰를 주고 곁에 오래 두는 인사 스타일 보여주고 있는데 하 사장이 앞으로 임기만 유지한다 해도 현대차 최장수 울산 공장장 타이틀을 쥘 수 있는 셈이다.

하 사장은 현대차 사장단 가운데 상대적으로 나이도 어린 편에 속한다. 하 사장은 1962년 태어나 1분기 기준 현대차 사장단 12명 가운데 5번째로 나이가 적다. 현대차 사장단 12명의 평균 출생년도는 1960년이다.

하 사장은 3월 사내이사 재선임을 확정한 주총 인사말에서 “올해를 사업 턴어라운드의 원년으로 만들겠다”며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프로바이더(제공자)에 걸맞은 업무방식으로 전환하기 위해 구성원의 자율과 책임을 기반으로 고객중심 조직으로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