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시장 선점 경쟁이 수탁사업을 중심으로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시중은행들이 가상화폐거래소 실명계좌 발급에는 소극적이지만 가상자산 수탁사업에는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우리은행도 가상자산 수탁사업 진출, 은행권 선점경쟁 갈수록 치열

▲ 신한은행, KB국민은행, NH농협은행, 우리은행 로고.


12일 우리은행과 블록체인 전문기업 코인플러그에 따르면 합작법인 '디커스터디'를 설립한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미래 먹거리인 가상자산 수탁사업에 시험적으로 진출해보기 위해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로 했다"며 "이번주 안에 합작법인을 설립할 것"이라고 말했다.

디커스터디의 가상자산 수탁서비스는 고객들이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가상자산을 외부 해킹이나 보안키 분실 같은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보관하는 것은 물론 디파이(탈중앙화된 금융서비스)상품에 투자해 자산을 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우리은행과 코인플러그는 합작법인을 통해 앞으로 대체불가능 토큰(NFT) 관련 자산보관서비스도 출시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시중은행 가운데 가상자산시장에 신중한 태도를 보여 온 우리은행도 합작법인을 세워 가상자산 수탁사업에 진출하기로 하며 시장 선점경쟁이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은행이 가상자산 수탁사업 관련 합작회사를 설립하면 시중은행 가운데 세 번째로 가상자산 수탁사업에 뛰어드는 것이다.

KB국민은행은 지난해 11월 블록체인 개발사 해치랩스, 투자사 해시드와 한국디지털에셋(KODA)을 설립했다. 신한은행도 올해 초 한국디지털자산수탁(KDAC)에 전략적 투자자로 합류했다.  

NH농협은행도 아직 합작법인 설립까지 진행하진 않았지만 7일 가상화폐 지갑 '옥텟 월렛'의 기술을 보유한 헥슬란트, 갤러시아머니트리 등과 가상자산 수탁사업을 포함한 다양한 가상자산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대부분 시중은행들이 가상화폐거래소와 제휴에는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것과 상반된다.

은행들은 빗썸과 업비트, 코인원, 코빗 등 4대 가상화폐거래소를 제외한 거래소와의 실명거래 계좌 제휴를 추진하지 않고 있다. 4대 가상화폐거래소와의 기존 실명거래 계좌 제휴도 9월24일까지 한시적으로 재연장해 뒀다. 시중은행은 특정금융정보법 시행에 맞춰 새로 만든 평가기준에 따라 자금세탁 안전성을 평가하고 있다.

가상화폐거래소는 9월24일부터 은행으로부터 실명거래 계좌를 발급받지 못하면 사실상 영업을 중단해야 하는데 금융당국은 실명거래 계좌 발급 여부를 은행에 맡겼다.

이에 은행들은 가상화폐거래소에서 자금세탁 등 금융사고가 발생하면 함께 책임져야 해 실명거래 계좌를 내주는 데 부담을 안고 있다.

반면 가상자산 수탁사업은 은행들이 직접 고객들을 관리해 자금출처 등을 확인할 수 있고 보관과 관리업무만 맡아 위험 부담은 적고 세금과 배당 등을 관리하면서 수수료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시중은행들이 가상화폐거래소가 아닌 가상자산 수탁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다.

실제로 가상자산 수탁사업은 이미 해외에서 새로운 은행사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 가상자산 수탁사업을 허용하고 있지 않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은행이 가상자산 수탁사업을 겸영하는 것이 가능하다.

미국 통화감독국은 2020년 7월22일 금융기관의 가상자산 수탁사업 진출을 허용했다. 이후 2020년 11월 신탁업체 앵커리지가 미국 전역에서 가상자산 수탁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디지털은행으로 전환을 승인하기도 했다.

독일도 은행법을 개정해 올해 1월부터 은행들이 고객의 가상화폐를 수탁할 수 있게 허용했다.

앞으로 미국, 중국 등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발행에 나서면 가상자산 수탁사업시장은 급격히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중앙은행 디지털화폐는 각국 정부 산하의 중앙은행들이 디지털 형태로 발행하는 화폐다. 중앙은행 디지털화폐가 도입되면 이를 보관해야하는 수탁시장도 커질 수 밖에 없다.

세계에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와 관련해 심층 연구와 모의실험를 진행하고 있는 국가는 50개 국이 넘는다. 중국은 이미 지난해부터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를 일반 시민들에게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한국은행도 연구용역을 선정하고 올해 말까지 모의실험을 마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은행이 가상자산 수탁사업을 겸영하는 등 이미 은행의 미래 먹거리로 떠오르고 있다"며 "국내에서는 현행 법령상 은행이 가상자산 수탁사업을 겸영할 수 없어 지분참여 방식으로 합작사 설립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자금세탁 등 리스크가 높은 가상화폐거래소보다는 시장동향, 기술습득 등을 간접적으로 획득하기 좋은 블록체인 기술 기업과 협력이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비즈니스포스트 윤종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