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비에이치는 삼성전기가 경연성회로기판사업에서 철수한 뒤 빈자리를 메울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경연성회로기판은 단단한(Rigid) 기판과 유연한(Flexible)기판이 하나로 결합된 회로기판(PCB)이다. 올레드 디스플레이모듈이나 카메라모듈, 통신모듈, 스마트폰 등에 쓰인다.
삼성전기, 비에이치, 인터플렉스, 영풍전자 등 국내회사들이 삼성전자와 애플 등 상위권 고객사들의 물량을 대거 수주하는 등 시장에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 젠케이(GenK)나 카페에프(CafeF) 등 베트남 매체들을 통해 삼성전기가 8월부터 현지 경연성회로기판 생산공장의 매각작업을 본격화할 것이라고 보도됐다.
삼성전기의 경연성회로기판사업 철수 가능성은 업계에서 2021년 초부터 흘러나왔다. 삼성전기는 적층세라믹커패시터나 반도체기판을 주력으로 삼고 있어 경연성회로기판은 비주력사업으로 여겨진다.
이경환 회장이 여기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기 때문에 비에이치가 삼성전기의 물량을 흡수할 가능성이 높다.
6월 비에이치는 500억 원을 들여 2022년 6월까지 회로기판 생산설비를 증설하는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300억 원은 자동차 전자장비용 연성회로기판(FPCB) 생산라인 증설에, 200억 원은 경연성회로기판을 생산하는 베트남 공장의 증설에 각각 투자된다.
증권업계에서는 삼성전기가 애플로부터 수주하던 경연성회로기판 물량을 비에이치가 얼마나 차지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시선이 나온다.
삼성전자도 하반기 갤럭시Z폴드3 등 프리미엄 스마트폰의 출시를 준비하고 있기는 하지만 전체 물량 차원에서는 최근 갤럭시A 시리즈나 갤럭시F 시리즈, 갤럭시M 시리즈 등 중저가 스마트폰의 라인업을 확대하는 것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전자업계에 따르면 중저가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다층연성회로기판(Multi Layer FPCB)은 평균판매가격(ASP)이 플래그십 모델에 탑재되는 경연성회로기판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반면 애플은 올해 하반기부터 출시하는 모든 스마트폰에 올레드 디스플레이를 탑재하기로 했다. 이는 모든 스마트폰에 경연성회로기판을 채용한다는 뜻이다.
때문에 이 회장으로서는 비에이치의 매출 측면에서나 수익성 측면에서나 애플의 경연성회로기판 물량을 확보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 유리할 것으로 분석된다.
고의영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애플의 올레드(OLED)패널용 경연성회로기판은 비에이치가 60%를, 삼성전기가 40%를 공급하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비에이치가 삼성전기의 사업 철수 뒤 애플 점유율 10%를 추가로 확보할 때마다 연 매출이 900억 원씩 늘어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비에이치는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 7214억 원을 거뒀다. 경연성회로기판시장에서 삼성전기의 물량을 얼마나 흡수할 수 있는지에 따라 매출 1조 원 달성도 가능할 수 있다.
연매출 1조 원은 기업이 구조적 성장을 이어갈 수 있는 규모를 갖췄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증권업계에서는 비에이치가 ‘내년 매출 1조’ 원을 낼 수 있다는 전망이 많다.
이 회장에게는 삼성전기의 사업 철수가 이를 달성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셈이다.
이 회장은 그동안 매출목표를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과거 고난의 경험에서 비롯한 조심스러움으로 해석된다.
이 회장은 1960년 4월21일 태어나 성균관대학교 전자공학과를 나왔다.
만30세가 되기도 전인 1987년 오디오 등 전자부품회사 범환전자를 설립해 젊은 나이에 회사를 이끌게 됐다. 그러나 범환전자가 IMF를 맞아 부도 직전까지 몰리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이 때 이 회장은 외부자금을 유치해 1999년 범환플렉스를 설립하고 회로기판사업에 집중하기로 했다. 범환플렉스는 2001년 비에이치플렉스로, 2006년 비에이치로 회사이름을 바꿨다.
이 회장은 고부가 회로기판인 경연성회로기판과 빌드업회로기판(BUPCB)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비에이치의 회로기판사업을 키워 왔다.
그 결과 경연성회로기판과 빌드업회로기판은 매출 비중이 비에이치 전체 매출의 70% 안팎을 차지할 정도로 커졌다. 이에 힘입어 비에이치는 2018년 처음으로 회로기판 판매금액이 인터플렉스를 넘어서 국내 1위에 오른 뒤 3년 연속으로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업계에서 비에이치의 입지가 탄탄해진 만큼 이 회장도 이제 매출 1조 원 달성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이 회장은 3월 한국경제와 인터뷰에서 “올해 미국 스마트폰회사(애플)이 디스플레이를 모두 올레드로 바꾸기로 하는 등 업황이 매우 좋다”며 “내년에는 매출 1조 원 클럽에 이름을 올리겠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