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과 조종사노조의 갈등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조종사노조는 파업찬반투표에서 파업을 결의한 뒤 준법투쟁을 벌인 데 이어 대한항공의 상황을 알리는 홍보전에 나서는 등 압박강도를 높이고 있다.
대한항공도 준법투쟁을 벌인 기장을 대기발령하는 등 노조에 강하게 맞서고 있다.
◆ 조종사노조, 투쟁 수위 높여
조종사노조는 24일 조합원들에게 ‘대한항공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 ‘회사는 적자, 회장만 흑자’라고 적혀있는 유인물을 조합원들이 사용하는 가방에 부착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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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
그러자 대한항공은 즉시 유인물 부착을 금지했다. 회사의 허가없이 회사에 관한 사항에 대해 유인물 등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취업규칙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조종사노조는 노동법에 보장된 행위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조종사노조는 회사 측이 파업 찬반투표 결과가 적법하지 않다고 지적한 데 대해서도 “회사가 문제를 제기하는 새노조 조합원들에 대한 쟁의행위 찬반투표의 유효여부는 지금도 검증이 가능하며 우리는 언제든지 이에 응할 의사가 있다”고 반박했다.
대한항공이 최근 노조의 방침에 따라 준법투쟁을 벌인 기장을 대기발령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조종사노조의 반발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조종사노조는 20일부터 준법투쟁을 벌이고 있다.
준법투쟁은 무조건 정해진 속도로 운항하거나 정해진 시간에만 출근하는 방식의 투쟁을 말한다. 운항에 큰 차질은 빚지 않지만 출발이 지연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항공기가 계류장에서 시속 20∼35㎞로 이동해야 하는 규정이 있지만 관제탑의 지시를 받을 경우에는 속도를 더 낼 수 있다.
하지만 준법투쟁에 들어가면 이런 지시를 어기고 정해진 속도로만 운행해 혼잡을 유도할 수 있다.
◆ 조종사 노조, 파업에 들어갈까
조종사노조는 최근 파업을 가결하며 언제든 파업에 돌입할 수 있는 준비를 갖췄다.
하지만 조종사노조는 당장 파업에 들어가기보다 낮은 수준의 쟁의행위부터 시작해 회사 측과 협상을 이어가기로 했다. 조종사노조는 25∼26일 이틀 동안 김포에서 대의원대회를 열어 교섭위원 선출 등 앞으로 투쟁 방향을 정한다.
대한항공 조종사노조는 그동안 여러 차례 파업을 가결했지만 파업으로 이어진 경우는 많지 않다.
조종사노조는 2004년에 파업을 가결했으나 회사 측과 집중교섭을 벌인 끝에 임단협 협상을 타결했다.
조종사노조는 2005년에도 파업 찬반투표를 벌여 높은 찬성률로 파업을 결의했다. 그러나 조종사노조는 곧바로 파업에 들어가지 않고 준법투쟁에 들어갔고 노사는 집중교섭을 벌인 끝에 부분파업 돌입을 2시간 앞두고 극적으로 타결했다.
조종사노조는 2012년에도 파업을 결의했지만 파업에 들어가지 않았다.
◆ 후폭풍 남긴 2005년 파업
대한항공 조종사노조는 그동안 모두 5차례 파업을 벌였다.
조종사노조는 2001년 임금협상 과정에서 외국인 조종사 채용 동결 등 요구사항이 수용되지 않자 사흘 동안 파업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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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항공 조종사노조가 가방에 부착하라고 지침을 내린 유인물.<대한항공 조종사노조 홈페이지> |
검찰은 당시 노조 간부 12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했고 대법원은 이들에 대해 벌금 300만~500만 원을 선고한 원심대로 유죄를 확정했다.
회사와 조종사노조 모두에게 가장 큰 상처를 남긴 건 2005년에 있었던 마지막 파업이다.
조종사노조는 2005년 12월 파업을 가결한 뒤 곧바로 파업에 들어갔다. 파업은 김대환 당시 노동부 장관이 긴급조정권을 발동하면서 나흘 만에 중단됐다.
당시 파업으로 항공편의 60%가 결항됐고 대한항공은 매출손실 501억 원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수출업계와 여행업계 등 간접적 피해까지 합치면 경제적 피해는 1894억 원에 이른 것으로 추정됐다.
당시 파업을 계기로 정부는 2006년 항공사업장을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지정해 전면파업을 금지했다. 필수공익사업장은 파업 때에도 전체 인원의 80% 이상이 업무에 참여해야 한다.
당시 대한항공 일반노조와 조종사노조의 갈등까지 불거졌다.
일반직원들은 파업으로 경영손실이 발생해 회사가 지급하기로 했던 성과급마저 못 받게 되는 불이익을 떠안았다.
대한항공 일반노조는 1월에도 성명을 내고 “조종사노조의 주장은 절박한 생존권 요구가 아니다”라며 “파업에 따른 피해를 동료에게 강요하는 행위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