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국민의힘에 다가서며 거리를 좁히다가 속도를 조절하는 쪽으로 태도를 바꾸고 있다.

윤 전 총장은 그동안 애매모호한 태도로 '신비감'을 불러일이키며 정치적 가치를 높인 측면이 있지만 그의 '잠행'을 지켜보는 대중의 피로감이 임계점을 넘으면 신비감이 순식간에 의구심으로 변할 수 있다는 시선도 나온다. 
 
윤석열 국민의힘과 다시 거리두기, 전략적 침묵은 득일까 실일까

윤석열 전 검찰총장.


8일 정치권에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윤 전 총장의 잠행기간이 길어지면서 그에 따른 피로감도 누적되고 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이날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윤 전 총장을 향해 “검찰을 지키기 위해 사표를 던졌다고 하지 않았는가. 정치 행보의 유불리를 따지기 전에 당당하게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한 역할을 해야 한다”며 “빨리 수면 밖으로 나와 정치력을 검증받고 국민에게 비전을 보여주는 게 맞다”고 말했다.

원 지사는 “윤 전 총장이 아직 수면 아래에 있어 행보가 불투명한 측면이 있다”고 윤 전 총장의 잠행을 에둘러 비판했다.

당초 정치권에서는 윤 전 총장이 재보궐선거가 끝난 뒤 5월경에는 정치적 거취를 결정하고 대중 앞에 모습을 나타낼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여전히 언론 등을 통해 드문드문 모습을 보일 뿐 분명한 거취를 결정하지 않고 있다.

최근 들어 국민의힘 의원들과 접촉면을 넓히며 국민의힘 입당 쪽으로 가닥을 잡는 듯 보였으나 이마저도 선을 긋고 있다.

윤 전 총장의 가까운 친구로 알려진 이철우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7일 보도된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에 입당한다는 얘기가 가장 큰 억측”이라며 “본인한테 물었더니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다. 어떤 결정도 한 적이 없다’는 말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의 미묘한 태도 변화를 놓고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두고 거듭 조심하는 것이라고 일각에선 바라봤다.

사실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윤 전 총장을 중심에 둔 채 돌아가고 있다. 당대표후보들 모두 윤 전 총장을 다음 대통령선거의 상수로 보고 있는 데다 윤 전 총장의 거취문제가 전당대회의 중요 쟁점이 되고 있다.

윤 전 총장의 움직임이 전당대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전당대회 결과 역시 윤 전 총장의 향후 대선 행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윤 전 총장도 거리를 좁히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윤 전 총장의 침묵이 길어지면서 그의 모습을 지켜보는 대중의 피로감도 점차 쌓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윤 전 총장의 메시지 전달방식도 도마에 올랐다. 직접 뜻을 대중에게 설명하는 게 아니라 계속 제3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메시지를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잊혀질만하면 간헐적으로 모습을 보이며 존재감을 과시하는 패턴도 동일하게 반복되면서 점차 식상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자칫 윤 전 총장의 '전략적 침묵'이 정치인으로서 비전을 제시하기보다는 대선 지지도만 관리하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전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윤 전 총장을 향해 “오로지 별이 되기 위해 별의 순간을 선택한 것은 아니지 않나? 더 속 시원한 비판의 칼을 정권의 심장부에 겨눠야 한다”며 “정권의 부조리 앞에 정치공학의 침묵으로 일관하지 말라”고 말했다.

방송인 김어준씨는 8일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윤 전 총장은 지금까지 지인, 측근들의 전언을 기자들이 받아쓰고 그것으로 지지율을 유지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며 직접 메시지를 내놓지 않는 모습을 비판했다.

그는 윤 전 총장의 스타트업과 반도체공장 등을 방문한 잇따른 현장 행보를 놓고도 “거기 국가경영의 담론이 뭐가 있나. 동네 한 바퀴, 셀카 정치 아니냐”며 깎아 내렸다.

윤 전 총장이 분명한 태도 표명을 꺼리는 이유가 섣불리 움직였다가 대선 지지도를 순식간에 잃어버릴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란 시선도 나온다.

국민의힘 서울 동작구갑 당협위원장인 장진영 변호사는 7일 CBS라디오 ‘김종대의 뉴스업’에 출연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사례를 보더라도 고공 지지율이 떨어지는 데 며칠 안 걸린다. 정치판이 그렇게 무서운 곳”이라며 “그런 전례들을 보면서 본인이 숙고하고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일 것이다”고 봤다. [비즈니스포스트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