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 반도체도 내재화 모색, 고성능반도체는 삼성전자 몫으로 남나

▲ 테슬라 전기차 사이버트럭. <테슬라>

글로벌 전기차기업 테슬라가 전기차용 반도체도 자체생산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반도체 생산경험이 없는 만큼 고성능 반도체를 삼성전자 등 기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기업에 맡기고 상대적으로 기술수준이 낮은 제품을 자체생산하는 전략을 채택할 것으로 전망된다.

31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테슬라는 반도체공장 인수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인수규모나 인수대상 등 구체적 정보는 알려지지 않았다.

전기차를 만드는 테슬라가 갑자기 반도체 생산을 저울질하는 것은 세계적 반도체 공급부족 사태에 따라 안정적으로 반도체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테슬라는 최근 파운드리기업에 ‘선결제’를 하는 등 반도체 확보에 힘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통상 파운드리기업은 수익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고객 주문을 받은 뒤 시장 상황에 따라 생산량을 조절한다. 대금 지불은 반도체를 인도한 뒤 이뤄진다. 그런데 테슬라는 일정한 반도체 공급을 유지하기 위해 반도체를 받기도 전에 대금을 지불하겠다고 한 것이다.

테슬라는 파운드리기업과 협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자체 반도체 생산기반을 마련해 장기적으로 반도체 공급부족의 리스크를 줄이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테슬라가 자동차부품의 수직계열화 전략을 구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테슬라는 지난해 9월 ‘반값 배터리’를 출시 등 전기차의 엔진인 배터리에 관해서도 내재화방안을 내놓은 바 있다. 

다만 테슬라의 반도체 자체 확보는 배터리와 비교해 훨씬 어려울 수밖에 없다. 자동차반도체는 배터리와 달리 다품종 소량생산이 필요한 품목이다. 여러 종류의 반도체가 자동차 한 대에 많으면 수백 개까지 탑재된다. 한 기업이 이런 모든 반도체를 내재화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테슬라가 반도체 생산계획을 수립하며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반도체 투자에 관한 부담을 고려하면 테슬라는 내재화제품으로 센서나 전력반도체 등 아날로그 반도체를 선택할 공산이 크다. 아날로그 반도체는 자연계 신호의 디지털 전환, 전력 공급, 구동 등을 담당하는 반도체를 말한다. 

반도체는 회로가 미세해질수록 성능이 높아진다. 하지만 아날로그 반도체는 미세화 수준보다는 설계능력이 중요하다. 테슬라가 아날로그 반도체를 만들겠다고 결정할 경우 미세공정 수준이 높은 공장을 세우거나 사들이기 위한 금액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얘기다.

반면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등 테슬라 전기차 사양에 적합한 자동차용 연산 반도체분야에서는 삼성전자를 비롯한 외부 파운드리기업과 협업을 유지하는 쪽이 유리한 것으로 분석된다.

MCU는 자동차 각 부분의 제어를 담당하는 시스템반도체다. AP는 연산과 그래픽, 통신 등 다양한 기능을 통합한 반도체를 말한다. 

테슬라는 현재 자동차에 쓰이는 수십 개의 MCU를 향후 몇 개의 AP로 통합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부품 수를 줄이면서 자율주행 반응속도 등을 개선하려는 목적으로 파악된다. 

정부는 3월 발표한 ‘차량용 반도체 단기 수급 대응 및 산업역량 강화 전략’에서 “미래차에서는 MCU가 점차 AP로 통합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예를 들어 테슬라는 자율주행 관련 MCU를 AP로 통합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여러 반도체에 분산됐던 기능을 한 반도체로 모으기 위해서는 반도체 회로를 미세화해 집적도를 높이는 일이 필요하다. 실제로 테슬라는 그동안 자율주행 관련 반도체를 삼성전자에서 위탁생산했다.

이에 더해 삼성전자와 협력해 5나노급 자동차반도체를 함께 개발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개발된 반도체는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에서 생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세계에서 5나노급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파운드리기업은 삼성전자와 대만 TSMC뿐이다. 테슬라가 반도체 자체생산을 추진해도 5나노급 반도체를 비롯한 최첨단 반도체를 만들기는 힘들다.

또 테슬라가 자체적으로 고성능 반도체를 만들게 되면 삼성전자 등 기존 파운드리 협력사와 관계가 소원해져 차세대 반도체 확보에 뒤처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결정적으로 수준 높은 반도체공장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최첨단 반도체공장 투자에 최대 200억 달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테슬라는 창립 14년 만인 2020년에야 첫 순이익을 달성했다. 이미 벌려놓은 투자계획도 많다. 미국 텍사스 등에 전기차 생산시설 ‘기가팩토리’를 역대 최대 규모로 짓기로 했다. 자체 배터리 개발 및 생산도 예정돼 있다. 반도체 자체생산을 위한 투자여력은 부족할 수밖에 없다.

테슬라가 반도체 내재화 전략과 상관없이 여전히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고객사로 남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에서 테슬라가 차지하는 정도는 크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투자전문매체 시킹알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매출비중은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 60%, 퀄컴 20%, 엔비디아 IBM 인텔 합계 20% 등으로 나뉜다. 

하지만 테슬라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전기차기업이라는 점을 놓고 보면 테슬라 반도체의 수주 여부는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에 있어 상징적 의미가 작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비즈니스포스트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