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재계와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21일 열리는 한국과 미국 정상회담에 맞춰 미국 투자계획을 확정해 발표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 고위경영진 가운데 한 명이 한미 정상회담의 경제사절단에 포함될 것으로 재계는 바라본다. 현재 김기남 DS부문 대표이사 부회장과 최시영 파운드리사업부장 사장이 거명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위치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공장의 증설을 포함해 미국에서 20조 규모의 투자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개 국가 사이 정상회담이 진행될 때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계획이 빌표된다는 점에서 삼성전자도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의 정상회담 일정을 전후로 대규모 투자계획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가 이 투자계획에 차량용 반도체와 관련한 투자를 더할 수 있다는 시선이 나온다.
반도체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차량용 반도체의 공급부족 이슈가 부각되고 있는 만큼 미국으로서도 차량용 반도체 투자가 반가울 것이다”며 “협력관계를 맺은 현대차가 미국에서 전기차 생산을 본격화할 준비를 하는 것도 삼성전자의 차량용 반도체 투자 당위성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13일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에서 열린 ‘K-반도체 벨트 전략 보고대회’에서 삼성전자는 현대차, 산업통상자원부 등과 차량용 반도체 수요·공급기업 사이 협력을 강화하는 내용의 협약을 맺었다.
바로 다음날인 14일 현대차그룹은 2025년까지 미국에 8조1500억 원을 투자해 전기차 생산기지를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현대차는 내년 중 미국에서 전기차 아이오닉 브랜드 생산을 시작한다. 현대차와 기아는 현지 친환경차시장의 흐름을 주시하며 생산규모를 단계적으로 늘리기로 했다.
반도체업계는 생산라인 설치에 걸리는 기간을 고려하면 당면한 차량용 반도체 공급부족이 길게는 2년 정도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현대차그룹의 미국 전기차 생산계획도 차량용 반도체 공급부족 문제에 발목이 잡힐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이는 삼성전자가 미국에서 차량용 반도체 투자를 집행한다면 현대차그룹을 고객사로 확보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삼성전자에게 미국 차량용 반도체 투자는 미국 정부의 ‘진짜’ 투자요청에 화답하는 것이기도 하다.
삼성전자는 20일 열리는 미국 상무부 반도체회의에 앞서 4월12일 개최된 백악관 반도체회의에도 참석했었다.
당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회의에 잠시 참석해 “우리의 경쟁력은 당신들이 어디에 어떻게 투자하느냐에 달렸다”며 기업들에 투자를 압박했다.
물론 바이든 대통령은 당시 반도체 전반에 걸쳐 미국의 산업 경쟁력 강화를 들었다. 그러나 반도체업계에선 바이든 대통령의 의중에 차량용 반도체가 가장 크게 자리잡고 있다는 시선이 우세하다.
애초 이 반도체회의는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 이슈가 본격화해 미국에서 완성차 생산량이 100만 대가량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가 미국에서 차량용 반도체와 관련한 투자계획을 내놓는 것은 미국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줄 수 있는 조치도 되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차량용 반도체를 포함한 8인치 웨이퍼 기반 파운드리의 특성을 들어 삼성전자가 신규 공장을 짓는 것이 아니라 인수합병을 통해 미국에서 차량용 반도체 생산량을 확보할 것이라는 전망도 꾸준히 나온다.
8인치 파운드리는 수익성이 낮다. 글로벌 반도체시장에서 8인치 반도체로 수익을 내는 회사들은 감가상각이 끝난 노후장비를 통해 제품을 생산하기 때문에 수익을 낼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시에 위치한 삼성전자 파운드리공장. <삼성전자>
그동안 삼성전자는 이 수익성 문제를 들어 8인치 파운드리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8인치 파운드리에 필요한 장비는 중고장비는 물론이고 새 장비조차 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기존 8인치 파운드리사업을 진행하는 회사를 인수합병한다면 장비와 생산공장은 물론이고 사업 노하우까지 단번에 확보할 수 있다.
삼성전자가 네덜란드 반도체회사 NXP를 인수할 가능성이 지속해서 제기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NXP는 2020년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시장에서 점유율 21%로 1위 회사에 올랐으며 유럽과 북미에 걸쳐 생산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시장 영향력으로 보나 공장 위치로 보나 최적의 인수합병 대상회사다.
삼성전자도 인수합병의 가능성을 열어두고는 있다.
이에 앞서 최윤호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 사장은 1월 열린 2020년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지속적으로 인수합병 대상을 신중히 검토해 왔으며 많은 준비가 됐다”며 “지금까지 준비해온 것을 토대로 의미있는 규모의 인수합병을 실현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