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 심사기준을 대폭 강화한다.
정부는 이번 조치로 가계부채 증가폭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은행권 가계대출의 증가폭이 지나치게 빨리 둔화되거나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을 수 있다는 걱정도 나온다.
◆ 주택담보대출 무엇이 달라지나
시중은행들은 1일부터 수도권을 대상으로 ‘여신심사 선진화 가이드라인’을 실시한다.
여신심사 선진화 가이드라인은 고객의 상환능력 범위 안에서 주택담보대출 원금과 이자를 처음부터 나눠 갚도록 유도하는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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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종룡 금융위원장. |
이전에는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뒤 이자만 내다가 만기에 원금을 한꺼번에 갚는 방식을 선택한 사람이 많았다. 집값이 많이 오를 것을 믿고 시세차익으로 빚을 갚으려고 했던 셈이다. 이 때문에 주택담보대출이 가계부채를 급격하게 늘렸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제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려는 사람은 집의 담보가치나 소득보다 더 많은 돈을 빌리거나 소득을 제대로 증빙하지 않으면 대출 후 1년 이내부터 원금과 이자를 함께 나눠 갚아야 한다.
아파트 등의 중도금을 집단으로 빌리거나 일시적인 2주택을 처분하는 등 대출을 갚을 계획을 명확하게 내놓으면 예외로 인정받아 이자부터 갚을 수 있다.
집을 새로 사면서 그 집을 담보로 잡고 돈을 빌리는 사람도 원금과 이자를 처음부터 나눠 갚아야 한다.
변동금리로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려는 사람들은 총부채상환비율(DTI)을 계산할 때 ‘상승가능금리’(스트레스금리) 기준을 적용받는다. 상승가능금리는 현재 금리에 앞으로 오를 가능성이 있는 금리를 더한 가산금리다.
예를 들어 현재 금리에서 문제가 없더라도 상승가능금리를 대입했을 때 매년 갚아야 하는 대출 원리금이 전체 연간 소득의 80%를 넘어서면 대출금액을 줄이거나 고정금리 대출을 받아야 한다.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려는 사람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도 적용된다. 은행이 총부채상환비율을 계산할 때 신용대출 등 다른 대출의 원리금 상환액까지 더해 연간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집계한 뒤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별도로 관리하는 방식이다.
수도권이 아닌 지역은 5월2일부터 여신심사 선진화 가이드라인을 시행한다. 정부는 비수도권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내줄 때 소득을 엄격하게 증빙하지 않았던 관행을 고려해 준비 기간을 마련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도 “서민들이 대출을 받기 힘들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상환 범위 안에서 돈을 빌리고 처음부터 나눠갚도록 하려는 것”이라며 “의료비, 학자금, 가장의 사망 등에 따른 긴급 생활자금 등은 신규 대출이어도 가이드라인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여신심사 선진화 가이드라인의 영향은
금융위는 막대한 가계부채 증가폭을 줄이기 위해 여신심사 선진화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다. 주택담보대출은 1200조 원에 가까운 전체 가계부채 가운데 약 40%를 차지하고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1월27일 금융발전심의회 전체회의에서 “금융시장이 안정되려면 가계부채 문제가 우리 경제의 리스크 요인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상환 능력 안에서 빌리고 처음부터 갚아 나간다는 핵심 원칙을 금융현장에 정착시키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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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웅섭 금융감독원장. |
은행도 주택담보대출 심사 기준을 자체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일부 시중은행은 지난해 11월부터 시공사의 보증을 받은 아파트 입주자에게 중도금이나 잔금을 분양가의 60~70%만큼 빌려주는 집단대출 심사 기준을 더욱 엄격하게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주택담보대출 증가폭은 올해 1월부터 상당 부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은행권의 가계대출이 지나치게 빨리 줄어드는 ‘대출절벽’ 현상이 우려되고 있다.
신한은행 등 주요 6대 은행 5곳은 1월28일 기준으로 약 349조5천억 원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을 보유하고 있다. 이 잔액은 지난해 12월 말보다 약 4400억 원 늘어난 것이다. 지난해 월평균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인 2조7천억 원보다 증가폭이 훨씬 줄었다.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은 “여신심사 선진화 가이드라인을 시행하면서 대출이 획일적으로 줄어들거나 자격을 갖춘 실제 수요자들도 대출을 받기 힘들어지는 부작용이 생기지 않도록 창구 동향을 모니터링하겠다”고 밝혔다.
주택담보대출 기준이 강화되면서 부동산 시장이 위축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부동산 정보회사인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시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1월29일 기준 일평균 177건을 기록했다. 2014년 1월29일 220건보다 약 20% 줄어든 것이다.
한국지방세연구원도 올해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서울의 월평균 주택 거래량이 지난해보다 16.8%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