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0조 원, 모건스탠리가 전망한 민간주도 우주산업의 2040년 예상 규모다.
그동안 국가와 국가 사이의 경쟁요소 정도로 인식돼왔던 우주사업은 이제 민간기업들이 앞다투어 뛰어드는 하나의 시장이 되어가고 있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나 제프 베조스의 블루오리진 등 전통적 우주강국인 미국 기업이 주도하고 있는 이 우주시장에 발을 담그려 하는 국내 대기업이 있다. 바로 한화그룹이다.
한화는 현재 한국형발사체사업, 누리호사업에서 누리호의 엔진을 개발하는 부분을 맡고 있다. 또한 최근 쎄트렉아이의 인수로 위성 제조능력까지 갖추게 됐다.
과연 우주사업은 꿈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한화그룹의 미래 성장동력이 될 수 있는 사업일까?
현재 한화그룹의 우주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김동관 한화 전략부문장 겸 한화솔루션 전략부문 대표이사 사장을 보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 ‘인공위성 제조’ 쎄트렉아이, ‘방산’ 한화의 글로벌 사업망과 만나다
김 사장은 최근 한화 우주사업의 메인 허브 역할을 하게 되는 신조직, ‘스페이스허브’의 팀장을 맡는 동시에 쎄트렉아이의 기타비상무이사로도 이름을 올렸다. 한화의 우주사업에서 쎄트렉아이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인사다.
한화그룹이 쎄트렉아이 인수로 얻은 것이 무엇인지는 매우 분명하다. 쎄트렉아이는 우리나라 민간회사 가운데 인공위성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지닌 유일한 곳이다.
결국 한화그룹이 쎄트렉아이를 인수했다는 것은 앞으로 한화그룹이 인공위성 제조 및 판매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뜻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인공위성 제조 및 판매사업은 정말로 돈이 될 수 있는 사업일까?
2020년에 쎄트렉아이는 위성 판매로 매출 814억 원, 영업이익 137억 원을 냈다. 영업이익률은 16.8%다. 현대자동차의 2020년 영업이익률이 약 1.52%라는 것을 살피면 인공위성 제조 및 판매사업이 굉장한 고부가가치사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한화그룹 같은 대기업이 어떤 사업체를 인수할 때 단순히 이 기업이 돈을 잘 번다는 이유만으로 결정하지는 않는다. 한화가 보유하고 있는 기반과 쎄트렉아이가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느냐도 살펴봐야 한다.
김이을 쎄트렉아이 대표는 최근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한화그룹이 지닌 글로벌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활용해 더 새롭고 큰일을 하기 위해 먼저 제안했다”라고 말했다.
세계에 뻗어있는 한화그룹의 판매망을 이용해 인공위성의 판로를 더욱 넓히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한화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방산기업이다. 방위산업은 무기를 파는 산업이고, 주요 고객은 각 나라의 정부다. 인공위성의 고객층과 겹친다.
쎄트렉아이는 사업보고서에서 “아랍에미레이트, 터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스페인 등 해당 국가의 정부 또는 정부출연연구소와 대학이 주요 고객”이라고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한화가 우주사업을 그룹의 미래를 책임질 사업으로 보고 있는 만큼 한화의 우주사업이 인공위성 제조 및 판매사업에서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김동관 사장은 스페이스허브를 통해 또 다른 우주사업모델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바로 저궤도 위성통신사업이다.
◆ 저궤도 위성통신사업,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시스템 한화솔루션이 만나는 교차점
저궤도 위성통신사업은 저궤도에 많은 수의 인공위성을 쏘아 올려 복잡한 통신 인프라의 구축 없이도 언제 어디에서나 빠른 속도로 인터넷을 제공하겠다는 사업모델이다.
스페이스허브의 주축이 되는 한화그룹 계열사들이 어떤 곳인지 살펴보면 저궤도 위성통신사업이 한화그룹 우주 관련 계열사들이 교차하는 지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화그룹이 밝힌 스페이스허브의 주축 계열사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시스템, 쎄트렉아이, 한화솔루션 등이다.
쎼트렉아이는 인공위성 제조 기술,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발사체기술을 보유한 회사다.
한화시스템은 방산, 정보통신기술(ICT), 위성통신 안테나 사업 등을 하는 회사다. 위성통신 안테나는 전파를 이용해 인공위성과 데이터를 송수신하는 장치로 저궤도 위성통신사업에서 필요한 장치다. 한화시스템은 군사용 위성통신과 레이다분야에서 쌓은 오랜 경험과 기술을 바탕으로 저궤도 위성통신 안테나분야에서 뛰어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얼핏 우주사업과 관련이 없어 보이는 한화솔루션 역시 저궤도 위성통신사업을 추진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회사다. 한화솔루션의 주력 사업은 태양광 사업인데 인공위성은 태양에너지를 동력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김동관 사장은 한화솔루션 대표이사 사장 자리를 맡고 있다. 김 사장이 키워낸 한화그룹의 또 다른 성장동력이 에너지사업이라는 것을 살피면 결국 저궤도 위성통신사업은 한화그룹의 우주 관련 계열사뿐 아니라 한화그룹의 두 가지 미래 사업이 한 점에서 만나는 사업이기도 한 셈이다.
◆ 스페이스허브와 인수합병(M&A), 한화는 우주사업의 청사진을 어떻게 그려낼까
김 사장은 인공위성 제조판매사업, 저궤도 위성통신사업에서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사업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김 사장은 이를 위해 스페이스허브를 통해 스페이스엑스, 블루오리진 등 우주사업의 강자들을 지속해서 모니터링하고 있기도 하다.
한쪽에서는 이와 관련해 한화그룹이 우주사업 관련 새로운 인수합병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쎼트렉아이의 다음 타자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화그룹은 당분간 우주사업 관련 새로운 인수합병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중소기업 가운데 저궤도 위성통신사업과 관련된 기술을 보유한 강소기업들이 많다는 것을 살피면 한화가 우주사업의 강화를 위해 인수합병 시장에 다시 참전할 가능성은 여전히 충분하다.
한화가 추가적 인수합병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회사로는 인텔리안테크, AP위성, 한양네비콤 등이 꼽힌다.
인텔리안테크는 위성통신 수신용 안테나를 개발하는 회사로 특히 선박용 안테나에 강점을 보유하고 있다. 인텔리안테크는 글로벌 저궤도 위성통신사업자인 원웹에 위성통신 수신용 안테나를 공급하고 있기도 하다.
AP위성은 현재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손잡고 차세대 위성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한양네비콤은 나로호에 탑재되는 위성항법시스템을 개발한 강소기업이다.
한쪽에서는 우리나라가 우주기술분야에서 외국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만큼 한화가 외국 기업 인수합병에 뛰어들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화가 큐셀을 인수해 태양광사업을 키웠던 것처럼 우주사업에서도 비슷한 전략을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화시스템은 저궤도위성통신사업을 위해 지난해 6월 영국의 위성안테나 전문기업 페이저솔루션을 인수하고, 12월에는 미국의 위성통신안테나업체 카이메타에 지분투자를 하는 등 외국 기업 인수와 투자에 적극적 모습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 우주개발은 “사회적 책임”이라는 김동관, 한국은 ‘우주강국’ 될 수 있을까
한화그룹이 본격적으로 우주사업에 시동을 걸게 되면 단순히 그룹 차원의 사업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우주사업 자체가 활기를 띨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국은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유럽 등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해 우주사업에서 매우 뒤처져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의 우주 관련 기술력은 미국과 러시아의 60%, 중국의 80%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맺은 한미미사일지침 때문에 우리나라가 우주발사체를 만드는 데 제약이 컸기 때문이기도 하고, 국가적으로 실용성이 떨어지는 우주사업 육성을 게을리했던 탓도 있다.
하지만 우주사업은 더 이상 국가 위상을 과시하기 위한 돈놀이가 아니라, 실제로 경제적 효과가 있는 하나의 사업분야로 변화하고 있다. 특히 천연자원이 많지 않은 우리나라의 특성상 우주탐사가 장기적으로 우리나라의 약점을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
김동관 사장은 스페이스허브의 팀장을 맡으면서 "누군가는 해야 하는 게 우주산업”이라며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자세로 개발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단순한 수사적 표현일 수도 있지만, 우주사업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사업을 넘어 국가 경쟁력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사업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보여줬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한화가 우주사업을 통해 그룹의 미래 먹거리를 해결하는 한편, 이미 뒤처져버린 한국의 우주산업을 선진국과 나란히 달릴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비즈니스포스트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