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구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 회장이 조카 박철완 상무의 경영권 도전을 막아냈다.
주주들이 올해는 박 회장의 관록에 신뢰를 보냈으나 박 상무의 도전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돼 박 회장도 ‘2차전’을 준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6일 열린 금호석유화학 정기 주주총회에서 박 회장이 내세운 백종훈 금호석유화학 전무가 새롭게 사내이사로 선임되면서 박 상무의 사내이사 선출을 통한 이사회 진입 시도는 무산됐다.
이날 주주총회에서 박 상무는 주주제안을 통해 이사 후보 5명을 내세우며 삼촌 박 회장이 쥐고 있는 금호석유화학 경영권에 도전했다.
그러나 핵심안건이었던 사내이사 선임안건뿐만 아니라 사외이사, 감사위원 등 주요 안건, 투자자들의 관심을 모았던 배당안건 등에서 박 상무의 주주제안 대신에 박 회장의 의중이 담긴 회사 상정안건이 모두 승인됐다.
박 회장이 금호석유화학 경영권을 두고 펼쳐진 ‘1차 방어전’에서 완승한 셈이다.
다수 주주들은 박 회장이 보여준 안정지향적 경영 스타일을 더 신뢰한 것으로 해석된다. 배당안건에서 이런 점이 잘 나타난다.
박 회장은 보통주 1주당 4200원을, 박 상무는 1만1천 원을 각각 현금배당하는 안건을 내놨다. 이를 기준으로 산출한 연결기준 배당성향은 회사 안건이 19.9%, 박 상무의 제안이 52.7%다.
2019년 석유화학업계 평균 배당성향은 49.3%로 박 상무의 제안이 업계 평균에 훨씬 가깝다. 다만 박 회장이 추구하는 보수적 배당성향의 이면에는 그가 구축한 안정적 재무구조가 있다.
금호석유화학은 금호그룹과 분리된 경영체제를 구축했던 2010까지만 해도 연결 부채비율이 498%에 이르는 등 과중한 채무를 지고 있었다.
박 회장은 금호석유화학의 이익을 채무 상환에 투입하는 데 주력했다. 이날 승인된 금호석유화학의 2020년 재무제표 기준으로 연결 부채비율은 59.7%까지 낮아졌다.
박 회장은 이런 안정적 재무구조에 기반을 두고 의료제품용 합성고무 NB라텍스 등 신사업과 관련한 투자를 지속했다.
NB라텍스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위생용품 수요 증가세와 맞물려 금호석유화학이 지난해 역대 최고 영업이익인 7422억 원을 거두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처럼 박 회장이 10년 동안 금호석유화학을 이끌며 보여준 성과가 적지 않다. 그가 쌓아올린 ‘관록’의 무게가 조카의 경영권 도전을 허락하지 않은 셈이다.
다만 박 회장이 마냥 안심할 수만은 없을 것으로도 보인다.
일각에서는 박 회장이 아들인 박준경 전무, 딸인 박주형 상무와 함께 금호석유화학 지분 확대에 나설 수 있다는 시선이 나온다.
이는 박 회장 일가의 금호석유화학 지배력이 그다지 강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박 회장이 올해 주주총회에서 완승을 거뒀다고는 해도 박철완 상무가 금호석유화학 지분 10.03%를 보유한 개인 최대주주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박철완 상무는 주주명부가 폐쇄된 뒤에도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0.03% 사들였다.
최근 박철완 상무의 어머니인 김형일씨와 장인인 허경수 코스모그룹 회장이 새롭게 박철완 상무 측 특별관계자로 편입되면서 박철완 상무 측 세력의 지분율이 10.16%까지 확대됐다. 박철완 상무는 이미 2022년을 준비하고 있는 셈이다.
박 회장은 지분 6.69%를 보유해 박철완 상무, 국민연금, 박준경 전무에 이은 4대주주다.
박 회장과 박 전무, 박주형 상무의 보유지분을 모두 더하면 지분율 14.84%로 박 상무 측보다는 높다. 그러나 격차가 안심할 정도라고 말할 수준까지는 아니다.
박철완 상무는 이날 주주총회가 끝난 뒤 입장문을 통해 “올해 주주총회는 끝이 아닌 시작이다”며 “내년에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고 2차전을 예고했다.
박 회장으로서는 올해 주주총회보다 내년 주주총회가 어쩌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내년 주주총회에서 금호석유화학은 사내이사 2명과 사외이사 2명 등 이사 4명의 공백을 메워야 한다. 그런데 내년 임기가 끝나는 사내이사 가운데 1명이 바로 박 회장이다.
두 세력의 지분율 격차가 크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박 회장이 사내이사 재선임에 실패하고 박철완 상무가 사내이사로 신규선임되는 상황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올해 주주총회에서는 박철완 상무를 향한 지지가 상당수 존재한다는 점이 확인됐다.
이날 백종훈 전무가 득표 수에서 앞서 사내이사로 선임되기는 했지만 박철완 상무의 사내이사 신규선임안건도 과반 이상의 찬성표를 받았다. 이는 박 회장에게 불안요소다.
박 회장은 이날 주주총회가 끝난 뒤 “무엇보다 주주들의 성원의 감사드린다”며 “앞으로도 저를 비롯한 임직원들은 기업가치 제고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강화를 통한 주주가치 향상에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박 회장이 이 약속을 지키는 길을 아직은 탄탄대로라고 말하기 쉽지 않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