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한 지붕 아래 팹리스(반도체 설계)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가 동거하는 사업구조를 지속할까?

인텔도 삼성전자처럼 별도사업부서로 파운드리사업을 추진하면서 파운드리 고객유치와 관련된 삼성전자를 향한 사업구조상 우려는 다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인텔 파운드리 진출이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 분사 자극제 되나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 대표이사 부회장.


그러나 인텔 파운드리사업과 차별화를 위해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분사가 필요하다는 시선도 있다.

25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인텔이 파운드리사업에 진출하면서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사업구조를 향한 팹리스 고객사의 의구심을 벗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자체 반도체 설계사업을 하는 시스템LSI사업부와 외부 반도체 위탁생산을 하는 파운드리사업부를 동시에 거느리고 있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의 경쟁상대인 외부 팹리스가 삼성전자에 일감을 주기를 꺼려할 수 있다는 시선이 많았다. 경쟁사로 기술이 유출되거나 제품 로드맵 등 정보가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파운드리 1위 기업 TSMC는 아예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정해뒀다. 반도체 개발을 위한 설계에 손대지 않고 위탁생산만 해 고객의 신뢰를 얻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삼성전자가 TSMC를 따라잡기 어려운 이유로 이러한 사업구조를 꼽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가 파운드리사업부를 독립법인으로 분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규모 투자를 통한 규모의 경제가 불가피한 파운드리 사업에서 독립법인이 독자적으로 자금 소요를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삼성전자가 여태껏 파운드리 분사를 하지 않은 이유다.

삼성전자는 현금 창출원(캐시카우)인 메모리반도체사업에서 벌어들인 돈을 파운드리 등 시스템반도체사업에 투자해 왔다. 

2030년 시스템반도체 1위를 목표로 삼성전자가 추진하고 있는 반도체 비전 2030의 투자액은 133조 원으로 시스템반도체사업으로 벌어들인 돈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다.

24일 파운드리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한다고 밝힌 인텔이 독립법인이 아닌 사업부 형태로 파운드리사업을 추진하기로 한 것 역시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인텔은 애리조나에 200억 달러 규모의 공장 증설을 시작으로 향후 수백억 달러 투자를 예고하는 등 파운드리사업에 상당한 자금을 집어넣을 것으로 보인다. 

인텔은 파운드리사업에 나서면서 자체 반도체 설계구조인 x86이 아니라 경쟁사인 ARM의 설계자산에 기반한 반도체나 오픈소스인 리스크파이브(RISC-V) 기반 제품도 생산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경쟁 반도체 제품도 수주하겠다는 자신감을 내비친 것이다. 이를 위해 인텔은 새로 설립하는 파운드리사업부가 ‘독립적’이라는 점을 특별히 강조했다.

인텔은 x86으로 반도체 생태계의 주도권을 쥐고 있어 삼성전자와 비교해 주요 반도체 설계회사들과 더욱 치열한 경쟁관계를 맺고 있다. 

이러한 인텔이 한 지붕 아래 팹리스와 파운드리사업을 둔다면 삼성전자의 사업구조도 고객사들에게 인정받기가 다소 수월해질 것으로 보인다.

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인텔은 파운드리업계의 가장 큰 수요처인 애플, 엔비디아, AMD, 퀄컴 등의 가장 직접적 경쟁자이기 때문에 파운드리에서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면서도 "다만 파운드리 물량 확보가 우선인 고객 입장에서 반도체 설계분야 경쟁자라고 해서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바라봤다.

송 연구원은 “그간 파운드리서비스 공급자이자 경쟁자인 위치에서 고객확보가 어렵다는 면은 삼성전자의 약점으로 지적돼 왔지만 이런 점이 앞으로 삼성전자가 고객을 확보하는 데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고 분석했다.

반면 여전히 한 지붕 두 사업체계를 향한 의구심도 존재한다. 미국계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인텔 주식에 ‘매도’ 의견을 내며 이해상충 문제를 주요 요인으로 지적했다.

골드만삭스는 “인텔이 독립사업부로 파운드리 사업을 한다고 해도 인텔과 경쟁하는 대형 팹리스업체들은 협력을 주저할 것이라고 본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인텔과 차별화를 하려면 삼성전자가 파운드리사업부를 분사해 고객 확보를 더욱 수월하게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가 파운드리부문을 분사할 필요가 있다”며 “분사한 파운드리부문을 미국 나스닥에 상장해 외부 투자금을 유치하고 고객과 경쟁해야 하는 딜레마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파운드리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 향후 투자액을 일정 부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된 점은 이제 막 파운드리를 시작하는 인텔과 다른 점으로 꼽힌다. 분사를 하기에는 인텔보다 유리한 조건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2021년 삼성전자는 파운드리분야에 약 10조 원 수준의 시설투자(CAPEX)를 집행할 것으로 여겨진다. 메모리를 제외한 비메모리사업 영업이익은 15조 원 정도로 추산된다. 메모리에서 벌어들인 돈을 제외해도 파운드리 투자액을 넘어서는 셈이다.

삼성전자는 2005년 처음으로 파운드리사업에 뛰어들었다. 오랫동안 시스템LSI사업부의 일부로 존재하다가 고객 이탈 우려 등을 고려해 2017년 5월 별도의 파운드리사업부로 독립했다.

다만 삼성전자는 파운드리사업부 분사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 대표이사 부회장은 2020년 1월 한국공학한림원 신년하례식에서 기자들과 만나 파운드리 분사 관련한 질문을 받자 “아직 계획이 없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